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스티커 두 개짜리다!
5살 아들은 어린이집에 다닌다. 작년에 어린이집에서 특별활동으로 ABC 알파벳을 가르치길래 '요즘에는 한글보다 영어가 먼저인가?''한글은 집에서 가르치라는 뜻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며칠 전 하원길,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린 아들이 "오늘은 으, 이 배웠어요"라고 한다. 자음을 떼고 모음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ㅏ,ㅑ,ㅓ,ㅕ,ㅡ,ㅣ 중 오늘은 ㅡ, ㅣ를 배웠다는 말이다.
집에 와서는 공책을 가져오더니 "엄마 숙제 하면 칭찬스티커 붙여주세요"한다. 아들은 요즘 '시쿠 자동차정비소'를 사기 위해서 칭찬스티커 모으기를 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시쿠 주차장'을 본 아들이 사달라고 하여 당근마켓에서 저렴하게 구해줬는데 아들은 그 '시쿠 주차장' 옆에 세트로 있던 '시쿠 자동차정비소'를 놓치지 않고 자꾸 사달라고 보챘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했다. 칭찬 스티커 31개를 모으면 시쿠 자동차 정비소를 사주마! 아들은 의외로 순순히 떼부리는 것을 멈추고 칭찬 스티커 모으기에 열중하고 있는 중이다.
"숙제? 숙제가 뭔데?"
"기역, 니은, 디귿 부터 쓰는 거예요"
그러더니 색연필로 공책에 기역, 니은, 디귿을 쓰기 시작했다.
ㄱ부터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들의 ㄱ은 반대로 입을 벌리고 있다.
연이어 ㄴ도 반대다
ㄹ은 ... ㄹ은 그래... 그건 엄마도 어려웠어. 인정ㅎㅎ
"ㅂ읍은 이렇게 위로 올라와있어요"
아마 ㅁ 뒤에 오는 ㅂ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겠지.
"ㅇ은 이렇게 쓰는 거예요"
"ㅈ은 모자가 없는데 ㅊ은 모자가 있어요"
아들은 엄청 집중해서 정성들여 글자쓰기를 마쳤다.
ISTJ인 엄마로써 반대로 입을 벌리고 있는 ㄱ,ㄴ,ㄹ,ㅋ이 무척 거슬리나 칭찬을 아니해줄 수 없다.
오늘 배운 것을 엄마한테 뽐내면서 칭찬 스티커도 덤으로 얻는 꾀를 낸 아들이다.
"기분좋다! 이건 칭찬스티커 두 개짜리다!"
원래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만 보면 너무너무 귀여워서 죽겠다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이해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결혼 후에도 아이를 갖지 않았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전. 남편과 나 모두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편이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후, 우리의 관계 개선을 위해 아이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가 있다고 해서 변할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때 나는 그 사람의 진심과 변화에 대한 약속을 너무 믿고 싶었나보다. 정말 놀랍게도 빠르게 아기가 생겼다.
출산 후, 나는 아들이 너무 버거웠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생명체는 더 이상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먹이는 것도 재우는 것도 씻기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아이는 우유나 모유나 뭘 줘도 충분히 먹지 않았고 자기 전에는 1시간이 넘게 울어댔고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깼다. 3개월의 출산휴가와 1년의 육아휴직은 너무 힘들었다. 육아를 위해 휴직했다는 것은 온전히 독박육아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날도 추억이 된다고 했던가.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다. 능히 고3 시절은 저리가라였다. 고3은 그저 나 스스로와의 싸움이었고 내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문제였는데 이건 상대가 있는 싸움이다. 심지어 대화도 안된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직장으로 돌아간 날, 너무 좋았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끔찍히 예쁘다거나 아이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감정이 들지 않았다. 물론 행복한 감정이 전혀 없지 않았겠지만 크지 않았다. (잠잘 때가 제일 예쁘고 행복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무감으로 일을 하듯이 아이를 키웠다.
오늘 퇴근 후 하원하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 저녁 준비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어머, 이제 놀아달라고 안하네' 그렇다. 얼마 전까지 하원 후 밖에서 충분히 놀다와도 집에 들어오면 저녁 준비도 못하게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놀자 놀자'를 연발하던 아이가 이제는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하도록 시간을 배려해주고 있다. 자기 방에 가서 혼자 놀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컸구나!' 생각이 든다.
'엄마! 똥쌌어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아들이 화장실에서 부른다. 아들은 소변은 스스로 가서 해결하는데 꼭 대변은 엄마를 찾았고 내가 같이 가서 자리를 봐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나를 찾지 않고 화장실에 혼자 가서 볼일을 본 것이다. 화장실에 갔더니 '엄마 스스로 쌌어요. 엄마한테 말 안하고 쌌어요!'라고 자랑하는데 '컸구나!' 생각이 든다.
"엄마! 이거 엄마에요!" 아들이 공책을 들어보인다. 공책에는 왠 호빵맨이 ㅋㅋㅋ "우와 엄마 그런 거야?" 아들은 자동차마니아라서 그림그릴 때도 자동차만 그린다. 포크레인, 크레인, 불도저, 덤프트럭, 레미콘을 주야장천 그려댄다. "엄마가 엄마 얼굴 그려달라고 했잖아요!" "어머 기억하고 있었어?" 얼마 전 공책에 자동차를 그리고 있는 아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엄마 얼굴도 좀 그려줘'라고 했는데 아들이 '싫어요'라고 답했었다. 그런데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는지 오늘은 엄마 얼굴을 그렸다며 보여준다. '컸구나!'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늘어나면서 내 시간과 체력에 여유가 생겼다. 아이의 어휘력과 이해력이 커가면서 내가 아이와 소통하는 것이 더 원할해졌다. 아이의 사회성과 인내심이 발달하면서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미덕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나 스스로 아이를 대하는 게 편해졌고 소통하는 게 즐거워졌다. 이제야 아이가 주는 행복이란 것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이제야 그런 마음을 느껴 아들에게 미안하지만 이제라도 느껴서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