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발견한 사랑의 온도
올해는 홀수년생 국가건강검진 해로 93년생인 나는 검진 대상자다. 마침 집앞에 새로 생긴 병원이 국가건강검진 기관이어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슬리퍼를 끄시며 병원으로 향했다. 손에는 검진 끝나자마자 먹을 단백질쉐이크 하나를 든 채로.
그동안은 쭉 기본 검진만 했었는데 서른이 넘어가니 슬슬 추가 검진을 고민하게 됐다. 대개는 위 내시경, 대장 내시경 정도를 추가하는 터라 나도 그 두 개를 추가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엄마가 위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염, 위경련 등 자잘한 위 질환 한번 겪은 적이 없었고, 가끔 변비가 있을 뿐 똥도 예쁜 모양으로 잘 싸는 편이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고민한 건 유방 검사였다. 유방 질환은 여성에게 생기는 대표 질환이기도 하고, 갈수록 젊은 유방암 환자가 늘고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유방 검사로는 유방초음파와 유방촬영술 두 가지가 있다. 그중 유방촬영술은 여성들, 특히나 아직 유방촬영술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여성들에게는 듣기만 해도 얼굴이 일그러지고 괜스레 가슴에 손을 가져가게 되는 두려운 검사이다. 있는 가슴 없는 가슴 다 끌어 모아 차가운 철판 위에 납작하게 짜부라트린다는 후일담과 함께 무척이나 고통스럽다는 후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피 뽑는 것조차 덜덜 떨 정도로 병원 관련해서 유독 겁쟁이가 되어 버리는 나는 유방촬영술까지는 용기가 나지 않아 유방초음파 검사만 추가했다.
안내를 따라 초음파실 베드에 누워 상의를 탈의하고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의사선생님을 기다렸다. 상의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는데도 춥기는커녕 서늘하게 알맞은 실내 온도와 솔솔 불어오는 에어컨 송풍이 기분 좋게 몸을 간질였다.
‘이대로 한숨 자면 너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의사 선생님은 말없이 가슴에 초음파 젤을 쭈욱 뿌리시더니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셨다. 의사 선생님 오른손에 쥐어진 초음파 기계가 둥글게 가슴부터 겨드랑이 구석구석을 천천히 훑었고, 초음파 기계가 가슴 위에 멈춰 설 때면 의사 선생님 왼손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예상보다 검사 시간이 길었다. 가슴 위에 초음파 기계가 멈춰 서는 빈도도 생각보다 많았다. 슬슬 불안해진 나는 감은 눈을 뜨고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이 멈출 때마다 직선과 함께 0.5cm, 2.3cm 등 숫자가 표시되었다. 누가 봐도 혹의 크기였다. 화면 속 직선과 숫자가 많아질수록 나른하게 안일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어서 빨리 초음파 검사실을 나가고 싶었다.
‘그만… 멈춰라… 빨리 끝나라!’
10초가 10분처럼 느리게 흘렀다.
검사를 마치고 의사선생님께서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시며 말씀하셨다.
“물혹이 여러 개 보이는데 큰 이상은 없어요. 그런데 여기를 보시면 칼슘 성분이 보여요. 얘만 혹 뿌리처럼 아래로 하얀 색이 이어져 있죠? 심각한 건 아니고,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있다가 다시 한번 초음파 찍어보면 될 것 같아요.”
당장 큰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 안심하면서도 한켠에 불안이 도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의심스러운 것이 내 몸에 있다는 두려움과 다음 초음파 때까지 뭔가가 나쁜 방향으로 진전되면 어쩌지 하는 염려.
두려움과 불안의 싹을 자르기 위해 서울에서 유방 치료로 유명하다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한달 전쯤 해원이의 청첩장 모임에서 만난 다원이가 자기 경험과 함께 추천했던 병원이었다. 유명한 병원답게 당장 예약은 불가능했고, 2주 후로 진료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하루 하루 병원 진료가 가까워질수록 두 가지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별 일 아닐거야. 이건 안심하기 위한 추가 검진일 뿐이야.’
‘문제가 있는 거면 어쩌지?’
난소에 자리한 4cm 혹을 줄이기 위해 호르몬 약을 섭취하고 있는 여성 질환 환자라 또다른 여성 질환에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다 하루는 문과의 통화 중 넘치는 불안이 입밖으로 흘러나와 버렸다.
“오빠, 나 병원 가는 거 무서운가봐. 진료날이 다가올수록 불안해지네.”
그렇게 툭 한 마디가 새어나왔을 뿐인데 수화기 너머 들려온 문의 말을 지금껏 잊을 수 없다.
“쑥이, 병원 같이 갈까?”
그 한마디가 뭐라고. 병원을 같이 가는 것과 검진 결과는 어떤 상관 관계가 없는데도 나는 ‘이상 소견 없음’ 결과를 받아든 사람처럼 순간 가뿐한 안도와 위로를 느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이! 혼자 다녀올 수 있어! 그리고 거긴 여성 환자들만 오는 곳인데 여자들 사이 우리 오빠 혼자서 멀뚱멀뚱 앉아 있게 할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