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위에서 그리고 선택의 시간 옆에서

by 새벽나무

수술 날짜는 생각보다 빨리 잡혔다.

“지금 상황에서는 최대한 서두르는 것이 좋습니다.”

의사의 말은 차분했지만 그 문장은 나의 일상을 단숨에 다른 궤도로 밀어 넣었다.

두려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다만 이상하게도 격렬한 동요보다는 담담함이 먼저 자리 잡았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처럼.


처음 잡혔던 수술 날짜보다 2달이나 빠르게 수술날짜가 잡혔다. 뭔가 긴급을 요한다는 얘기로 들렸다.

의사가 내 차트의 맨 밑줄에 마지막에 기입하던 단어는 단숨에 두 달을 당길 수 있는 위력을 가진 말이었고 불행히도(?) 그 단어는 대학 때 공부하던 vocabulary 22000인가 33000에서 봤던 단어였다.

'Sarcoma 의심됨'


수술을 앞둔 날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 바닥을 스치는 의료진의 발걸음 소리, 손목에 채워진 이름표의 낯선 차가움...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혹시라도 이 장면들이 마지막이 될까 봐서가 아니라 왠지 내가 여기에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자궁에서 자라던 근종은 너무 빠른 속도로 12cm까지 커져 있었다. 짧은 기간 안에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자라난 그 덩어리는 결국 자궁 전절제와 난소 절제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수술 전까지도 확정적인 진단은 없었다. 악성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그래서 조직검사는 수술 이후에 진행한다고 했다. 불확실함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병처럼 느껴졌다.

수술실로 이동하는 침대 위에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형광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갔고 그 사이사이에 내 숨이 섞였다. 무섭지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나는 이 과정을 정면으로 통과해야 하니까.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조금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다. 몸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무거웠고 통증은 생각보다 집요했다. 자궁과 난소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그 즉시 실감되지 않았다. 다만 회복이라는 이름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 한 걸음 내 딛는 일,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일 하나하나가 과제처럼 주어졌다. 평소 회복력이 빠르고 살성이 좋아서 겉의 상처만 보면 3일 만에 퇴원할지도 모른다고 담당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의외로 가스가 5일 만에 배출되는 바람에 금식의 기간이 길었고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으며 7일 만에 퇴원했다.


회복 기간은 길었다. 그리고 조용히 힘들었다. 드러내 울 만큼의 여유도 없이 나는 그 시간을 견뎌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쩌면 몸이 아픈 것보다도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버거울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악성종양이 의심되는 상태로 수술했기 때문에 90% 이상은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수술 열흘 후 복대를 착용하고 출근했다. 아직 내 병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장기휴가를 내지 않았다. 원피스를 입고 코트를 입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금은 여윈 상태로 사무실에 앉았다.


수술 2주일 후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의사를 만나러 갔다.

“예상했던 대로 결과가 안 좋습니다. 조직검사 결과는 단순한 자궁암이나 난소암이 아닌 육종암이에요. 육종암이 어디에 생기느냐에 따라 또다시 여러 가지 아형으로 분류되는데 손미정님의 경우는 그 중 가장 희귀한 미분화 육종암입니다.”

“육종암... 미분화 육종암...이요?

대학병원 이외의 산부인과 의사 중에서도 육종암은 교과서에서만 본 사람들도 있을 만큼 희귀하다고 했다.

의사는 수술은 잘 끝났다고 말하면서도 한 가지 선택지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혹시 모를 암세포의 확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방적 항암 치료를 6회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육종암, 항암치료... 항암이라면 암세포를 공격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좋은 세포도 공격하기 때문에 각종 부작용도 각오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익숙지 않은 단어들을 뇌리에 떠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생님 저 1주일만 고민해보고 말씀 드려도 될까요?” 서둘러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이미 수술이라는 큰 산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갈림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암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막연하게 무거웠다. 겪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고통, 바뀔 몸의 모습,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병원 중심의 시간들...

나는 일주일동안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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