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겠어요 딸이 하겠다는데"
결혼 전 이야기다. 벌써 10년 전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친정엄마가 시내에 볼일이 있으니 따라가자며 내 손을 끌었다. 지방 소도시 구도심 2층짜리 상가들이 즐비한 곳을 이리저리 헤치고 가더니 골목길로 꺾어 2층으로 올라갔다. 철학관이었다. "아 뭐야~" 내 주어진 삶에 자신만만했던 나는 운명론자들이나 다닐법한 곳으로 나를 이끄는 엄마에게 반감이 들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 결혼식장도 다 잡아놓고 이제 와 이런 데를 뭐 하러 데려오는 거야'
아마도 엄마는 내 결혼이 불안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가난한 집안에 홀어머니, 제대로 된 직장도 없던 남편과 결혼까지 하겠다는 딸을 한 번은 주저앉혔지만 두 번은 어쩔 수 없어 결국 결혼을 승낙했다. 상견례하고 결혼식 날짜까지 잡았지만 마음속 불안은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너른 거실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가니 50대 중년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엄마는 공손히 내 사주와 남편 사주를 아저씨에게 올렸다. 나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여기까지 들어온 마당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호기심이 샘솟듯 차올라 내심 우리 결혼에 대해 철학관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아저씨의 말은 낮고 평온했으며 친절했고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결혼에 대해 좋은 말은 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쁜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럴 수 있으니 주의해라 라는 정도였다. 가끔 드라마에서 무당이 눈을 부라리며 "이 결혼 절대 안 돼! 서로 갉아먹을 팔자야!"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했던 나는 아저씨가 당부의 말 정도로 그치자 '뭐 사주도 나쁘진 않나 보네'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혹시나 내가 밀어붙여 애써 잡은 결혼이 사주팔자로 파투가 날까 봐 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저씨는 서로 사주가 안 좋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안 했을 뿐 간접적으로 결국 그런 말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사주에 둘이 결혼할 것으로 나와있다면 결국 본인이 반대해도 둘은 결혼을 할 테니 사주가 안 좋다는 말은 하나마나 한 소리 아니겠는가.
아저씨는 '남편이 하는 말 중에 90%는 거짓이니 감안해서 들으라 했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돼.' 내가 남편을 결혼 상대로 선택한 이유는 내 주변 남자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 말의 90%가 거짓이라니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사람은 정해진 운명대로 사는 게 아니고 자신의 의지대로 주변환경을 바꾸기도 하고 주변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할 수 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아저씨의 조언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아저씨는 나와 남편의 사주, 부모님의 사주까지 다 봐주셨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그 이야기들이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사주 안에 그렇게 많은 정보가 담겨있나 싶을 정도로 아저씨는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아저씨는 적어도 같은 이야기를 세 번은 들어야 자기 사주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벌써 2시간이 흘러있었다.
엄마는 마지막에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 결혼 괜찮을까요?" 아저씨는 나를 슬쩍 쳐다보고 다시 엄마를 바라봤다. "딸이 그런데 어쩔 수 없지요." 정확한 워딩이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 선택에 자신이 있었던 나는 명백한 반대가 아니니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돌아서 나오는데 철학관 아저씨가 나에게 무심히 말했다. "잘 살아라" 나는 그 말이 준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저씨의 말에는 기쁨과 희망, 축복과 활기가 없었고 대신 걱정과 애잔함, 체념이 섞여있었다. 워낙 아저씨의 말투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하지만 "잘 살아라"는 말에는 건조하게 사주를 보던 말투에는 없던 감정이 섞여 있었다. 아저씨는 내가 남편과 이혼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