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은 누가 만들었을까"
프롤로그
길은 원래 있었을까, 누군가 만들었을까. 우리는 걷는다. 길이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길이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알고 있었다면? 만약, 이 길이 우연이 아니라면?
무대
빛은 낮과 밤 사이 어딘가에 멈춰 있다. 그림자는 방향을 잃은 듯 길었다가 짧아졌다가를 반복한다. 바람은 없다. 소리도 없다. 그러나 무언가가 깨어 있는 느낌이 든다.
둘은 걷고 있다. Simp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깊이 생각에 잠겨 있다. Road는 Simp를 한 걸음 앞에서 이끈다.
Scene 1 — 낯선 흔적과의 첫 조우
Simp: Road.
Road: 응.
Simp: 잠깐만… 이거 봐.
길바닥에 흙이 움푹 파여 있다. 발자국이 아니다. 사람 발 모양도, 동물 발 모양도 아니다.
더 깊고— 더 길고— 더 부자연스럽다.
Road가 다가오자 그 움푹 팬 곳이 미세하게 떨린다.
Road: 건드리지 마.
Simp: 왜?
Road: 그냥… 하지 마.
Simp는 그 미세한 떨림을 본다.
Simp: Road, 이건 우리가 만든 흔적이 아니야.
Road는 아무 말도 못 한다. 대신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Scene 2 — 길이 처음으로 '숨을 쉬는' 순간
흙이 느리게, 깊게, 숨을 들이쉰다.
들킬까 봐 숨을 죽였다가— Simp가 다가오자 다시 움직인다.
Simp는 숨을 삼킨다.
Simp: … 움직였어.
Road: (작게) 아니야.
Simp: 분명히 움직였어.
Road: 네가… 그렇게 본 거야.
Simp: 아니. 이건 누군가가 만들었어.
Road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EP.5에서 보였던 두려움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스친다.
Scene 3 — 길의 흔적이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
Simp는 그 움푹한 흔적을 천천히 둘러본다. 그러다 작은 패턴을 발견한다.
흙의 깨어진 결이 이정표의 방향과 같은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Simp: Road. 이 흔적… 방향이 있어.
Road: Simp—
Simp: 이정표랑, 똑같아.
Road는 Simp의 손목을 잡는다.
Road: 그거… 보려고 하지 마.
Simp: 왜?
Road: 이 길은… 우연이 없어.
Simp는 Road의 말에 멈칫한다.
Simp: 그 말, 지금 무슨 뜻이야?
Road: …
Road의 목소리가 흔들린다.
Road: 아무것도 우연히 생긴 게 없어. 흔적도… 이정표도… 반복되는 길도… 전부…
Simp: 전부… 뭐?
Road는 눈을 감는다.
Road: … 누가 만들었어.
Simp는 몸이 굳는다.
Scene 4 — EP.7 'Road의 균열'로 이어지는 심장부
길의 움푹 팬 흔적이 천천히 다시 모습을 바꾼다.
흙이 스스로 부드럽게 돌아간다. 마치 자신의 흔적을 감추려는 것처럼.
Simp는 숨조차 쉬지 못한다.
Simp: … 지금, 봤지? 흙이… 다시 원래대로—
Road: (작게) 봤어.
Simp는 Road의 얼굴을 바라본다. Road의 표정은 처음으로 명확히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Simp: Road. 너… 이 길이 '누가 만든 길'이라는 거… 알고 있었지?
Road의 입술이 떨린다. 그러다 작게,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말한다.
Road: …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어쩌면… 나도 이 길 일부인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 있어.
Simp의 눈이 흔들린다.
공기가 무거워진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다. 세계가 둘의 대화를 듣고 있는 듯한 정적.
Road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Road: …이 길엔 우리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어.
그 말이 길 위에 내려앉는 순간— 길이 깊게, 조용히, 숨을 들이쉰다.
Simp는 발밑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아주 낮게, 자신에게 묻듯 중얼거린다.
Simp: … 그럼, 우리는 왜 여기 있는 거지?
Road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수 없는 것처럼.
[EP.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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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출발: "왜 걷기 시작했는가"
EP.2 반복: "같은 길을 걷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EP.3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가"
EP.4 시간: "이 세계의 시간은 왜 멈춘 것처럼 흐르는가"
EP.5 멈춤: "멈추면 왜 안 되는가"
→ 다음 에피소드 EP.7 균열: "Road는 누구인가" (coming soon)
작가의 말
우리는 길을 걷습니다. 길이 있으니까.
그런데 길은 어디서 왔을까요. 누가 만들었을까요. 우연히 생긴 걸까요, 아니면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설계한 걸까요.
Road가 오늘 고백했습니다.
"나도 이 길 일부인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 있어."
그 말은 무슨 뜻일까요. Road는 동행자일까요, 아니면 이 길이 만들어낸 존재일까요.
EP.7에서는 'Road의 균열'을 이야기합니다. Road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Road는 처음부터 Simp와 함께였을까요.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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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7 '균열'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