우성아파트를 전세로 돌리고 받은 보증금으로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겼습니다. 그곳은 부모님 건물에 있던 15평짜리 작은 집, 바로 부모님이 사는 층의 아랫집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저는 일찍 결혼하여 주변에 결혼한 친구가 없었습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처럼 어떤 집을 살아야하고 어떤 가구를 갖추고 살아야하는지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15평에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부모님께서 함께 돌봐주실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하고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일에 미쳐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는 늘 산더미 같았고, 주말에도 쉬지 못했습니다. 퇴근은 늘 밤늦은 시간이었고, 주말에도 계속해서 출근했습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이번만 더”를 외치며 살았습니다. 아내는 시댁 아래층에서 부모님과 함께 아이를 키우며 고군분투했습니다. 처음으로 엄마가 된 그녀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깨서 출근하고 밤에는 나의 야근에 외로움을 견뎌야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그녀에게 “수고했다”는 말보다 더 큰 위로를 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미안합니다.
그런 바쁜 시기, 새로운 투자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장모님께서 구로역 앞 오피스텔에 투자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너희도 하나 해봐. 지금 분양가 그대로라 기회야.” 그 말 한마디에 저의 근거없는 추진력이 발동하여 망설임 없이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전세금으로 아파트를 매매할 때 진 빚을 갚고, 남은 돈 1억 5천만 원으로 오피스텔을 샀습니다.
그 오피스텔은 막 입주가 시작된 신축이었고, 프리미엄 없이 분양가 그대로 구매했습니다.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70만 원 1억 5천만원 매매를 고려하면 계산상 6% 수익률로 괜찮은 수익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월세 받는 사람이구나.” 처음 월세가 통장에 입금되던 날, 묘한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작게나마 자산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뒤늦게 깨닫는 법이 있습니다. 그때의 나는 오피스텔이라는 상품의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파트의 중개 수수료는 0.3~0.4% 협의가 가능했지만, 오피스텔은 무조건 0.9% 고정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복비가 비쌌습니다. 게다가 계약 기간도 1년으로 짧았고, 입주자들의 이동이 잦았습니다.
계약기간 1년을 채우기전에 중개업소에서 “이번 세입자는 이사 나간답니다”라는 전화를 받곤 했습니다. 공실의 위험은 생각보다 컸고, 마음은 늘 불안했습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문제는 오피스텔은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엔 새 건물에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까지 갖춰져 있어 반짝 빛나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새로움’은 금세 낡음으로 바뀌었습니다.
1년, 2년이 지나자 세입자들은 “요즘은 신축이 더 많아요”라며 떠났습니다. 주변에 오피스텔이 계속 들어서면서, 오히려 월세 시세가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월 70만원은 60만원으로 내려갔고 아파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희소성이 생기지만, 오피스텔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체 가능한 자산’이 되어갔습니다.
다행히 제 경우는 공실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입자가 나가면 늘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 공실의 공포는 수익률의 숫자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투자는 ‘남들이 좋다’고 할 때가 아니라,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것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면 그 돈으로 작은 아파트를 샀으면 훨씬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경험 덕분에 나는 부동산의 본질을 배웠습니다. 아파트는 “사람이 사는 공간”, 오피스텔은 “사람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라는 차이를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투자는 결국 돈의 싸움이 아니라, 이해의 깊이와 판단의 온도로 결정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오피스텔은 내 인생의 큰 부자가 되어주진 않았지만, 적어도 나를 ‘조금 더 현명한 투자자’로 만들어준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