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먹자마자 회사 근처 책방으로 향했다. ‘오늘 밤은 꼭 책을 읽어야겠어!’하는 열의가 도시락을 먹는 중 올라왔기 때문이다. 널찍한 매대에 정돈된 책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몇 해 전 글방지기로 만난 작가님의 신간과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참가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 눈에 띄었다. 두 권 다 가볍게 읽기 좋은 에세이여서 기분 좋게 금요일을 마무리하기에 적합해 보였다. 좀 더 둘러보고 결정해보자 싶어서 매대 모서리를 돌아 반대편에 놓인 책을 살펴 보았다. 그러다 한 책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강렬한 오렌지 색의 책. <브랜딩을 위한 글쓰기>
독서 편식이 심해서 평소라면 절대 내 돈주고 사 읽지 않는, 그렇지만 회사가 사 주면 가끔 읽어 보는 장르의 책이었다. 앞표지, 뒤표지에 적힌 문안도 제대로 안 읽어 봤으면서 주저없이 책을 구입했다. ‘브랜딩’이었을까, ‘글쓰기’였을까? 요즘의 나에게 어떤 무의식이 깊이 잠들어 있기에 낯선 책을 사버린 것일까?
며칠 째 쓸모라는 말을 곱씹는 중이다.
“너에게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이렇게 말하면 친구는 그런 말이 어디있냐며 정색한다. 그도 그럴 게 쓸모의 사전적 정의는 ‘쓸만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친구가 말했다.
“너가 쓸모있어서 너랑 친구하는 거 아니야. 넌 너한테 쓸모있는 애랑만 친구해? 난 아니야.”
내가 쓸모 타령을 할 때마다 친구가 내보인 단호한 정색은 아마 이런 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 테다.
‘친구 사이에 ‘쓸만한 가치’ 같은 건 없어. 하지만 설령 그런 게 있다고 한다면, 너가 쓸만한 가치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너랑 친구할거야. 몇 번이고 말하지만 너는 내 친구야. 그러니까 그런 이상한 말 좀 하지마. 제발 그만해.’
하지만 친구가 몇 번이고 정색을 하고, 몇 번이고 이상한 말 좀 그만하라고 타박을 해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쓸모를 의심하기 시작한 건 구직 시장에 내던져지면서부터였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사람들은 변화에 발맞춰 앞으로 나아가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를 테면 상담이라든지 개발이라든지 디자인이라든지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가는 친구들을 볼 때면, 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을 볼 때면, 또는 정의라는 신념을 따라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익에 헌신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또는 정년이 보장된 친구들을 볼 때면 멋있었고, 멋있다는 생각 이면에서 이면지를 구기듯 나를 꾸깃꾸깃 구기는 내가 있었다. 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일 뿐인데 친구들은 제 자리에서 쓸모를 찾은 것 같았고, 나는 그러지 못한 것 같았다. 특정 분야, 특정 직업에 종사한다고 해서 사람에게 가치가 부여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몇 년째 다정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