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연봉을 버리고 불편한 행복을 결제했습니다

해외 의대요? 생각보다 살만합니다만

by 예꿈

나는 입사와 동시에 퇴사를 꿈꾸는 전형적인 K-직장인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번듯한 직장과 매년 오르는 연봉, 하나둘 늘어가는 소유물까지. 물질적으로는 분명 풍요로워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은 갈수록 빈곤해졌다.


지난 10년의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20대 초반,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유럽 어학연수 시절의 기억들이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세상에는 정해진 정답이 없구나.”


당시 아일랜드에서 겪었던 그 신선한 충격은 내 인생의 복선이 되었다. 편리함이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남들의 속도가 아닌 나의 호흡으로 걷는 즐거움. 그 감각을 잊지 못해 5년을 고민했다. 헝가리 의대의 무시무시한 유급 괴담에 떨며 지금은 늦었다고 생각했다.


서른세 살. 어리다면 어리고 많다면 많은 나이에 결국 비행기를 탔다. 체크인을 하는 순간까지도 “지금이라도 돌아갈까?”라는 고민이 나를 지배했다. 하지만 헝가리에 도착해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 문을 연 순간, 그 고민은 기우였음을 직감했다.


“뭐지? 내 집인가?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낯선 이국의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도망친 게 아니라, 10년 만에 비로소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음을. 헝가리 의대 1학년 1학기, 나의 ‘자발적 사서 고생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이곳의 삶이 매일 꽃길인 것은 아니다. 환자의 바이탈을 보던 눈으로 현미경 속 세포를 들여다봐야 하고, 손에 익은 처치대신 생물과 화학의 기초과학과 씨름하는 건 쉽지 않다. 유급의 공포 또한 듣던 대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응급실의 아비규환 속에서 환자의 바이탈을 붙잡고, 외국계 기업의 화려한 오피스 뒤편에서 공허함을 견뎌냈던 나에게 이 정도의 고생은 오히려 그동안 갈망해 왔던 자극이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삶의 과정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그 안정적인 길을 다 버리고 떠날 용기를 냈느냐고. 사실 내게 필요했던 건 용기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정직해질 시간 5년이었을 뿐이다. 입사와 동시에 퇴사를 꿈꿨던 8년 반의 기록, 그리고 10년 전 아일랜드에서 발견한 행복의 조각을 찾아 다시 떠나온 이 여정을 하나씩 기록해보려 한다.


나처럼 편리함에 지쳐 진짜 평온함을 갈망하는 누군가에게, 나의 '사서 고생하는 이야기'가 작은 위로 혹은 자극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