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현상으로 보는 연애의 발견
1주년 기념 데이트도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역시나 외출 금지 집 데이트. ‘나가볼까?’ 싶어도 37도 땡볕 한 가운데로 걸어나갈 용기 같은 건 우리 둘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덕목이었다. 아침으로 간장 계란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점심으로 갈빗살 구이와 비빔면을 만들어 먹고, 제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밀린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 브라더후드>를 보는 평온한 1주년데이트.
이 평온함을 슬금슬금 깨는 요소가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위장. 아침, 점심 내리 차가운 면을 먹은 탓인지, 아니면 제로 아이스크림이 장을 자극했는지 꾸르륵꾸르륵 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어쩌지? 이 흐름을 어떻게 깨고 조용히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지?’
눈치껏 타이밍을 재던 나는 애니메이션 한 화가 끝나자마자 스페이스바를 눌러 영상을멈췄다.
“자! 쉬는 시간!”
“쑥이 벌써 졸려?”
“오빠 혼자 놀고 있어!”
“엥 쑥이 어디 가?”
“… 화장실 나 다녀올게 혼자 놀고 있어!”
쭈뼛쭈뼛 말을 하고는 화장실로 향하는 데 등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쑥이 화이팅!”
‘화이팅’ 이라는 말도, 그렇게나 큰 소리도 예상하지 못한 터라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 보니 눈에 들어온 풍경은 더욱이 생각지도 못한 풍경. 문은 양손을 머리 위로 번쩍 올린 채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순간 떠올랐다. 얼마 전 만난 대학 선배가 말하길, 자기는 화장실에 잘 못 가는 편인데, 남자친구가 그럴 때마다 “이번엔 꼭 성공해!” 하고 화이팅을 외쳐준다고 했었다. 그때는 웃고 넘겼는데, 지금 보니 문도 그 부류였다. 나는 화장실을 가다 말고 문에게 발걸음을 돌려 이 이야기를 전해줬다. 그러고는 다시 오빠 화장실로 향하는데 문이 졸졸 뒤따라 왔다.
“나도 응원 해 줄래! 쑥쑥이 화이팅 해 줄래!”
정말이지 문은 화장실 문 앞까지 따라와
“쑥쑥이 잘 싸고 있어?”
“쑥쑥이 조금만 더 힘내!”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민망함 따위는 아랑곳없이 내게 ‘화이팅’을 외쳐주는 사람이라니. 웃기고 사랑스럽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기 때문에 문의 커다란 몸을 질질 끌어 침대로 옮겨 놓고는 볼일을 보러 갔다.
“쑥쑥이 성공했어?”
일을 마치고 나온 나를 반겨 주는 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 보는 문. 나는 수줍게 그리고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귀 하나, 코골이 하나에 웃고 안심하며, 우리는 그렇게 가까워졌다. 덜 민망해졌고, 그만큼 더 다정해졌다. 그러니까 이제는 안다. 사랑은 참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는 일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