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발견한 사랑의 온도
병원에 방문하기 전날 밤, 문은 무거운 백팩을 짊어지고 우리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가방에서 한 달치 단백질 쉐이크를 냉장고에 채워 넣고서 하는 말.
“쑥이 내일 병원 진료 몇 시지?”
다음날 병원 가는 길, 문은 내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줬다. 장마가 끝나고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이었는데도 태양이 정점에 이르는 정오와 지면이 가장 뜨거운 한낮의 시간을 같이 걸어줬다. 그의 콧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볼 때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일렁였다. 진료를 보는 동안 문은 병원 건물 1층 스타벅스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가방 여기 두고 다녀와.”
나는 짐을 문에게 맡긴 채 지난 검진에서 촬영한 초음파 CD와 소견서만 쏙 빼서 4층에 위치한 병원으로 올라갔다.
안내 데스크에서 설명을 듣고 진료 가운으로 환복을 한 후 안내를 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 선생님께서는 기존에 촬영했던 내과는 유방 전문 기관이 아니다보니 진료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유방초음파와 유방촬영술 두 개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요즘 30대 젊은 유방 질환 환자가 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찍어보는 게 좋다는 말을 덧붙이시면서.
아마 다른 병원이었더라면 ‘초음파 촬영분을 가져 왔는데 초음파를 또 해? 유방촬영술은 40대부터 권장한다던데 괜히 돈만 나가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병원 홈페이지와 환자들의 블로그 후기, 선생님의 방송 촬영분 등을 보며 원장님에 대한 신뢰도가 있었던 터라 고민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먼저 촬영실로 안내를 받았다. 아무래도 가슴이 짜부되는 게 상당히 괴롭다는 후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라 그렇지 않은 척 했지만 얼굴 가득 잔뜩 긴장이 서려 있었다.
“처음이시죠? 오른쪽 왼쪽 한 번씩 촬영할 거예요. 저희 병원은 그래도 안 아프게 촬영하는 편이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자세 잡아드릴 테니 그대로 계시면 금방 끝납니다.”
배우 표예진을 닮은 선생님께서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를 안심시켜 주셨고, 나는 고분고분 선생님 말씀을 따라 몸을 선생님에게 맡겼다. 선생님은 내 팔과 가슴, 허리를 기계 위에 턱턱 올리시고는 “숨 참고 계세요.”라는 말과 함께 뚝딱 촬영을 끝내셨다. 잔뜩 겁먹었던 것과 달리 통증은 참을 만했다. 오히려 가슴이 이렇게까지 납작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투명한 판 위에 짜부되는 가슴을 보며 말랑말랑 밀가루 반죽 같다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다음은 초음파 촬영실로 안내 받았다. 초음파 촬영은 원장님께서 직접 하셨다. 초음파 촬영도 금세 끝났다. 지난 병원에서 촬영했을 때보다 절반 넘는 시간이 단축되었다. 진료가 빠르게 수월히 진행됨을 느끼며 안심했다. 병원 복도에서 원장님 결과 상담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다행히 별 문제 없나보네. 끝나고 오빠랑 뭐하고 놀까?’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분위기에 들뜬 순간,
“김은숙님~”
“네~”
“초음파랑 촬영 한번씩 더 하실게요. 조금만 대기해주세요~”
“…!?”
‘왜? 왜지? 뭐 문제 있나?’
얼른 진료를 마치고 놀러갈 생각에 들뜬 기분이 가득한 자리에 불안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오빠 나 초음파랑 촬영 한번씩 더 한대”
“오빠 오래 기다려야 할듯 ㅠㅠ”
문에게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간호사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며 다시 유방 촬영실로 안내해주셨다. 배우 표예진을 닮은 선생님께서 아까 전의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다.
“미세석화화가 많이 보여서 추가 촬영을 좀 할게요. 이번에는 고 부분을 확대해서 촬영하는 거라 아까보다는 조금 더 통증이 느껴질 수 있어요.”
선생님 설명이 끝나고 나서 가운을 벗고는 크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그리고 첫번째 촬영 때 했던 것처럼 몸을 선생님께 맡겼다. 첫번째 촬영은 가슴 전체를 촬영하는 거라 겨드랑이까지 고통이 분산되었다면 두번째 촬영은 유방을 집중 촬영하는 거라 확실히 고통이 집약적이었다. 하지만 금세 끝나는 거라 역시나 참을 만했다.
곧바로 유방 초음파실로 안내를 받았다. 이번엔 왼쪽 가슴만 초음파를 진행했다. 오른쪽 가슴에서 증상이 의심되는 혹이 발견되어 왼쪽도 다시 한번 보는 거라고 하셨다. 추가 검사를 마치고 원장님 결과 상담을 기다리는 동안 문에게 카톡으로 조잘조잘 경과를 이야기했다.
“미세석회 때문에 유방 촬영 한번 더 한 거래”
“초음파는 왼쪽만 추가로 봤음”
“오른쪽에 혹이 있대”
“김은숙님~”
원장실로 안내를 받았다.
“미세석회화가 보이는 것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1년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촬영하면서 경과를 보면 되겠어요. 그런데 여기 보시면, 이게 내과에서 놓쳤던 건데 조직이 울퉁불퉁하고 비정상적인 경계를 가진 혹이 하나 보여요. 여기 보이는 물혹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모양이 찌그러진 요거는 조직검사로 한 번 볼 필요가 있겠어요. 오늘 가실 때 상담실에서 조직검사 일정 잡고 다음 내원 때 검사합시다.”
‘찌그러진 혹?’
‘조직검사?’
생각지도 못한 단어 조합에 머릿속이 하얗게 멍해졌다. 목에 깁스를 하신 간호사 선생님을 따라 상담실로 안내를 받았고, 조직검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조직검사는 바늘을 투입해서 해당 조직을 채취하는 검사예요. 마취크림 바르고 해당 부위에 국소마취 한 다음에 조직 채취하는 거라 검사 자체가 아프지는 않아요. 조직검사 끝나면 지혈해드릴 건데 압박붕대로 지혈한 채 귀가하셔야 하니까 헐렁한 티셔츠 입고 오시는 게 좋아요. 운전 보다는 대중교통 이용하시는 게 좋고요.”
선생님은 다른 환자들에게 몇 번이고 반복했을 말을 상냥한 얼굴로 빠르게 쏟아내셨다. 설명이 계속 될수록 내 얼굴은 사색이 되어갔다.
“저… 바늘은 어느 정도 크기예요?”
“별로 안 커요. 이 정도?”
선생님께서 종이 위에 작은 점 하나를 찍으며 말씀하셨다.
“검사는 몇 분 정도 소요되나요?”
“10분이면 끝나요.”
“… 많이 아픈가요?”
“별로 안 아파요. 마취 주사 들어갈 때 뻐근한 정도예요.”
가능한 가장 빠른 날짜로 조직검사 내원 일정을 잡고 병원을 나섰다. 문이 있는 카페로 내려가는 동안 놀란 마음을 한숨 내쉬며 진정시켰다. 다행히 늦게 온 엘레베이터 덕분에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