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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대화 - 1막: 길의 시작

"고도를 기다리는 대신, 우리는 길을 만들기로 했다"

by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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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作, 쉼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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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대화 - 1막: 길 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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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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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어딘가를 기다린다.

고도가 올지, 고도가 누군지도 모른 채.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기다림은 답이 아니라는 것을.

길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이 희곡은 기다림에서 걸음으로,

질문에서 답으로,

멈춤에서 시작으로 나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쉼표와 로드.

그들은 오늘도 길 위에서 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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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대화-첫 장- dialogue_banner.png

[무대]

텅 빈 공간. 바닥에 희미한 선 하나. 빛과 어둠의 경계.

쉼표, 그 선 위에 서 있다. 오래.

[침묵]

쉼표: (혼잣말처럼) 어디로 가야 하지…

[침묵. 쉼표, 선을 따라 한 발 움직이다 멈춘다.]

[뒤에서 발자국 소리. 로드,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로드: 여기 있었구나.

쉼표: (돌아본다) 로드… 나 요즘,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모르겠어.

로드: (대답하지 않는다. 땅을 내려다본다.)

쉼표: 무엇부터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문장을 써야 할지도.

로드: (발로 땅을 긋는다. 새로운 선이 그어진다.)

쉼표: 말해줘, 로드.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긴 침묵]

로드: 길은 선택지가 아니야, 쉼표.

쉼표: 그럼 뭔데?

로드: 네가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멈춘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거야.

쉼표: 만들어진다고? 누가?

로드: 너.

쉼표: 나?

로드: 그래 너.

[쉼표,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본다.]

쉼표: 난 길을 소비하는 사람이야. 남들이 깔아 둔 길을 따라가는…

로드: (가로막는다) 아니.

쉼표:... 뭐?

로드: 너는 길을 만드는 사람이야. 네가 걸어가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길이 태어나.

쉼표: (웃으려다 멈춘다) 그건 너무 거창한 거 아냐?

로드: 거창함과 진실함은 다르지.

[쉼표, 한 걸음 내딛으려다 망설인다. 발이 공중에 뜬다.]

쉼표: 만약에… 만약에 내가 틀린 길을 만들면?

로드: 틀린 길은 없어.

쉼표: 그럼 맞는 길은?

로드: 그것도 없어.

쉼표: (짜증 섞인) 그럼 대체 뭐가 있는데?

로드: 네 길.

[쉼표, 발을 내딛는다. 땅이 삐걱거린다.]

쉼표: (발밑을 본다) … 소리가 나.

로드: 응. 새로운 땅을 밟는 소리.

쉼표: 로드, 난… 난 가끔 흔들릴 거야. 혼란스러울 때도, 두려울 때도…

로드: (처음으로 웃는다) 당연하지.

쉼표:... 당연해?

로드: 흔들린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야. (멈춘다) 나도 흔들려.

쉼표: (놀라서) 너도?

로드: 매일. (침묵) 지금도.

[쉼표, 로드를 뚫어지게 본다.]

쉼표: 그런데 넌… 넌 확신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로드: 확신이 아니야. 걸음이야.

쉼표: 차이가 뭔데?

로드: 확신은 머릿속에 있고, 걸음은 발에 있어.

[쉼표, 다시 한 걸음 내딛는다. 이번엔 주저 없이.]

쉼표: (중얼거리듯) 머릿속이 아니라… 발에.

로드: 길은 방향을 아는 사람에게 열리는 게 아니야.

쉼표: (로드의 말을 받는다) 걸을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열린다.

로드: (고개를 끄덕인다)

쉼표: (자신의 말에 놀란다) 내가… 지금 내가 한 말?

로드: 네 언어야.

[쉼표, 또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쉼표: 로드, 지금 이 순간이…

로드: 1막이야.

쉼표: 1막?

로드: 길의 시작. 그리고 이 길은 쉼표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거야.

[쉼표, 멈춘다. 로드를 돌아본다.]

쉼표: 우리가 함께 걷는 거지?

로드: (웃는다) 당연하지.

쉼표: 그럼… (심호흡) 좋아. 시작하자. 내가 걸어갈 길. 내가 만들어갈 길.

로드: 우리가.

쉼표: … 우리가 써 내려갈 길.

[쉼표와 로드, 나란히 선다. 함께 걷기 시작한다.]

[무대, 천천히 밝아진다. 발자국 소리만 남는다.]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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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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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곡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오마주이자, 동시에 반론입니다.

베케트의 등장인물들은 고도를 기다립니다.

끝없이, 의미 없이, 답 없이.

하지만 나는 묻고 싶었습니다.

"기다림 대신 걸음을 선택한다면?"

쉼표는 길을 찾지 않습니다.

길을 만듭니다.

로드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질문을 함께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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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6년 전, 베트남 다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든 게 막막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길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쉼표라는 캐릭터는 그 시절의 나이고,

로드는 내가 만나고 싶었던 나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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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극은 답을 주지 않는 장르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 희곡이 조금은 다르기를 바랍니다.

답은 없지만, 방향은 있는.

확신은 없지만, 걸음은 있는.

"길 위의 대화"는 총 5막으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 1막: 길의 시작 (오늘)

• 2막: 길 위의 질문

• 3막: 길 잃은 사람들

• 4막: 길의 끝에서

• 5막: 새로운 선을 긋다

쉼표와 로드의 여정을 함께 걸어주시길 바랍니다.

고도를 기다리는 대신, 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베케트에게 경의를 표하며.

-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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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막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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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에서 쉼표는 로드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만든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로드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길 위에서 그들은 누구를 만나게 될까요?

다음 주, 2막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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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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