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
출근길부터 배터리 잔량이 3%인 느낌이었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게 다 새벽 늦게까지 이어진 문과의 전화 때문이다. 소세지를 한입에 밀어넣으며 다짐했다.
“오늘은 무조건 일찍 자야지.”
어젯밤은 문과의 전화가 길어졌다. 우리는 가끔 정치 이야기에 불을 붙인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문은 가끔 정치 이야기에 불을 붙인다. 이야기에 불이 붙는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쿵짝이 잘 맞아서 얘기가 술술 이어지거나, 팽팽한 설전이 불꽃처럼 튀거나.
안타깝게도 문과 나는 후자다. 정치 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게 된 건 우리가 만난 지 2개월 정도 되었을 때다.
무지 더웠던 어느 여름날, 문과 나는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을 먹고 식당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는 2층이었고, 우리는 카페 창가에 나란히 앉았다.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는데 바로 맞은 편이 국회의원 나경원 지역사무소였다.
“여기가 나경원 지역구구나?”
“요즘 열일하고 계시지 경원 누님.”
나와 비슷한 쪽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지 않은 소리가 나왔어야 맞는데 그렇지 않았다. 열일? 누님? 비꼰 건가? 싶었지만 아닌 것 같았다. 그때 얼핏 짐작했다. 우리의 정치관이 다를 것이라는 걸 말이다.
얼핏 짐작했던 것이 의심할 것 없이 확신이 된 것은 계엄령이 발동된 겨울날 밤이었다. 문과 전화를 하는 중 속보가 뜨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 계엄령 선포’.
오보일 거라 생각했지만 오보가 아니었고, 그때부터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떻게 하지? 나 전주 내려가야 하나? 가족들 볼 수 있나? 아니 오빠는? 동탄으로 먼저 가야하나?’
계엄령이라 하니 현대사 시간에 배웠던 군부 독재 시절이 왕왕 떠올랐다. 평온하던 삶이 갑자기 역사 교과서 끄트머리에 자리한, 혼란의 시기 현대사 챕터에 편입된 것 같았다. 정말로 겁이 난 나는 전화에 대고 호들갑(?)을 떨었다.
“오빠 계엄령 뻥 아니야. 진짜인가봐?”
“오빠 진짜래. 헐… 나 무서워…”
하지만 문의 온도는 차분하다못해 차갑기 그지 없었다.
“그럴 일인가?”
다행히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계엄은 해제되어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2025년 계엄령 발동을 두고 ‘윤석열 탄핵 찬성’과 ‘윤석열 탄핵 반대’로 대한민국은 극명하게 나뉘었고, 나와 문이 서로 다른 편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며, 야당의 횡포에 정당하게 발동된 계엄이다’
‘아니다. 지금은 전시, 사변, 이에 준하는 상황이 전혀 아니며, 설령 거대 야당의 횡포라고 할지언정 이를 뒤집는 방식은 계엄이 아닌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
‘계엄령이 얼마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는지 과거사가 보여주지 않느냐.’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는 현재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지 과거가 중요하느냐.’
어느 주말 아침,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날선 의견을 주고받았고, 등을 돌리고 누워 각자 핸드폰으로 기사만 들여다봤다. 문과 처음으로, 정말이지 난생 처음 대립한 날이었다. 우리의 대립이 우리 둘의 어떠함이 아닌 윤석열 때문에 일어날 줄이야…. 그 겨울, 유난히 추웠고 고민이 깊었다.
안그래도 ‘이찍남’이니 ‘개딸’이니 하며 대립되던 2030 남녀 정치 지형이 더욱 극대화 되어 가는 형국이다. 국민의 58%가 ‘정치 성향 다른 사람과 연애와 결혼이 불가능하다’는 통계 자료가 나왔고, 실제로 주변 친구들은 “정치 성향 다른 사람 어떻게 만나? 난 절대 못 만나~”하며 나를 측은하게 보는 시선이 남자고 여자고 모두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단절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거야말로 이념과 사상에 취해 정작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 윤석열의 계엄 선포부터 그가 파면, 그리고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나라는 시끄러웠고, 그때마다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어조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하고 냉랭해지곤 했다. 얼마나 윤석열을 저주했는지 모른다. 그만 아니었으면 우리 사이 이런 냉랭함도, 갈등도 없었을 텐데 하며….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의견이 대립하는 게 아니라 세계가 충돌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넘어설 수 없는 벽과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대부분이었고, 그럴 때면 ‘내가 아는 문이 맞나?’하며 생경했다.
하지만 지난한 대화의 소득도 있었다. 그와 이야기할 때면 나는 종종 내 주장을 뒷받침할 논리와 근거의 빈약함을 인정해야 했고,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왜 이것을 지지하는가?’ ‘나는 왜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렸다고 생각하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기 위해 기사를 더 열심히 찾아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세계가 넓어졌고, 모호하게 나를 사로잡고 있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다. 나와 가까이 연결된 9할 이상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정치 성향을 띄는 사람들이다. 그 전에는 나와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요상한 스테레오 타입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솔직하게는 ‘이상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역시 사람은 만나봐야 안다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이웃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문을 통해 깨우쳤다. 그러자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당연한 사실이 체감되며 세계가 넓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과 대립하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다. INTP, 그 중 ‘T:F=100:0’인 문에게 이런 류의 대화는 그저 ‘토론’이었지만, 평화가 깨지는 것이 극도로 두려운 몰랑이 INFP에게 이런 류의 대화는 매 순간이 긴장이었다. 나부터 말투가 평소와는 다르고 대화의 공기가 냉랭한데, 혹여나 이것이 우리 관계의 평화를 깨트릴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문과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주고받는 일은 나를 긴장하게 하면서도, 그 사실 자체로 우리를 대견하게 여기게 했다.
오랜만에 우리 사이 불이 붙었다. 그러니까 ‘뜨밤’의 불이 아니라 정치적 견해가 다름으로 생기는 ‘위험한’ 불 말이다.
“삼권분립이 위태로운 것 같지 않아?”
불씨를 지핀 것은 이 한마디였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3개월 가량이 지났다. 새 정부의 개혁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리며, 부처 개편안이 하나 둘 보도되는 시점이었다. 검찰청 폐지가 발표되었고, 기획재정부 분리 개편이 발표되었다. 뉴스 헤드라인 정도만 확인하면서 ‘그런가보다’ 했던 나로서는 ‘갑자기 삼권분립?’하며 어리둥절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나로서는 문의 의견에 동의한다. 내란 청산은 국정 과제가 맞지만, 이를 위해 대법관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내란재판부를 신설하는 등 간접 선출 기관인 사법 기관 위에 직접 선출 기관인 입법 기관이 존재한다는 의견은 민주주의 삼권분립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나 역시 생각한다. 이 생각에 이르기까지 나 스스로 충분히 자료를 찾아보고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밤, 그러니까 우리 사이 오랜만에 토론의 불이 붙어버린 그 밤, 우리 대화는 건설적이고 건강하지 못했다. 문에게는 미안하고 스스로에게는 부끄럽게도, 문이 정치 이슈와 견해를 밝힐 때, 그것이 얼마나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은가를 잠자코 듣기보다 나도 모르게 경계 태세, 비판 모드로 그의 말을 듣고 있다. 문은 하나의 견해를 말하는 중인데, 나는 그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문은 자기 논리를 펼치는 중이고, 나는 감정적으로 고양된다.
대화 중 비언어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이다. 말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서로의 눈을 볼 수 없고, 손을 쓸어내릴 수도 없고, 숨소리도 들을 수 없이 오로지 목소리로만 서로 다른 견해를 주고받으니 대화는 자꾸만 어긋났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간이 늦었다는 것을 바이오 리듬으로 알 수 있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내고 잠자코 대화에 집중하려다보니 일시적 브레인포그처럼 머릿속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대화를 중단하고 만나서 더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전화를 끊어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꼭 싸우다가 휴전한 사람들처럼 느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오빠, 나 그만 잘래.”
“쑥이 자자! 늦었다!”
“오빠, 근데 나 잠 안 올 것 같은데….”
“왜~?”
“... 오빠는 나랑 이렇게 대화하고 잠이 잘 올 것 같아?”
“...응!”
“...”
“쑥이!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쑥이를 공격하는 게 아니에요!”
“알겠어. 나 잘게.”
그 밤, 토론의 불길이 피로로 남았다. 피곤하니 아침부터 당 충전 욕구가 폭발했다.
‘정신차려! 너 일하러 가야 해!’
온 몸에서 당장 에너지를 충전하라며 식욕을 증폭시켰다. 평소처럼 블루베리와 단백질쉐이크를 먹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몸은 냉장고에 있는 왕소세지를 꺼내들었다. 며칠 전 놀러온 문의 아침 식사를 위해 사다 놓은 왕소세지. 20cm가 족히 넘는 왕소세지를 쇠젓가락에 꽂아 들고는 그대로 집을 나섰다. 룰루랄라 핫도그를 사먹으며 하교하는 초등학생처럼, 나는 왕소세지를 우걱우걱 베어 먹으며 출근길을 나섰다.
하루 종일 기력이 바닥이었다. 회사에서도 정신이 계속 안개 속이었다. 얼른 퇴근하고 집에 가서 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퇴근할 때가 되니 아침에 우걱우걱 씹어 먹은 왕소세지 생각이 났다.
‘안돼. 그래도 운동은 하고 가자. 소세지 먹었잖아~’
무거운 발걸음으로 헬스장으로 향했다. 평소 운동 강도의 60% 정도로 빠르게 운동을 마친 후, 저녁 일곱 시 침대에 쓰러졌다. 두세 시간만 자고 일어날 생각으로 침대로 다이빙을 했다. 열 시에 일어나서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약 섭취 시간이 틀어지면 곧바로 부정출혈이라든지 두통이라든지 부작용이 몸에 발생하기 때문에 꼭 1일 1회 같은 시간 약 섭취를 해야만 한다. ‘너무 피곤해서 못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알람 같은 걸 맞출 정신은 없었다. 나는 침대에 머리를 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방안을 가득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에 깼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어디에서 걸려온 전화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쑥쑥이! 약먹자! 약 먹을 시간~~!”
그 소리를 듣자마자 웃음이 새어나왔다.
“헐~~ 벌써 열 시야?”
잠긴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가서 약을 먹었다. 물과 함께 알약을 꿀꺽 삼키니 그제야 눈이 조금 떠졌다.
“쑥쑥이! 어제 나 때문에 잘 못자서 오늘 피곤했지?”
그와 전화를 하는 동시에 카톡을 열어보니 문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쌓여 있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 끝에 내가 잠 들었다는 걸 파악하고는 전화로 나를 깨워 약을 먹인 것이다.
“응 너무너무 피곤한데~~ 오빠는 안 피곤해? 오빠도 늦게 잠들었잖아?”
“끄떡없지!”
정말로 끄떡없는 팔팔한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어젯밤 정치 이야기에 불을 붙였던 열띤 토론과는 전혀 다른 온기의 남자. 문 때문에 헤롱헤롱 배터리 잔량 3%로 시작한 하루가, 문의 다정한 충전으로 문을 닫는다.
전날 밤과는 다른 다정한 순간을 좀 더 붙잡아 두고 싶었지만 그건 내일로 미뤄둔다.
“오빠, 오늘은 혼자 놀아. 나는 일찍 자야겠어. 잘자!”
문의 기본값은 다정이니까. 어제의 충돌에도 우리의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3%였던 내 하루가, 그의 다정한 알람으로 충전하며 마무리된다. 그걸 알기에 우리의 다음 토론이 두렵지 않다. (아주 조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