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책이 <죽은 다음>으로 정해졌을 때, 조금, 아주 조금 당황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책을 주문하고 배송된 책을 펼쳤다. 사전 정보대로 이 책은 장례절차에 해당하는 소제목에 따라 일반 독자들의 시선이 아닌 장례지도사의 시선에 따라 죽음, 죽은 다음의 절차들, 거기에 더하여 망자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사회적 시선들까지 살펴보는 내용이었다. 흔히 볼 수 없는 관점의 글이어서 더욱 관심이 가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읽은 뒤 이 책이 나에게 주는 질문은 ‘당신의 죽은 뒤 모습은 어떠하길 바라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였다. 아직도 나는 지극히 현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나 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상식을 가지고 살며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살고 있다. 개인의 취향과 관심에 따라 특정분야의 지식을 쌓고 그것이 깊어지면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죽음’이다. 가깝게는 부모, 형제의 죽음을 겪으면서 간접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당사자가 되지는 못하기 때문에 ‘죽음’은 어떤 것이고 ‘죽음’과 가까워지는 과정이 어떻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렸거나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아직 ‘죽음’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죽음과 몇 발자국 가까운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인생관이 달라지고 죽음을 그동안 알고 있던, 짐작하던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이해하게 된다.
나는 기획자다. 34년의 직장생활동안 늘 새로운 것을 기획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것은 나의 개인 삶에도 영향을 미치며 집안의 대소사, 기념일, 여행 등을 어떻게 하면 기억에 남는 날로 만들어볼까 계획하며 살아왔다. 일종의 직업병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파워 J인 나의 성향과 딱 맞아서 계획대로 일정이 진행되었을 때, 가족의 만족도가 높았을 때, 명절을 이렇게도 보낼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때 기획자는 보람을 느낀다.
결혼식, 돌잔치, 생일잔치 등을 직접 준비하며 오래전부터 나는 칠순잔치, 장례식도 기획해야겠다고 생각해 왔었다.
칠순쯤이 되었을 때 나는 자서전을 한시로 엮은 한시집을 출간하고 싶다. 20대 남편을 만났던 그날의 감정, 아이가 태어나던 날, 일로 성취감을 느꼈을 때,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었을 때 등등의 감정을 한시로 담아내고 그 한시를 중국인 친구가 낭송해 주고, 뒤에는 관련 사진들을 띄우고 적절한 음악이 흐르게 하고... 이런 출판기념회를 꿈꾸고 있다.
내친김에 나의 장례식도 기획해 본다.
사실 장례식을 기획해야겠다고 내가 생각했던 건 1994년 개봉했던 영화 <필라델피아>를 본 후였다. 영화 속에서 변호사이며 동성애자인 앤드류(톰 행크스 분)가 죽어갈 때 그의 파트너 미구엘(안토니오 반데라스 분)은 풍선과 파티용품으로 병실을 장식하고 그들의 친구들을 병실로 초대해 샴페인을 대접한다. 앤드류는 에이즈로 죽어갔지만 그의 죽음은 결코 외롭거나 슬픈 죽음이 아니었다.
그 후 나는 장례식에 갈 때마다 주의 깊게 관찰하곤 했다. 결혼식은 당사자를 위한 날이지만 장례식은 남은 사람들을 위한 의식인 것 같다. 돌아가신 분 덕택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 그런 자리가 장례식이다. 그래서 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더더욱 죽은 사람은 기억에 없을 수 있다. ‘000의 장례식’이 아닌 ‘누구 아버지 장례식’으로 기억되는 지금의 장례식은 상조회사의 도움으로 조금은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듯 보이지만 개성은 없어지고 결혼식 못지않게 비슷비슷한 모양새다.
요즘 같은 개성시대에 연극배우 박정자 씨의 ‘생전 장례식’ 같은 유쾌한 장례식도 있다. 하지만 나는 쑥스러움도 많이 타고 내가 전면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나보다 끼 있는 사람들을 무대 위에 올려주는 무대 막 뒤의 기획자 자리가 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내용 못지않게 품위 있는 절차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절차 속에서 ‘인간 xxx’의 장례식이었지... 를 기억할 수 있는 <나의 장례식>이 내 마지막 기획작이 될 듯하다.
11개월 전 나는 ‘육종암’ 판정을 받았다. 전체 암환자의 0.2%만 걸리는 희귀 암이라 표준화된 치료법도 없다. 병원마다 의사마다 환자마다 치료법이 다 다르다. 이 암은 2년 이내 재발률이 45%, 5년 이내 재발률이 90%인, 숫자로만 보면 전의를 상실하기 딱 좋은 암이다. 기본 항암이 끝나기도 전 6개월 만에 폐전이가 되었다. 그리고 1년 동안 항암을 했는데 그간의 항암제가 나에게 전혀 차도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최근엔 다시 약을 바꿨다. 연말엔 폐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요즘처럼 ‘죽음’이란 단어와 가까워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에게 죽음은 아직은 두렵거나 무서운 존재는 아니다. 오기로 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찾아온 손님 같은 단어 ‘죽음’.
건강했을 때에는 ‘죽음’이란 막연한 호기심,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영역,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부분쯤 되는 단어였는데 까다로운 암에 걸리고 난 후 다른 사람보다 죽음과 몇 발자국 가까운 사람이 되고 보니 의외로 ‘지금’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늘 10년 계획, 5년 계획, 1년 계획, 12달 계획을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재미로 살아왔던 나는 병에 걸리고 그 무엇도 계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었다. 그리고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보다 전이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더더욱 절망적이었다. 한 3주 반 정도 힘든 기간을 겪고 스스로 일어났다. 이 암은 내가 극복하거나 떨쳐야 하는 대상이 아니구나... 암세포가 폐로 갔다면 ‘아! 이번엔 폐로 갔니? 잠깐만 기다려 내가 따라가 줄게!! 네가 어디까지 가든 내가 끝까지 따라갈 거야.~’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내가 해야 할 일은 계획을 세우는 일이 아닌 암세포를 따라가기 위한 ‘체력’를 단련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0년 계획을 세울 수 없다면 지금을 중심으로 1-2년 계획만 세우기로 했다. 그 1-2년이 모이면 언젠가 10년이 되어 있지 않을까?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대로 해석해 본다. ‘나에게 내일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나는 오늘의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라고. 대신 오늘을 중심으로 더욱 농축적이고 뜨겁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