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남자친구가 집에서 혼자 쓰러진다면?

심장이 철렁했던 어느 아침의 기록

by 쑥자람

톡-

토도독-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6시 58분.

‘늦잠 자버렸네. 어차피 비 와서 뛰러 가지도 못 하겠군.’


"오빠 비온다 런닝 패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전, 문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어떡하지? 배가 너무 고프다!”

“우리 오빠 두유라도 하나 먹을까? 아니면 블루베리 한 줌 먹을까?”

“안 돼! 내일 아침까지 공복으로 있다가 운동 갈거야. 그래야 살 빠져!”


요즘 문은 들쭉날쭉 1일 1식 중이다.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온 지방간 수치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다. 보통은 지방간을 애주가 전용 질환으로 알고들 있을 거다. 하지만 태어나서 술이라고는 딱 한 잔, 그러니까 정말로 딱 할아버지가 따라주신 술 딱 한 잔 마신 게 전부인 문은 지방간 환자다. 일명 비알콜성 지방간. 요즘 비알콜성 지방간 환자가 늘고 있다고 하던데 그 중 한 명이 문인 것이다. 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껏,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지방간 수치가 나빠지는 중이다.


올해 건강검진 결과, 그의 지방간 수치는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검진 결과를 알려주신 선생님께서는 문에게 병원에 갈 것을 권유하셨고, 몇 달을 미루고 미루다 병원에 간 문은…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최후의 통첩을 듣고야 말았다.


“딱 두 달 드릴 테니 살 확.실.히 빼고 오세요”


문의 1일 1식이 시작된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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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식. 말이 1일 1식이지 쉬울 리가 있나…. 집에서 누워 숨만 쉬며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문처럼 주 5~6회 출근을 해야하고, 교대 근무로 매주 근무 사이클이 바뀌는 사람에게 1일 1식이 쉬울 리 없다.


하지만 병원에서 마취 없이 맨 살의 염증을 긁어낼 때 다리를 달달달 떨면서도 ‘아픈 건 다리지 내가 아니야’ 되뇌며 두 눈 부릅 뜨고 고통을 참아낸 문 아니던가? 이번에도 ‘배고픈 건 내 장기지 내가 아니야!’하며 허기를 참으며 독하게 1일 1식을 고수하려 애썼다. 다만 그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데이트… 실은 바로 말하자면 그의 1일 1식 최고의 걸림돌은 나였다.


“어떻게 혼자 먹어? 그럼 나쁜 여자친구 같잖아.”

“잉? 그건 나쁜 게 아니에요. 나를 먹이고 살 찌게 하는 게 진짜 나쁜 거예요!”

“그래도 같이 있는데 어떻게 혼자 먹어? 햇반 하나 돌려서 똑같이 반반 덜어서 나눠 먹을까?”


이런 식으로 식사 때마다 문을 끌어들였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가 하는 1일 1식이 못 미더웠다. 도리어 걱정이었다. 젊을 때야 1일 1식 정도 며칠 할 수 있다만 지금 우리는 삼시세끼를 거하게 먹지는 않더라도 매 끼니 허기를 달래줘야 버틸 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문의 1일 1식 섭취 시간은 그의 근무 스케줄에 따라 매일 바뀌었다. 그의 식사 시간은 정오가 되기도 했고, 새벽 두 시가 되기도 했고, 오후 세 시가 되기도했다. 그러니 그의 몸뚱아리로서는 ‘도대체 내 주인은 밥을 언제 주는 거야?’하며 ‘언제 밥을 줄지 모르니 영양분이 들어올 때마다 일단 저장해두고 보자!’하며 몸에 혼란을 가중할 수밖에. 게다가 그간 문의 하루 섭취량을 생각해볼 때 ‘1일 1식을 해야 할 정도로 하루 섭취량이 많았는가?’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나처럼 간식 같은 건 먹지 않고 하루 두 끼 먹는 게 전부인 그의 식사량은 줄일 게 없었다. 오히려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면 그건 내 쪽이었지….


“오빠,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빠가 1일 1식을 해야 할 정도로 평소에 많이 먹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평소처럼 먹고 활동량을 늘리면 어때?”


그의 활동량은 집-회사-집-회사, 즉 출퇴근길을 제외하면 제로에 가까웠다. 회사에서는 라인 상황에 따라 밥을 먹자마자 곧장 사무실로 복귀할 수밖에 없다손 쳐도 그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조차 밥 먹고 나면 무조건 앉는 게 습관이다. 역류성 식도염을 염려해서 침대에 드러눕지 못할 뿐, 의자에 반쯤 눕듯 기대 앉아 돌멩이처럼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있는 게 그의 식후 루틴이다. 그래서 나는 1일 1식이 아닌 활동량 늘리기를 권한 것 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으로.


‘밥 먹은 직후 15분 동안은 의자에 앉지 말기!’

예시1) 밥 먹고 나서 바로 설거지 하기

예시2) 밥 먹고 나서 빨래 개고 제자리에 두기

예시3) 밥 먹고 나서 청소기 한 바퀴 돌리기

예시 4) 밥 먹고 나서 분리배출 하고 오기


하지만 견고한 문이 순순히 져줄 리가. 나랑 같이 밥 먹는 날이면 “오빠 빨래 개서 갖다 놓으세요~” 같은 심부름을 주문한다거나 바로 산책 갈 채비를 시키니 내 원대로 해줬지만, 혼자 있을 때면 도루묵이었다. 습관이란 의지를 동반해도 바꾸기 어려운 것인데 의지조차 없으니 몸은 관성을 따를 수밖에. 가끔 사내 헬스장 최소 방문일을 채우기 위해 근무 전후로 헬스장에서 유산소 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횟수, 시간 모두 들쭉날쭉이었다. 이런 그가 항상 입 모아 외치는 말.


“다이어트는 운동 보다 식단이야!”


그리하여 한 달 간 그는 고집스러운 들쭉날쭉 1일 1식 생활을 했다.



지난 일요일, 야간 근무를 마친 문이 힘이 쭉 빠진 얼굴로 집에 왔다. 평소라면 ‘밤새 일하고 온 사람 맞아?’싶을 정도로 (밤새 자고 일어난 나보다) 넘치는 기운으로 “쑥이 교회 가기 전에 아침 해줘야겠다!”하며 주방에서 달그락 거렸겠지만 그날 아침은 달랐다. 문은 양 볼과 목덜미와 양 손에 가득 달고 온 찬 공기를 내 양 볼과 품에 묻어 데우는가 싶더니 5분도 채 되지 않아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잠든 그를 토닥이다 한 시간가량 눈을 붙이고는 살금살금 교회 갈 준비를 했다.


준비를 마치고 10분 정도가 남아 그의 머리맡에 앉았다. 천장을 보고 누운 채 입술을 살짝 벌리고 잠든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머리를 쓰다듬다가, 그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아주 슬며시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자 손끝, 발끝, 눈꺼풀, 심지어 콧김에조차 미세한 떨림 없이, 그가 입술을 아주 살짝 동그랗게 말아 앞으로 내밀었다.


“안 잤어?”

“....”

“오빠 나 이제 갈 건데!”

“....”


간다는 말에 대답도, 미동도 없는 문. 간다고 하면 그 긴 두 팔 두 다리로 숨도 못쉬게 끌어 안고는 “안 돼 못 가!”하며 잠투정을 부리는데 정말이지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인사도 없이 쿨쿨 자는 그가 밉다거나 서운하다기보다는 어딘가 애처로운 마음이 올라왔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나는 그의 감은 두 눈에 무엇이라도 말하는 사람처럼 그를 눈으로, 손으로 한참 어루만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빠가 이대로 영영 잠들면 어떻게 하지?”


갑자기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나로서는 충분히 걱정해봄직한 일이었다. 혼자 자취를 하면서부터 나는 종종 잠들기 전 이런 상상을 한다.


“만약 오늘밤 내가 잠들었다가 내일 너무 아파서 일어날 수도, 연락을 취할 수도 없으면 어떻게 하지?” “이대로 잠들었는데 내일 눈을 못뜨게 되면 어떻게 하지?”


세상 모르고, 그러니까 어떤 미동도 없이 자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니 역으로 그런 걱정이 든 것이다. 그 순간, 내 안에서 그 어떤 때보다 강한 의지가 번뜩였다.


‘오빠 지방간 수치가 정상 범위로 들어오도록 기필코 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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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순간이었지만 문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오래오래 같이 나이들며 늙어가고 싶다. 문이 나이 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 건강한 몸으로 지금처럼 요리하고, 서로를 먹여주고, 산책을 가고, 만화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그의 건강 관리에 적극 협조하리라는 다짐이 선 것이다.


“오빠 나 다음 주 금요일에 올게! 간다~”

“… 으어… …”


그날 밤, 우리는 보통의 일요일 밤처럼 나는 내 침대 위에서, 문은 문의 침대 위에서 전화를 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문은 하루종일 교회 스케줄을 소화하고 늦게 들어온 나보다도 기력이 없었다. 오후 느즈막히 일어나서 먹은 일명 ‘쑥도시락’(문이 먹을 식량을 직접 조리하여 냉동실에 대량으로 쟁여 두는 밀프렙으로, 이날 문이 먹은 것은 아롱사태 수육 130g이었다.)이 하루 동안 먹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날 문은 유독 배가 고픈지 좀처럼 하지 않는 “배고프다”는 말을 전화 중간중간 내뱉으며 괴로워했다. 약한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그의 음성을 듣고 있으니 새로운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허기를 참는 그의 밤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약하게 허기에 굴한다면 그건 문이 아닐 터. “두유 세 모금으로 허기만 달래볼까?”, “블루베리 한 줌으로 포만감만 채우고 바로 잘까?” 하는 회유책은 아무 힘이 없었다.


“안 돼! 내일 아침까지 공복 유지하고 운동 갈 거야!”

어떤 말도 그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를 회유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나도 내일 아침 공복 런닝하고 출근해야지!”



톡-

토도독-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6시 58분.

‘늦잠 자버렸네. 어차피 비 와서 뛰러 가지도 못 하겠군.’


"오빠 비온다 런닝 패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전, 문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그러고는 ‘5분만’, ‘10분만’을 시전하며 뒹굴거리다 몸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되어서야 욕실로 들어갔다.


‘오빠는 운동 갔나?’


운동을 갔다면 헬스장 가는 길에 연락을 남겼을 법한데 조용한 핸드폰.


‘역시 월요일 아침 운동은 무리지?’


나는 오빠 역시 어젯밤 다짐은 까무룩 잊고 늦잠을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집을 나섰다.


8시 30분. 출근을 완료하고는 PC 카톡을 켰다. 이쯤이면 아침 운동은 실패하더라도 출근 때문에 일어났어야 할 시간인데, 헐레벌떡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인데 그의 연락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이상하네. 많이 피곤했나? 오늘 자율출근하려나?’


그러고는 업무를 하려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자율출근이라 하더라도 30분 정도의 지각을 허락하는 정도로 출근 시간을 조정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제 슬슬 일어나야 했다. 문을 똑 닮은 파란 강아지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펴는 이모티콘이 올 타이밍인데… 메시지 창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했다.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잘 잘 뿐더러 ‘사람이 겨울잠을 자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오래 자는 그이기 때문에 늦잠을 자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입사 초기 교대 근무 사이클에 적응하던 때에 늦잠을 자다 택시를 탄 적이 있기도 하고, 불과 몇 달 전엔 문이 교대하러 오기를 기다리던 동료의 전화를 받고 헐레벌떡 회사로 달려간 일이 있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불안이 꿈틀거렸다. 어딘가 잠들어 있는 작은 불안의 불씨는 작은 바람이 일면 ‘옳다구나. 이때다!’하고는 바람을 동력 삼아 활활 불씨를 키워간다. 나의 불안은 전날 그의 건강을 염려하던 자아에서 시작이 되었다.


‘혹시 오빠 아픈 거 아니겠지?’

‘어제 유독 배고프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굶는 게 오빠 간에 더 무리였던 걸까?’


불안의 불씨는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 걸까? 업무 화면을 보고 있었지만 생각은 완전히 딴 곳에 가있었다. 비알콜성 지방간 환자는 대부분 BMI 지수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혈관, 혈압 문제도 동반할 수 있고, 간경변 같은 다른 간 질환으로 연쇄 작용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어디서 읽었던 기사 내용이 생각났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서의 문은 단순 늦잠을 자느라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아닌, 의식을 잃고 쓰러져 도움이 필요한 문이 되어 있었다.


호들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심각했다. 먼저는 전날, 세상 모르고 잠든 그를 보며 ‘그가 영영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했던 영향을 받은 탓이고, 둘째는 존경하는 이모부께서 모처럼만에 이모가 작은 이모와 처음으로 둘이 자매여행을 가 있는 동안 뇌출혈로 쓰러지셔 큰일날 뻔한 경험을 가까이서 지켜본 탓이며, 셋째는 회사 동료의 남편분께서 본인도 알지 못하는 심혈관질환으로 의사로부터 ‘자는 중에 죽어도 이상할 것 없었는데 다행이다’는 말을 듣고는 수술과 다이어트를 병행했다는 말을 들은 탓이다. 불안은 기억 저장 장치 속 부정적인 것들만 긁어 모아 나에게 올려 보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제멋대로 요리조리 퍼즐을 맞추며 나를 더 큰 불안으로 몰아 넣었다.


한편으로는 ‘아니야.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새벽에 일찍 출근했을 수도 있잖아? 한참 일하는 중이라 연락이 없을 수도 있지.’라고도 생각해보려 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문은 기상, 출근, 퇴근, 이 세 가지 만큼은 로봇처럼 성실하게 연락을 하기 때문이다.


고민을 하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 고민한 이유는, 뜬금없는 시간에 전화를 건 나 자신이 이상하게 보일까 하는, 그런 이미지에 대한 재고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이라면? 이미지가 대수일소냐?


‘제발 전화를 받길. 막 잠에서 깬 목소리로 느긋하게 전화를 받아주길.’


하지만 신호음이 세 번도 가기 전에 즉각 즉각 전화를 받는 그와 달리 신호음만 길었다. 회사에서 한참 일하는 중이면 전화를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아예 배제한 것은 아니었으나 생각은 최악의 가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문과 같은 계열사에 근무하는, 우리를 소개해준 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오빠 출근했는지 메신저 상태로 봐줄 수 있어?”

“헉 오빠 연락이 안 되니?”

“안 했넴”


이로서 머릿속에서 그가 출근해서 일하는 중이라 연락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는 가정은 지워졌다. 남은 것은 늦잠, 혹은 그에게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것. 그러자 심장은 쿵쾅쿵쾅 빠르게 뛰고, 1분이 10분처럼 천천히 흘렀다.


나는 30분 동안 일곱 통의 전화를 걸었다. 어딘가 미저리 같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생각했다.


‘나 동탄 가야하나?’

작심하고 마지막 전화를 걸었다.


‘이거 안 받으면 동탄 가야겠다’

결과는 역시나 통화연결음 뿐.


‘그래. 아무리 잘 자도 출근을 못할 정도는 아니잖아. 역시 어제 무리했나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이런 결론에 다 다르자 나는 초조와 불안 덩어리가 되었다. 자리로 돌아와 국장님을 불렀다.


“저… 집에 일이 생겨서…”


국장님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으시고는 “어서 가보세요”라고 하셨다. 표정에 다 드러나는 내 얼굴이 굉장히 심각했던 게 틀림없다. 나는 “중간에 메신저로 연락 드리고, 다녀와서 말씀 드릴게요”하고는 가방을 들쳐 업고 그 길로 뛰쳐 나와 지하철 역까지 전력 질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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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탈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고속도로는 택시보다 버스 전용차로를 이용하는 게 빠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 시간은 넘게 족히 잡아야 하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이 있나 생각도 해봤지만 문과 나의 공통 지인은 신뿐이었다. 왜인지 오빠의 동생에게 연락해 “형님이 연락이 안 되는데 혹시 확인이 가능할까요?”라고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어떤 연락처도 없었다. 오빠가 사는 오피스텔 경비실에 문의를 해보려고도 했지만 검색하면 나오는 것은 부동산 정보일 뿐 경비실 연락처가 나올 리가.


‘침착해.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어. 기다리는 것 뿐이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도했다.


‘제발 오빠가 집에서 속 편하게 자고 있게 해주세요. 아무 일 없게 해주세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머릿속에 ‘골든타임’이라는 단어가 번뜩였다.


‘내가 가는 동안 혹시 오빠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어떡하지?’


이럴 땐 119를 불러야 하는지, 112를 불러야 하는지 도통 아는 게 없었다. chat GPT를 켜 물으니 상황을 나눠 정리를 해줬는데 119가 좀 더 맞는 쪽인 것 같았다. 막상 119에 연락을 하려 하니 겁이 났다. 무엇이 겁이 난 것일까.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나는 집에서 속편하게 자고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구급대에 놀랄 그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책으로 그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걱정하는 카톡 아래 하나의 메시지가 추가되었다.


"나 119 부른다..!!"


그러고는 119를 발신 키패드에 눌러놓았다. 광역 버스 환승 구간인 을지로 입구역 문이 열렸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는, 지하철에서 내리며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참이었다.


"일어났다"

"엑 나 오후 출근인데 스윙인데"


문이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문의 연락. 개찰구를 향해 가는 인파를 피해 한쪽에 선 채 채팅창을 들여다보았다.



온몸에 힘이 쫙 빠졌다. 그러고는 답장을 보냈다.


"오빠아"

"오빠아아!"

"다행이야"


당최 119라니? 영문도 모를 뿐더러 잠이 덜 깬 문의 어리둥절이 카톡 너머로 느껴졌다.


"나 오빠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어"


그러자 그가 보내온 답장

"나 오늘 스윙이라 낮잠 좀 잔 건데!"


회사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는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복기해보았다.


‘왜 오빠 근무표 볼 생각을 못 했지?’


기본을 놓치다니! 너무 어이없고 허탈했다. 하지만 효력 없겠다만 변명을 해보자면, 분명 문이 ‘아침에 운동을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당연히, 당연히 9시 출근인 줄 알았단 말이다. (효력 1도 없다.)


어쨌거나 문은 별 일이 없어 다행이었고, 나는 혼자 호들갑 떤 것으로 끝나 다행이었다. 폭풍 같은 호들갑을 반추하니 <인사이드 아웃 2>의 하이라이트, 불안이의 불안이 휘몰아치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주 영화를 찍었군.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었네.’


시간표만 확인해보면 될 일이었는데 그걸 놓치고는 난리법석을 떤 스스로가 어이 없어서 지하철 안에서 혼자 웃고 말았다. 신에게 연락해 해프닝을 설명하니 다행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폭풍 같은 불안에서 유일하게 기댈 곳이 되어주었던 신이 고마웠다.


‘아… 회사 가서는 뭐라고 말하냐?’ 하며 머리를 긁적이는데 문에게 메시지가 왔다.


"엑 이제 봤다 전화 엄청 많이 했었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문에게 전화를 걸었다.


“쑥쑥이!”

“오빠 나 회사 들어가는 중”

“응? 무슨 일이지?”

“나 오빠한테 무슨 일 난 줄 알고 회사 뛰쳐 나왔어”

“엑? 스윙이라 늦잠 좀 자겠다는데!!”

“오빠가 아침에 운동 간다고 해서 당연히 9시 출근인 줄 알았지ㅠ_ㅠ”

“11시에 운동 가려고 했는데! 11시 아침이잖아!”

“난 바보야. 시간표 확인할 생각을 왜 못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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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문은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웃었다.


“하 나 이제 회사가서 뭐라고 하냐?”


그러자 문은 한번 더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웃으며 물었다.


“뭐라고 하고 나왔어?”

“사유 설명하기도 전에 어서 가보라고 하시던데? 엄청 심각해 보였나봐.”


역시나 너털웃음이 대답을 대신했고, 가방을 들쳐 업고 역까지 전력질주했다는 말에 그는 허허허허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쑥이 아침에 런닝 못 해서 그냥 뛰고 싶었던 거 아니야?”


긴장 가득했던 마음이 그와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자 스르르 사라지며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아무튼 별 일 없어서 다행이야! 나 회사 다 와 간다”

“나중에 쑥쑥이 애기랑 연락 잠깐이라도 안 되면 경찰 부르는 거 아니야?”


차마 아니라는 대답을 할 수 없었지만… 나중은 나중 일이다. 오늘 문이 무사한 걸로 족하다. 게다가 나의 호들갑을 유난스러움으로 비난하지 않고 허허 너털 웃음으로 받아준 문이 더 고맙고 좋아졌다. 이만하면 오늘 아침의 해프닝, 충분한 가치가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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