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현상으로 보는 연애의 발견
“오빠 먼저 잘 준비하고 나와요. 나는 오빠 이부자리 깔아 놓을게.”
문은 욕실로 걸어들어가는 듯 하더니 다시 문을 빼꼼 열고는 쭈뼛쭈뼛 말했다.
“화장실 좀 쓸게요.”
그렇지. 화장실을 공유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지. 같은 ‘화장실’이어도 공공장소나 식당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과 가정집 화장실을 사용하는 건 느낌이 아주 다르다. 생활 공간 가장 깊숙한 곳을 들키는 기분이랄까? 그냥 사람 사는 공간의 일부분일 뿐인데 남의 집 화장실을 사용하는 건 어쩐지 민망하게 여겨지고 나도 모르게 정중하게 허락을 구하게 된다.
남의 집 화장실을 이용할 때 예의범절의 문제도 있겠지만 민망 이슈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를 테면 이런 것.
소리
안에 있는 사람은 혹시 소리가 새나갈까 봐 조마조마하다. 집처럼 편하게 일을 볼 수 없다. 밖에 있는 사람은 그런 불안을 알기에 괜히 큰소리로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고, 행여 소리가 들려도 본인보다 더 민망한 얼굴로 모른 척해줘야 한다.
냄새
냄새가 지독할 경우, 안에 있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모든 세제를 총동원해 긴급처방을 시도한다.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강력한 냄새라도, 그런 티를 내선 안 된다. 자연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참아줘야 한다.
이 중 가장 민망한 요소는 다름아닌 소리일 것이다. 6평 남짓한 우리 집 원룸이라면 더더욱이. 화장실과 방이 똑 붙어 있는 아담한 원룸에서는 화장실에서 오줌 누는 소리까지 문밖으로 새어나오기 때문이다.
문이 화장실에 들어간 후 나는 조용히 음악을 재생하고 이부자리를 깔았다. ‘화장실 좀 쓸게요.’라고 쭈뼛쭈뼛 동의를 구한 문이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온 신경이 문이 있는 화장실 쪽으로 향한 채로…. (이날 나는 세면대 물을 틀고 볼 일을 봤다. 우리 집인데…)
문이 침대에 기대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야간 근무를 하는 날이면 퇴근하자마자 침대로 다이빙해야 하는 문이건만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그러고는 낮잠 한숨 자지 않고 나랑 놀아주었으니 꾸벅꾸벅 졸 만도… 이른 저녁으로 먹은 회 한 접시와 해물 라면이 트리거였을까? 집 앞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자마자 문은 헤롱헤롱, 두 눈에 잠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귀여워 특권을 선포했다.
“오빠 누워! 오늘은 옷 안 갈아입어도 침대 누울 수 있게 해줄게!”
“안 돼. 쑥이 침대에는 외출복으로 올라갈 수 없잖아.”
“오늘만 특별히 봐줄게. 눈에 잠이 가득해. 어서 누워어.”
나는 머리 하나 반쯤 더 있는 문의 몸뚱이를 끌어안듯 이끌고 침대로 옮겼다. 젖은 솜이불처럼 하루치 피로가 잔뜩 스며든 몸이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문은 못 이기는냥 침대에 올라갔다. 그러고는 잠깐만 자고 일어나겠다며 등 뒤에 배게를 받쳐 기대 앉고서는 금세 코를 골았다.
드르렁드르렁-
푸슉푸슉-
흐르르릉-
코르르르르르-
미묘한 변주를 주며 코 고는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책을 읽었다. 책 페이지를 보다가 코골이가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면 문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책 페이지를 보다가 문을 바라보았다가 하며 독서를 하던 참이었다.
부르륵-
생각지 못한 변주였다. 이것은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작곡가가 바뀌는 수준, 아니 음악이라기 보다는 음악을 방해하는 다른 차원의 소리였다. 소리의 정체는 바로 문의 방귀 소리.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땐 혹여나 문 스스로가 놀라거나 민망해할까봐 곧바로 문을 돌아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부르륵-
뽁-
푸르릉-
코골이 연주에 이따금 방귀 합주가 곁들여졌다. 그제야 나는 문이 세상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는 걸 알았고, 방귀 소리가 들릴 때마다 맘놓고 문을 돌아볼 수 있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볼록한 배 위에 올려두고 골똘히 생각에 빠진 것처럼 얌전히 기대 앉아 있었지만 실상은 얌전하지 못한 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문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도 모르는 나만 아는 비밀이 생긴 것 같았다. 마음 한 켠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