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세상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한 작은 온도들..

서평

by 새벽나무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읽고 난 뒤 마음 한곳에 오래도록 스며드는 잔향이 있었다. 그것은 소설 속 인물들이 품고 있는 아픔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그림자이기도 하다는 깨달음이었다. 이 책은 누군가의 고통을 쉽게 위로하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 고통이 탄생하는 자리, 그 미세한 온도의 변화까지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겨울’이라는 말이 단순한 계절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구조의 차가움을 은유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서 겨울은 눈부신 흰색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말없이 사람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서서히 체온을 빼앗아가는 구조적 추위의 감각이다. 불안정한 삶, 제도적 무심함, 관계의 파열…. 이런 것들이 꼭 눈처럼 조용하게 쌓여 인물들의 일상을 얼어붙게 한다. 우리는 흔히 무너져가는 삶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선택의 결과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이 소설은 속삭이듯 말한다. “그 겨울은 개인이 초대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먼저 들여보낸 것”이라고.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손길과 시선들은 서늘한 세계를 견디기 위한 아주 미세한 난로 같다. 그 온기는 언제나 크지 않고 어떤 날은 금세 꺼져버릴 것처럼 위태롭다. 그러나 작가는 바로 그 위태로움을 사랑스럽게 포착한다. 구조가 끝없이 밀려오는 찬바람처럼 사람들을 고립시키는 시대에 여전히 서로에게 닿고자 하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대라는 말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더 조용하며 그래서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작품의 진짜 힘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데도 사회의 균열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소설은 단단한 문장 대신 잔잔한 숨결 같은 서사를 내밀며 우리가 놓치고 지나간 현실의 틈을 천천히 비춘다. 누군가는 따뜻한 실내에서 겨울을 맞고, 누군가는 늘 어둡고 차가운 공간에서 홀로 견뎌야 한다. 이 차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회가 어떤 사람들의 삶을 더 보호하고 어떤 삶을 그냥 추위 속에 내버려둘 것인지 이미 오래 전에 결정해둔 결과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소설 속 인물들의 호흡 하나하나가 아프게 다가온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뇌리에 남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긴 겨울을 반복하도록 살아가게 되었을까?”

작가는 이 질문을 통해 개인의 상처를 넘어서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추위를 직면하게 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추위를 견뎌온 이들의 몸 안에 남아 있는 작은 온기를 바라보게 한다. 비록 위태롭고 흔들리지만 그 온기는 서로를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는 마지막 체온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결국 우리에게 말한다.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곧 사회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며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라고. 이 책을 읽고 나면 문득 주변을 더 천천히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의 삶이 이미 깊은 겨울에 잠겨 있다면 우리는 그 겨울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던 오래된 습관을 잠시 멈춰야 한다. 그리고 아주 작은 온기라도 건네는 일 구조의 벽을 조금씩 녹여내는 감정과 시선을 잃지 않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차가운 세계 속에서도 인간을 잃지 않기 위한 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 소설은 큰 목소리로 세상을 바꾸자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겨울을 건너온 사람들이 서로에게 남겨준 체온을 보여주며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조용하게 묻는다. 그 질문은 아주 조용하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오래도록 따뜻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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