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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숙 Sep 27. 2022

침묵

말을 고르는 시간

 요즘의 나는 당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상실 후 언뜻언뜻 일렁이는 슬픔을 마주하는 친구에게, 나로서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책임감으로 밤낮 업무와 사람에 자기를 끼워 넣는 친구에게,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내게 보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바짝 말라버린 얼굴에 퉁퉁 부은 눈을 하고 나타난 친구에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친구에게, 누군가를 만나고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해야하는 숙제를 아무것도 못한 것 같아 힘들다는 친구에게, 무엇을 선택하는 게 맞는지 몰라 혼란스러워 하는 친구에게, 평화란 도무지 찾아볼 수 없고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세상에서 어떤 설교를 해야할지 모르겠는 친구에게,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는 동생에게... 나는 당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말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던 시간이 있고, 감사하게도 순간순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에 크고 작은 도움과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말이 그랬으면 좋으련만 섣부른 탓에 악의가 없었음에도, 그리고 때로는 악의를 가지고 누군가를 찌르는 말로 상대를 할퀴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어떻게 한 마디 힘을 보탤 수 있을까...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일들은 물론이거니와 먼저 겪은 일들에 관해서도 입을 열기가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카톡창에 어떤 말들을 썼다 지웠다를 혼자 반복한다거나 숨막히는 침묵으로 옆에 존재할 뿐이다. 실없는 말로 분위기를 전환하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게 하는 대단한 재주를 가진 친구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어제 나는 어떤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기다리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워 어두운 방안에 말 그대로 무(無)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막내에게 전화가 왔다. 언제나 반가운 막내의 전화지만 순간 고민했고, 전화를 받았다.  

"축하가 필요해? 위로가 필요해?" 

 막내의 첫 마디에 눈물이 왈칵 고여버렸는데 울지 않고 짧게 통화를 끝냈다. 위로란 이런 것일까. 


 다가올 운명 앞에 무력한 기다림을 견디는 것 밖에 할 것이 없는 시간, 나를 밖으로 끄집어 준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 '말'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글을 쓰다 또 하나의 물음표가 떠버렸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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