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꽃피운 “관계적 인간”의 생존 지혜

by 새벽나무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칭찬 받을 만한 책이다.

첫째, 제목 선정이 참 탁월하다. 연식이 좀 되는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중경삼림>이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영화와는 관련 없는 책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홍콩 여행 중 사진 한 장 남길 법한 어마무시한 공용 주택 더미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건축에 대한 책도 아니다. 언뜻 제목만 보아서는 스릴러물처럼 보이는 이 책은 놀랍게도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홍콩에 거주하는 탄자니아 커뮤니티들의 비즈니스와 삶의 방식을 관찰한 글이다. 정말 제목을 잘 뽑았다.


둘째,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우리들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전복시킬 만큼 ‘이런 방식의 비즈니스도 있구나‘ 를 알려 준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의 보호를 받으며 각종 규제 속에서 그러나 법의 허술한 틈을 이용하여 각자의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우리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아니,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비록 무대는 홍콩의 뒷골목이지만 다른 나라 어디라도 있음직한 소수의 힘없는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대략적이나마 알게 해준다.


셋째, ‘이런 사람도 보스가 될 수 있구나‘를 알려준다. 명색이 보스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카라마라는 사람이 얼마나 어이없는 사람인지, 보통의 상식적인 비즈니스상황에서 도저히 허용되지 못하는 생활방식과 마인드를 가진 그 사람이 실제 홍콩 내 탄자니아 인들 커뮤니티에서 왜 보스로 통용되는지를 자세하고 꼼꼼하게 그러나 재미있게 기술하고 있다.


넷째, 대학시절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뻗어나갈 수 있는지 알게 해 주었다.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문화인류학이라는 과목이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이 학문을 더 공부하면 어떤 것을 더 배우게 될지, 어디까지 연구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도 문화인류학자가 연구할 수 있는 분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알려주었다.

이 책의 내용 중에 특히 ‘무리하지 않기’라거나 ‘겸사겸사’라는 단어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탄자니아 홍콩 조합은 서로 무리하거나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것을 되도록 회피하기를 규칙으로 삼고 있고 이들의 일상적인 상호부조는 대부분 겸사겸사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흔쾌히 받아들인다는 대목은 참신하기 까지 했다.

첫 부분부터 마치 덤 앤 더머 같은 시작으로 황당해 하며 책장을 넘기던 시작부터 끝까지 읽고 난 후 이 책이 나에게 주었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1. “합리성”보다 “관계성”이 세계를 움직인다.

서구식 자본주의는 효율, 계약, 합리성을 강조하지만, 청킹맨션의 상인들은 관계와 신뢰, 인간적 감각을 통해 비즈니스를 한다. 그들은 거래를 단순한 경제행위가 아니라, 서로를 살게 하는 네트워크의 일부로 본다. 즉 냉정한 시스템 속에서도 인간적 관계가 여전히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다.


2. 불안정한 시대일수록 ‘사람 사이의 신뢰’가 자산이 된다.

불법 체류, 불안정한 신분, 불투명한 규칙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식 제도 대신 ‘신뢰’와 ‘평판’으로 생존한다. ‘사기’조차 그 관계망 안에서 발생하는, 신뢰의 또 다른 형태로 분석된다. 제도가 완벽하지 않은 사회일수록, 사람 사이의 신뢰가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안전망이 된다.


3. 세계화는 거대한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 실천’이다.

‘글로벌 무역’은 거대 기업의 영역이 아니라, 이민자들이 만든 비공식 네트워크에서도 이루어진다. 청킹맨션은 ‘하류 세계화(홍콩에서 꽃피운 “관계적 인간”의 생존 지혜)’의 현장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세계를 연결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세계화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들이 만들어가는 ‘생활의 세계화’이기도 하다.


4. 윤리는 상황 속에서 다시 정의 된다.

불법, 사기, 뒷거래 등으로 보이는 행위들이 그들에게는 살기 위한 협상과 창의적 적응의 결과다. 오가와는 이를 ‘모럴 그레이 존(moral gray zone)’으로 보며, 절대적인 선악 기준이 아닌 맥락적 윤리를 제시하고 있다. 타인의 생존 전략을 쉽게 도덕적으로 재단하지 말라고 한다. 그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윤리의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5. ‘주류’의 시선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지혜가 보인다.

청킹맨션은 흔히 ‘혼돈의 상징’으로 묘사되지만, 오가와는 그 속에서 지식, 유머, 연대의 질서를 발견한다. 우리가 ‘혼돈’이라 부르는 세계 안에는, 다른 형태의 지혜와 질서가 존재한다.

어쩌면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유연한 생존력과 관계의 지혜“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 느낀 바를 한국사회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도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창작자들도 이제는 회사는 제도보다 ‘평판’과 ‘신뢰’로 먹고사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청킹맨션 상인들이 “누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감으로 판단하듯, 오늘날의 배달, 콘텐츠, 공유경제 생태계에서도 신뢰의 네트워크가 생존의 기반이 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 사이의 감각적 신뢰는 더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 된다.


또한 불안정 노동시대의 윤리는 상황 속에서 다시 정의될 수 있다. 청킹맨션의 상인들이 비합법적 수단으로도 관계를 유지하듯, 한국의 청년, 비정규직, 자영업자들도 불완전한 시스템 속에서 ‘편법’과 ‘요령’을 통해 버틴다. 그건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회 속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협상이기도 하다. 불안정한 사회에서 윤리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의 기술’로 볼 수이다.


청킹맨션은 아시아·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만든 ‘작은 세계화의 실험장’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이주노동자, 다문화 가정, 난민 공동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의 노동과 네트워크는 한국 사회의 ‘하류 세계화(subaltern globalization)’를 구성하고 있다. 이주민은 사회의 주변인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잇는 ‘현대의 중개자’로 볼 수 있다, 이런 시각으로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하고 법이 보호해 주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중계자로서의 그들의 역할을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청킹맨션 사람들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계에서 관계 감각, 눈치, 농담, 타협으로 살아남는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불안정한 취업 시장,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정답’보다 유연함, 관계 감각, 서로 돕는 기술이 더 중요한 시대이다. 불안정의 시대는 ‘적응의 시대’다. 감각과 관계를 믿어야 살아남는다.


청킹맨션의 보스들은 거래를 통해 공생의 윤리를 실천한다. 상대가 조금 속이더라도, 완전히 끊지 않고 서로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건 경쟁 중심의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지점이다. 진짜 생존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남는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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