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화]ㅡ 장맛비가 멈춘 뒤, 그가 앉아 있던 자리

말보다 조용한 기억이 먼저 도착하는 밤,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았다.

by 쉼표


《모래 위에 피어난 물결의 입맞춤》

환상과 기억,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인어와 해적의 로맨스. 쉼표가 전하는 이야기, 입맞춤이 남긴 물결을 따라갑니다.


5화. 장맛비가 멈춘 뒤, 그가 앉아 있던 자리

말보다 조용한 기억이 먼저 도착하는 밤,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았다.


장맛비가 그쳤다.


굵고 무거운 물방울들이 그치고 나자, 세상은 갑자기 너무 조용해졌다.


대나무 처마 끝에서 마지막 빗방울이 뚝, 떨어졌을 때 나는 천천히 그 자리에 앉았다.


조용한 바닷가 찻집에서, 나는 말보다 긴 침묵을 마주했다.


늘 그가 머물던 자리. 바다와 마주한, 그 소박한 카페의 바깥 테이블.


KakaoTalk_20250731_184108823.jpg

젖은 나무의 결이 손바닥에 그대로 느껴졌다.


아직은 축축한 공기 속에 짠 바다 냄새와 풀잎 냄새가 섞여 들이마셔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모든 향 사이에서 나는 그의 체온을 떠올렸다.


문득 문이 열렸다.


나비가 그려진 벽을 스치듯, 그가 들어섰다.


아주 조용히, 마치 매일 이곳에 들르던 사람처럼.


"기억나? 우리가 처음 이 자리에서 나눈 말."


그는 내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목소리는 그날과 다를 게 없었지만, 말의 온도는 조금 더 낮아져 있었다.


마치 오래된 차가 식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입술을 대는 사람처럼.


"사실…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그가 말했다.


"그게 나였는지도 몰라. 너무 바다 같아서."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그는 여전히 바다였다. 흐르면서도, 한 자리에 남는… 그런 바다.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오래 앉아 있었다.


대화를 나눈 건지, 침묵을 함께 한 건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순간을 함께 마셨다는 사실 하나였다.


가로등 불빛 아래 테이블 위엔 물자국이 반짝였고, 카페 벽에 그려진 나비는 오늘따라 한결 가볍게 보였다.


그와 나는, 비가 멈춘 뒤 처음 마주한 사람처럼—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조금 웃었다.


침묵 속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말하고 있었다.

다음 화 예고


5년의 시간을 건넌 그, 그리고 내가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땐… 정말 돌아올 수 없는 줄 알았어."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모래 위에 피어난 물결의 입맞춤》 전편


→ 1화. 프롤로그 – 파도 너머의 속삭임

→ 2화. 다시 부르는 노래 – 기억의 파편

→ 3화. 파도는 늘 제자리로 들어오니까

→ 4화. 그 바다 끝에서 마주한 빛


같은 작품을 다른 플랫폼에서도 만나보세요!

◆ 티스토리 블로그: https://2abaekwebsite.tistory.com

◆ 네이버: https://blog.naver.com/js358253

◆ 워드프레스: https://star5435.com


작가의 노트

장맛비가 그친 밤, 우리는 다시 만났다.

말없이도 흐르는 시간, 침묵 속에서 전해지는 감정.

그 카페의 테이블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였다.


쉼표의 브런치스토리

《쉼표》 구독하기
https://brunch.co.kr/@39d166365bd047c


#단편소설 #브런치글 #감성소설 #바다이야기 #장맛비가 갠 날 #해변카페 #재회 #침묵의 시간 #그와 나 #별의 눈 #감성글귀 #여름소설 #조용한 대화 #기억의 조각 #브런치작가신청준비 중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