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 않는 선택은 어쩌면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혹시’라는 단어를 평생 데리고 사는 삶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초등학교 동창모임 밴드에서 알림 문자가 왔다. 동창 아버님의 부고 문자였다. 이대 마곡병원 장례식장이다. 원래 아픈 사람은 상가 집에 가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초등동창 모임은 자주모이는 모임도 아니고 어쩌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참석하고 싶었다.
반반차를 내고 퇴근시간보다 살짝 먼저 상가로 향했다.
역시 올림픽대로는 많이 막히는구나. 나는 도로가 막혀도 별로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도시의 삶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러시아워, 경적소리, 그 안에서 자기가 갈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그런 풍경에 익숙해서 인지 사람 많고 길 막히는 곳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운전을 할 땐 늘 라디오를 듣는다. 내가 사랑하는 매체. 라디오와 함께 자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초등학교인가 중학생 때인가 나는 라디오 DJ나 음악방송 PD가 되고 싶었다. 그러면 원 없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라디오 시계가 저녁 6시를 알리고 애청 프로인 ‘배철수의 음악켐프’ 시그널이 들린다.
한동안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서쪽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여의도를 지났을 때 쯤 이었나.. 내 눈앞에 석양이 너무나 아름답게 내리고 있었다. 여기가 막히는 올림픽대로라는 것도 장례식 가는 길이라는 것도 잊을 만큼 숨 막히게 아름다운 순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때마침 라디오에서는 Chuck Mangione의 ‘Feel so Good’ 이흘러나오고 있다. 이렇게 길 막히는 순간이 고마울 때가... 나는 핸드폰을 들고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결국 나는 항암을 하기로 했다.
그 날 노을이 아름다웠던 올림픽 대로에서 도시의 정경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들도 결국은 살아야 볼 수 있는 것 아냐?’
확실하지 않은 안도보다 감당 가능한 고통을 택하기로 했다. 이 선택이 옳은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
그렇게 나는 수술 이후에도 계속해서 나의 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다. 암중모색이라는 말 그대로 아직은 어둡고 선명하지 않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선택을 하면서...
마음을 먹고 나니 모든 실행이 빨라졌다.
구정 연휴가 지나고 2월 1일 출근을 했는데 그 날 1년 휴직원을 냈다. 그리고 2월 2일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을 했다. 입원은 보통 1박 2일이고 특정 검사가 있으면 2박 3일 정도라고 했다.
이젠 병원생활에 익숙해져야 할 텐데 도무지 환자복에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 환자복은 입는 순간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든다. 천하절색 미녀도 슈퍼 모델도 미스코리아도 길이만 다를 뿐이지 병원이라는 곳의 배경화면처럼 입는 순간 박제물로 만들어버리는 위력이 있다. 하물며 평범녀에 길이도 짤막한 환자라면 곧장 오징어가 되기 십상이다. 하긴 미드에서 많이 봤던 병원 모습에서도 환자복이 눈에 띄진 않았다. 패션 강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환자복은 어떨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시각적인 것에 민감하고 눈으로 입력된 정보가 곧장 상상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환자복을 입는 순간 정말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런 말을 가까운 지인에게라도 하면 ‘네가 아직 덜 아팠구나?’ 타박 받을까봐 입을 꾹 다물곤 한다.
입원기간동안 한번 자세히 검색해봐야겠다. 다른 나라 환자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