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1)

정치적 견해가 다른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

by 쑥자람

출근길부터 배터리 잔량이 3%인 느낌이었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게 다 새벽 늦게까지 이어진 문과의 전화 때문이다. 소세지를 한입에 밀어넣으며 다짐했다.


“오늘은 무조건 일찍 자야지.”


어젯밤은 문과의 전화가 길어졌다. 우리는 가끔 정치 이야기에 불을 붙인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문은 가끔 정치 이야기에 불을 붙인다. 이야기에 불이 붙는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쿵짝이 잘 맞아서 얘기가 술술 이어지거나, 팽팽한 설전이 불꽃처럼 튀거나.


안타깝게도 문과 나는 후자다. 정치 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게 된 건 우리가 만난 지 2개월 정도 되었을 때다.


무지 더웠던 어느 여름날, 문과 나는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을 먹고 식당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는 2층이었고, 우리는 카페 창가에 나란히 앉았다.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는데 바로 맞은 편이 국회의원 나경원 지역사무소였다.


“여기가 나경원 지역구구나?”

“요즘 열일하고 계시지 경원 누님.”


나와 비슷한 쪽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지 않은 소리가 나왔어야 맞는데 그렇지 않았다. 열일? 누님? 비꼰 건가? 싶었지만 아닌 것 같았다. 그때 얼핏 짐작했다. 우리의 정치관이 다를 것이라는 걸 말이다.


얼핏 짐작했던 것이 의심할 것 없이 확신이 된 것은 계엄령이 발동된 겨울날 밤이었다. 문과 전화를 하는 중 속보가 뜨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 계엄령 선포’.


오보일 거라 생각했지만 오보가 아니었고, 그때부터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떻게 하지? 나 전주 내려가야 하나? 가족들 볼 수 있나? 아니 오빠는? 동탄으로 먼저 가야하나?’


계엄령이라 하니 현대사 시간에 배웠던 군부 독재 시절이 왕왕 떠올랐다. 평온하던 삶이 갑자기 역사 교과서 끄트머리에 자리한, 혼란의 시기 현대사 챕터에 편입된 것 같았다. 정말로 겁이 난 나는 전화에 대고 호들갑(?)을 떨었다.


“오빠 계엄령 뻥 아니야. 진짜인가봐?”

“오빠 진짜래. 헐… 나 무서워…”


하지만 문의 온도는 차분하다못해 차갑기 그지 없었다.


“그럴 일인가?”


다행히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계엄은 해제되어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2025년 계엄령 발동을 두고 ‘윤석열 탄핵 찬성’과 ‘윤석열 탄핵 반대’로 대한민국은 극명하게 나뉘었고, 나와 문이 서로 다른 편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며, 야당의 횡포에 정당하게 발동된 계엄이다’

‘아니다. 지금은 전시, 사변, 이에 준하는 상황이 전혀 아니며, 설령 거대 야당의 횡포라고 할지언정 이를 뒤집는 방식은 계엄이 아닌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

‘계엄령이 얼마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는지 과거사가 보여주지 않느냐.’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는 현재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지 과거가 중요하느냐.’


어느 주말 아침,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날선 의견을 주고받았고, 등을 돌리고 누워 각자 핸드폰으로 기사만 들여다봤다. 문과 처음으로, 정말이지 난생 처음 대립한 날이었다. 우리의 대립이 우리 둘의 어떠함이 아닌 윤석열 때문에 일어날 줄이야…. 그 겨울, 유난히 추웠고 고민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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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이찍남’이니 ‘개딸’이니 하며 대립되던 2030 남녀 정치 지형이 더욱 극대화 되어 가는 형국이다. 국민의 58%가 ‘정치 성향 다른 사람과 연애와 결혼이 불가능하다’는 통계 자료가 나왔고, 실제로 주변 친구들은 “정치 성향 다른 사람 어떻게 만나? 난 절대 못 만나~”하며 나를 측은하게 보는 시선이 남자고 여자고 모두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단절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거야말로 이념과 사상에 취해 정작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 윤석열의 계엄 선포부터 그가 파면, 그리고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나라는 시끄러웠고, 그때마다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어조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하고 냉랭해지곤 했다. 얼마나 윤석열을 저주했는지 모른다. 그만 아니었으면 우리 사이 이런 냉랭함도, 갈등도 없었을 텐데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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