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로 보는 궁합
“은숙님은 청소 스타일이 어떻게 되세요?”
“청소 스타일이요?”
“며칠 전에 친구들을 만나고 왔는데, 다들 청소 방식이 달라서요. 한 명은 주말마다 집안 곳곳을 쓸고 닦는 ‘대청소파’였고, 다른 한 명은 더러움이 눈에 띌 때만 치우는 ‘눈에 보이는 파’였거든요.”
“헉… 주말마다 대청소요? 전 후자예요. 날 정해놓고 집 구석구석 닦는 건 안 하거든요.”
“그쵸? 저도 그쪽이에요.”
아직 문과 연인이 되기 전, 영화 상영을 앞두고 카페에서 나눈 대화였다. 질문이 신선했고, ‘나랑 비슷한 사람이구나’ 하며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웬걸. 그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단번에 알아버렸다.
‘아, 이 사람 나보다 더 한 사람이구나…!’
거실 한쪽의 풀업 기계는 이미 옷걸이가 되어 있었고, 의자에는 층층이 걸린 옷들이 주저앉을 듯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는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고, 침대 위는 그가 막 빠져나온 흔적 그대로였다. 책상 위에는 캔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순간, 어디선가 목소리가 울려왔다.
“김은숙! 방 정리 안 할래?”
그제야 알았다. 내 방을 보던 엄마의 심정이 바로 이랬구나. (엄마, 늦었지만 미안해.)
그날 이후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집에서 손을 움직였다. 빨래 건조대에 걸린 옷은 개어 서랍에 넣고, 의자며 풀업 머신에 매달린 옷가지들을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그릇 건조대에 쌓여 있던 그릇은 찬장에 차곡차곡 넣고, 책상 위에 흩어진 캔들은 한데 모아 재활용통에 담았다. 누가 시킨 적은 없지만, 내 손길이 닿을수록 그 공간이 조금씩 내 공간이 되는 듯했다. 옷을 개다 보면 그의 생활습관을 알게 되고, 캔을 치우다 보면 어떤 음료를 좋아하는지도 알았다. 어쩌면 나는 청소를 하며 그를 알아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 어느 날,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빨래도, 설거지도, 재활용도 이미 끝나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마저 반짝거렸다. 교대 근무에 늘 지쳐 있던 그가, 내가 오기 전 시간을 내어 집을 치워둔 것이다. 순간 알았다. 이제 이 집이 우리 둘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음을.
우리가 청소하는 방식은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청소에서 ‘무엇을 우선시하는지’가 달랐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게 먼저였다. 바닥에 흩어진 양말이나 풀업 머신에 걸린 옷들을 치워야 마음이 편했다. 반면 문은 얼룩, 때, 곰팡이에 집착하는 디테일파였다. 화학과 출신다운 면모랄까. 내 눈에는 티도 잘 안 나는 벽지의 곰팡이가 그에게는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그날 나는 빨랫감을 분류하며 의자에 쌓인 옷들을 접어 넣었고, 문은 락스를 적신 수건으로 벽지를 박박 닦았다. 각자 전혀 다른 지점을 치우고 있었지만 묘하게 조화로웠다. 내가 정리한 바닥은 금세 넓어졌고, 문이 손본 벽은 조금 더 환해졌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청소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이 말했다.
“우리 청소기 살까?”
청소기라니. 평소엔 머리카락이 발밑을 스쳐도 태연한 그가, 청소기라니. 그것도 삼성에서 나온 최신형 ‘비스포크 AI 제트’라니. 그 이유가 궁금해 묻자, 문은 신나게 말했다.
“회사 사람 두 명이나 똑같은 모델을 추천했어. 청소기도 되고, 물걸레질도 되고, 심지어 침구 청소까지 된다더라. 먼지통도 자동으로 비워주고! 로봇 청소기보다 낫대.”
순간, 오래전 로봇 청소기를 사겠다며 기웃거리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못 미더워서 포기했는데, 마음속에선 여전히 아른거리고 있었던 거다.
“오빠 청소기 필요해?”
“음… 진짜 좋대. 청소가 편해지지 않을까 해서.”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 오빠 집이고, 오빠가 살 거니까.”
며칠 뒤, 문이 신나게 연락을 해왔다.
“쑥쑥이, 이번 주 우리 집 오면 청소기 언박싱 해야 해!”
그 주말, 드디어 문은 최고급 모델을 질러버렸다. 함께 박스를 뜯고 부품을 조립했다. 청소기를 슝슝 밀어보니, 자동으로 흡입 강도가 조절되고 먼지통까지 스스로 비워내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청소기를 제대로 세워두려면 또 집 안을 정리해야 했다. 전선을 묶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소품을 치우고, 자리를 만들어주고.
결국, 청소기를 언박싱하러 모였다가 또다시 집 안을 구석구석 치우고 있는 우리였다.
비스포크 AI 제트가 생긴 후로, 우리 공간에서 머리카락이 줄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언제나 바닥에는 흥건하게 쌓여 있었다. 문과 나는 태생적으로 어질러진 뒤에야 청소를 시작하는 사람들인지라, 머리카락이 쌓이기 전 바닥이 깨끗한 날은 좀처럼 없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주 1회 함께 청소기 돌리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 주 1회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끝낸 후, 우리는 꼭 청소기를 함께 돌린다. 내가 청소기를 밀면, 문은 선풍기며 의자며 청소기가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준다. 내가 청소기를 끝내면 문은 물걸레 청소포를 갈아 끼우고 바닥을 쓱쓱 닦는다. 찍- 물을 분사하고, 돌돌돌 돌아가는 청소포로 마루를 닦은 뒤, 문은 꼭 발도장을 찍듯 발을 꾹 눌렀다 떼며 외친다.
“이거지! 깨끗한 마루바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쫙쫙 달라붙는 느낌!”
그럴 때면 꼭 어린아이 같다. 그렇게 좋으면 자주 좀 하지…라는 생각은, 문이 평생 모를 비밀로 내 안에 고이 간직한다.
주 1회 반복되는 우리의 청소 루틴. 머리카락은 금세 다시 쌓이겠지만, 청소기를 밀고, 물걸레질을 하는 그 짧은 시간만큼은 묘하게 상쾌하다. 문은 만족스럽게 바닥을 꾹꾹 밟으며 “이거지!”를 외치고, 나는 그 모습을 슬쩍 지켜보며 속으로 웃는다. 지금은 이렇게 청소하는 시간이 즐겁다. 서로의 방식이 조금 다르고, 가끔은 청소기를 미는 방향이나 물걸레질 속도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소소한 재미다.
앞으로 오래오래 같이 살아도 이렇게 즐겁게 청소할 수 있을까? 머리카락은 여전히 바닥에 쌓일 테고, 우리는 변함없이 조금씩 티격태격하겠지만… 부디 오래오래 즐겁게 청소할 수 있기를, 살짝 속으로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