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리는 하루 연결되는 우리
아침에 눈 뜨자마자 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수고했다~ 어서 자자!”
나의 아침이 문의 밤이 되고, 문의 아침이 나의 밤이 되는 시간. 마치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처럼 낮과 밤이 온통 뒤바뀌어 버리는 시간. 바로 문의 야간 근무 주간이다. 평소라면 잠들기 전 전화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저녁 잘 챙겨 먹었어?”
“오늘 운동 너무 힘들었어”
“대박! 오늘 농심 주가 엄청 올랐어!”
오늘 있었던 일, 별것 아닌 잡담, 내일의 작은 계획 같은 걸 나누다 보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러면 슬슬 한 명이 쩍-쩍- 하품을 해대기 시작하고 (보통 하품을 하는 쪽은 나다), 하품이 신호탄이 되어 우리의 전화도 종료된다. 하품 한 번으로 깔끔하게 문 닫는 하루, 이것이 우리의 보통날의 밤이다.
하지만 우리의 하품 신호가 엇갈리는 시간, 문의 야간 근무 주간이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잘 시간에 문은 일을 시작하고, 내가 출근 준비를 할 때쯤 문은 퇴근을 한다. 깨어있는 시간이 완전히 엇갈린다. 그러니 목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어려워진다.
처음엔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게 허전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서운하다거나 아쉬웠던 건 아니다. 오히려 걱정에 가까웠다. 낮과 밤이 바뀐 리듬에 몸이 적응하고 있는지, 이를 테면 깨지 않고 충분히 잘 자고 있는지, 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떼우고 있는지, 소화는 잘 되고 있는지… 그런 사소한 장면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쓰였다.
이때가 되면 우리는 서로에게 생사를 보고하는 정도의 연락을 주고 받았다.
‘나 출근!’
‘나 퇴근!’
‘잘 자!’
‘화이팅!’
최소한의 연락. 상대방이 걱정하지 않도록 도리를 다하는 연락.
메세지를 보내면 반나절이 지나야 답장 오는 게 태반이니 초반엔 길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의 삶에, 서로에게 적응해갔다.
그런데 이번 주는 조금 달랐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쑥쑥이 뭐해~?”
아침 댓바람부터 건네오는 명랑한 인사에 잠이 확 깼다. 밤 새서 일했으니 피곤에 찌는 목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목소리는 금요일 밤 주말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낭랑했다.
“푸흐~ 뭐야? 힘이 넘치네. 퇴근했어?”
그렇게 문은 출근 준비부터 출근길까지, 쭉 나의 전화 메이트가 되어줬다. 오히려 내쪽에서 걱정이 되어
“오빠 이제 그만 자!”
라고 해도 문은
“안 돼! 안 자!”
하면서 내가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미주알고주알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낮과 밤이 바뀌니 우리의 대화 주제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는데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다.
“쑥이 아침 먹었나?” (저녁 메뉴 -> 아침 메뉴)
“오빠 어제 지수 좀 떨어졌어.” (국내 주식 -> 미국 주식)
“이제 아침에 제법 선선해!” (저녁 날씨 -> 아침 날씨)
대화 주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우리다운 전화였다. 몇 번이고 주고받은 익숙한 전화. 하지만 전화 통화가 뭐라고 출근을 준비하는 내가 웃고 있었고, 매일 같이 걷는 출근길이 새롭게 보였다. 피곤할 텐데도 아침을 함께해주는 그의 마음이, 하루의 시작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이렇게 전화를 주고받았느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틀에 한 번 전화를 주고받았다. 밤을 꼴딱 새며 일을 한 문의 피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문에게 야간 주간은 절호의 기회다. 다이어트를 위한 절호의 기회!
문은 야간 주간이 되면 퇴근 전후로 하루 두 번 헬스장을 간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성실하게 천국의 계단을 오르고, 인클라인을 걷는다. 왜 하필 이때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새벽에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것보다 기상이 쉽기 때문일까.
밤샘 업무, 업무 앞뒤로 끼워 넣은 헬스로 온몸에 피로를 가득 달고 귀가했을 문의 컨디션을 고려해 문은 하루 건너 하루 나의 출근길 메이트가 되어 주었다. 문이 메이트를 쉬는 날이면 내가 먼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굳밤!”
짧은 인사만 건네고 끊으려는데 들려오는 목소리. 당장이라도 곯아 떨어질 사람의 주정 같은 목소리.
“쑥쑥이 아침 잘 챙겨먹고”
“차 조심하고”
“오늘 운동 너무 무리하지 말고”
“출근 화이팅~~”
문은 언제나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인사를 건네고는 꿈나라로 향했다. 낮과 밤, 수면과 기상, 그리고 개운함과 피곤함 모든 게 뒤집힌 채, 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시간이었다.
낮과 밤이 뒤바뀌어도, 우리의 삶의 리듬이 엇갈려도, 서로를 챙기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 출근길과 퇴근길, 깨어있는 시간과 잠든 시간의 간극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확인하고 안심시킨다.
연락이 뭐 대수냐 싶겠지만,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연락을 해오는 이 정성.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전화 한 통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사소한 인사 하나가 더 큰 위로로 느껴진다. 덕분에 하루가 좀 더 부드럽게 흐른다.
서로를 향한 노력과 기쁨이 하루하루 쌓여갈수록 나는 안도감을 느낀다. 낮과 밤이 바뀌어도, 바쁘고 피곤한 일상이 반복되어도, 우리 사이의 마음은 변함없다는 사실이 믿음직스럽다. 작은 일상의 작은 조각일 뿐이지만, 이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날들이야말로 가장 큰 감사이자 위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