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주말 맥시멀 행복
이번 주말은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았다. 보통의 주말이라면 금요일 퇴근 후부터 교회 가기 전 일요일 아침까지 짧은 2박 3일을 같이 보내겠지만, 이번 주말은 우리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문의 출근 때문. 문이 금요일, 토요일 이틀 모두 출근을, 그것도 놀기 가장 황금시간인 오후 2시에서 10시 출근이었기 때문이다.
‘문이 없는 문네 집에서 뭐하고 놀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하던 찰나, 해야할 일이 떠올랐다.
‘맞아 식단! 오빠 먹을 식단 밀프렙 해둬야 해!’
며칠전 한창 일하는 중에 문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살 빼야 해. 지방간 수치가 더 높게 나왔어.”
“의사 선생님이 딱 두 달 줄테니까 확실하게 살 빼오래ㅠ_ㅠ”
문이 지방간 수치가 높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이번에는 심각했나보다. 의사 선생님께서 단호하게 엄포를 놓은 걸 보니 말이다. 게다가 문에게서 느껴지는 뉘앙스도 미묘하게 달랐다. 평소라면 ‘살 빼야겠군!’하면서 대수롭지 않았을 문에게서 초조함과 결의가 느껴졌다. 마치 이런 뉘앙스의….
‘더는 물러설 곳이 없어! 이번에는 진짜 살 빼야 해!’
나는 혼자서 괜스레 머쓱했다. 그가 살 찌는 데 나에게 어느 정도 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데다가 손까지 큰 나는, 한번 요리를 하면 양껏 했고, 양껏 그릇에 담아냈다. 하지만 호기롭게 그릇에 담아낸 양을 소화하기에 내 위장은 너무나도 옹졸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했다.
“오빠 더 먹을래?”
라고 묻는 동시에 내 그릇에 있는 걸 오빠 그릇에 덜어준다거나
“아 다 먹었다! 나머지는 다 오빠꺼!”
하며 숟가락을 슬쩍 내려놓기.
그럴 때면 문은
“으잇! 너 또!”
라고 하거나
“또 나만 살찌우려고!”
라고 하면서도 내가 만든 요리를 싹싹 먹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는 식사 전 그릇에 음식을 떠주며 이렇게 말했다.
“똑같이 1인분씩 나눈다? 이게 1인분이야. 알겠지? 이만큼은 다 먹어야 해. 이만큼 쑥이가 다 먹는거야!”
그러고는 내가 더이상 자기 그릇에 덜지 못하도록 밥그릇을 철통 방어했다.
문을 잘 먹이던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행복한 날들이었으나 결과가 건강을 위협하는 지경으로 돌아오다니, 나는 멋쩍고 미안해서 이렇게 답장했다.
“오빠! 같이 다이어트하자. 내가 오빠 먹을 식단 만들어줄게!”
‘그래! 이제부터 양조절도 잘 하고, 몸에 좋은 음식으로 식단을 바꾸는 거야!’ 생각하며 이번 주는 무엇을 요리하면 좋을지 생각하는데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나는 폭소해버리고 말았다.
“쑥이 다이어트가 뭔지 몰라? 난 안 먹어야 해!”
아무리 그렇지만 안 먹는다니? 먹지 않는 것만큼 서러운 일이 어디있는가? 게다가 굶는 다이어트는 몸에서 소중한 근육만 쏙쏙 빼앗아가고, 나중에는 요요까지 필히 불러 일으키니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허! 굶는 건 몸에 좋지 않아요! 대신 내가 살 안찌는 걸로 밀프렙 해둘게!”
그렇게 해서 문네 집에 가는 날을 맞춰 아롱사태 약 1.5kg을 주문했다. 예전에 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오빠, 내가 해준 밀프렙 중 뭐가 제일 맛있었어?”
“음…”
한참 대답 없이 고민만 하길래 ‘그렇지. 그동안 요리를 좀 많이 했었어야지? 메뉴가 많아서 고르기 어려운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대답을 기다리는데 글쎄 돌아오는 대답이란…
“그동안 뭐 먹었었지? 기억이 안나….”
나는 속으로 ‘죽을래…’라는 말을 꿀떡 삼키고는 그간 했던 밀프렙 메뉴들을 나긋하게 읊었다.
“양배추 목살볶음, 홈메이트 지코바 치킨, 또띠아 와퍼, 샐러드 파스타, 콜라 수육, 소고기 미역국, 아롱사태 수육…”
그러자 수화기 건너편에서 큰 소리로 들려온 대답.
“아롱사태!”
그리하여 아롱사태를 주문한 것이다. 문이 제일 맛있게 먹었다는, 게다가 다이어트에도 좋은 양질의 단백질 아롱사태!
금요일, 문이 없는 문네 집에 도착하니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상자를 뜯어 고기를 꺼내고는 차가운 물에 담가 핏물부터 제거했다.
핏물이 빠지는 동안, 필요한 야채를 다듬고, 배송비 무료를 위해 함께 구매한 돼지고기 목살을 삶았다. 삶은 목살을 100g씩 분배하고, 간장 소스에 팽이버섯과 양파를 휘리릭 볶아 한 데 담아내니 금세 다섯 개의 끼니가 완성되었다.
잠시 한숨 돌린 후 메인 요리를 시작했다. 메인요리… 말이야 거창하지만 별 것 없다. 핏물이 빠진 아롱사태를 흐르는 물에 씻어 냄비에 담고, 그 위에 대파와 양파를 수북하게 쌓고 뚜껑을 덮어 불에 올리는 게 전부기 때문이다. 그대로 중약불에서 두 시간 가량 끓여내면 문이 좋아하는 아롱사태 완성.
냄비가 끓는 동안 주방 정리를 하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마침내 한 주가 끝난 게 실감났다. 예전 같았으면 ‘치익- 딱!’ 맥주 한 캔 했겠지만 문을 만난 후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나는, 맥주 대신 문이 사다 놓은 한입 파인애플을 오물오물 먹으며 금요일 밤을 만끽했다. 할 일을 다 해냈다는 이 개운함과 만족감!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문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역시나 회사는 문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고, 문은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퇴근했다. 그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다.
‘삐삐삐-’
도어락 소리에 밍기적 몸을 일으켰다.
“으으- 오빠 왔어?”
“쑥이 피곤했어? 원래 우리 쑥이 여기까지 나와서 나 안아주는데 오늘 피곤한가보다!”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가 금요일 야근을 마치고, 토요일 출근을 앞두고 있는 문을 안아줬다.
“수고했어~~”
“맛있는 냄새나. 쑥이 또 일했어?”
예전 같았으면 갓 삶은 고기를 꺼내 몇 점 나눠 먹으며 미주알고주알 대화를 나누며 밤을 보냈겠지만, 나도, 문도 그럴 여력이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침대에 쓰러졌다. 반가움과 별개로 나는 나대로, 문은 문대로 몰려오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는 서로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여느 날처럼 나는 일찍 눈을 떴다. 당연하게도 문은 여느 날처럼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쿨쿨 자는 사람 옆에 누워 핸드폰을 하다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귓불을 주물거리다가 엉덩이를 토닥이다가 영 심심해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부엌으로 가 전날 삶아둔 영롱한 아롱사태를 먹기 좋은 두께로 한점한점 썰었다.
잘 삶아진 고기 네 덩이를 썰자니 아침부터 ‘빡!’ 전완근에 힘이 들어갔다. 갈수록 팔도 아프고 어깨도 아파서 대충 썰어버리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끝까지 차분하게, 가지런히 고기를 썰었다. 문이 먹을 맛있는 한끼를 생각하며 그가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살찌운 지난 날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르고 나니 양이 상당했다. 도마 한 판을 가득 채운 아롱사태 수육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손이 크긴 크구나….’
수육은 두 종류로 밀프렙을 해뒀다. 고기를 160g씩 세 통에 소분하고는, 국물을 넉넉하게 담아 국밥 밀프렙을 만들었고, 그 다음으로는 고기를 130g씩 세 통에 소분해서 간단한 한끼용 밀프렙을 만들었다. 각 용기에 부추를 먹기 좋은 크기로 담아 뚜껑을 덮어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었다. 그렇게 총 여섯 개의 끼니를 완성했다.
나머지 약 400g의 수육은 우리의 점심이었다. 주말 동안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유일한 한 끼. 드르렁드르렁 세상 모르고 자고 있으나 곧 출근을 해야만 하는 가여운 영혼을 든든하게 먹일 점심 한 끼. 밀프렙부터 점심 준비까지 마치고는 다시 쪼르르 문 옆으로 가 벌러덩 누웠다. 겨우 칼질 몇 번 했을 뿐인데 잠이 우르르 몰려왔다. 문이 일어날 때까지 잠깐 눈 좀 붙여볼까 싶었는데 훽, 몸을 틀어 나를 끌어 안는 문.
‘잠자기는 글렀군….’
우리는 그 상태로 한참을 시덥잖은 농담과 장난을 하며 잠을 깨웠다.
“오빠 씻고 와!”
문이 씻는 동안 수육을 데우고, 부추전을 부쳐 상을 차렸다.
“우와! 이게 뭐야?”
“오빠, 이번에는 딱 g수 맞춰서 밀프렙 해뒀으니까 다이어트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잘 먹어야 해!”
“(먼 산을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으음으음 (아니아니)”
“(큰 소리로 문의 눈을 보며) 잘.먹.어.야.해!”
잘 안 먹겠다던 문은 수육 한 점을 입에 넣더니
“지난 번이랑 같은 거 맞아? 훨씬 부드러워~”
하며 마지막 남은 한 점까지 싹싹 먹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뿌듯했다.
밥을 먹고 출근까지 잠깐 시간이 남았다. 평소라면 의자에 기대 앉아 수다를 떨었겠지만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습관 개선! 밥 먹고 20분 의자 금지!”
“엑? 그럼 내가 설거지 하겠다!!”
“아니야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 오빠는 빨래 개서 다 제자리에 넣어두고 오세요!”
“네~”
같이 보낼 수 있는 짧은 시간을 우리는 알차게 활용했다. 맛있는 밥을 먹고, 식후 습관 개선을 위한 집안일도 하고, 문의 출근길을 데려다줄 겸 산책도 했다. 제법 쌀쌀해진 가을 바람이 기분 좋게 피부에 닿았다. 성큼 다가온 가을을 문과 걷고 싶었던지라 10분 남짓한 산책이 더 애틋하고 소중했다.
문이 없는 동안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하고, 그의 서재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그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결코 읽지 않았을 자기계발 서적. 문이 없는 문의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은 허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존재가 내게 얼마나 자연스럽고 익숙한 존재가 되어버렸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밤 열한 시가 넘어 집밖으로 나갔다. 가벼운 걸음으로 그를 마중나가 두 팔 벌려 그를 맞이했다.
“쑥이 심심했지?”
“오빠 수고했어. 우리오빠 주말 시작!”
진짜 주말이 시작되는 밤이었으므로 야식을, 하다못해 팝콘이라도 돌려 먹을 법 한데, 다이어트라는 과업을 수행 중인 우리는 조촐하게 제로 음료수를 한 캔씩 꺼내 들고는 축배를 건넸다. 음료수를 홀짝이며 같이 유튜브를 보는 데 갑자기 문이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갔다.
“내일 아침은 쑥이 핫도그 먹여서 교회 보내야지! 빵도 있고, 소세지도 있고, 집에 양파가 남았었던가?”
“오잉? 우리 오빠 내일 아침 피곤해서 그럴 정신 없을 텐데~? 분명 잠에 헤롱거리고 있을 텐데~?”
“아니야! 쑥이 아침 먹이고 다시 잘 거야!”
그날 밤 축배를 비우고는 우리는 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침대에 쓰러졌다.
“오빠, 오빠는 일하고 왔으니까 피곤한 거 인정인데 나는 왜 피곤할까?”
“쑥이 오늘 청소기도 돌리고 빨래도 하고 피곤하지! 내일 일찍 교회가야하니까 어서 자자!”
우리는 그날 역시 고개를 맞대고 누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에 들었고, 다음날 아침 역시나 나는 먼저 깼고, 그는 꿈나라였다. 내가 그냥 나가도 모를 것처럼 태평하게 자는 그를 보니 어젯밤 핫도그를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가 떠올라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니 아침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아침 식사를 만들어준다는 사람 옆에서 달그락 거리며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도 문은 아무것도 모른 채 태연하게 잠을 잤다. 아침을 먹고, 나갈 채비를 하고는 그를 깨워 인사를 했다.
“오빠! 나 다녀올게!”
“으음 몇 시야? 쑥이 아침 먹어야 하는데~”
“나 아침 먹었는데!”
“언제 먹었어?”
“크크 바보. 바로 옆에서 먹었는데 엄청 잘 자더라?!”
“으잇…”
우리의 짧은 데이트. 물리적인 시간은 짧았지만 마음에 남는 여운은 길었다. 어쩌면 우리 주말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로 채워지는 게 아닐까. 그 짧은 주말이 오래도록 웃음이 되는 걸 보면 말이다. 함께한 잠깐의 식사, 잠깐의 산책, 서로의 머리를 쓰다듬은 소소한 순간들까지. 평범한 하루가 쌓여 우리의 일상이 된다. 그 속에서 나는 문과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