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으면 흐려지고, 꾸준히 들이켜면 맑아진다
겨울 창가에 앉아 있었다.
차갑게 식은 창문 너머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책상 위에 놓인 촛불만이 작은 숨처럼 흔들렸다.
━━━━━━━━━━━━━━━━━━
나는 오랜 시간 이런 순간을 잊고 살았다.
빠르게 해야 할 일들,
누구에게든 뒤지지 않으려고 애쓰던 마음,
하루를 정리하기도 전에 다음 날의 걱정이 밀려오던 밤들.
━━━━━━━━━━━━━━━━━━
그러다 문득,
깃펜을 잉크에 살짝 적시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무언가가 내 안에서 생겨나는 느낌이었다.
숨을 들이쉬듯,
단어가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
━━━━━━━━━━━━━━━━━━
언어는 숨이라는 말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이해했다.
쓰지 않으면 흐려지고,
쓰지 않으면 탁해지고,
쓰지 않으면 나조차 나를 놓쳐버린다.
하지만 꾸준히 들여다보면,
아주 조용하게라도 적어 내려가면,
단어는 다시 투명해지고
생각은 맑은 강물처럼 흐른다.
━━━━━━━━━━━━━━━━━━
겨울의 책상은 그런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준다.
온도를 가진 사물들,
낡은 노트의 촉감,
손가락 끝에 스며드는 잉크의 냄새.
나는 이 작은 책상 위에서
내 마음의 온도를 다시 확인한다.
━━━━━━━━━━━━━━━━━━
오늘 나는
아주 짧은 문장 하나를 적었을 뿐인데,
이미 숨 한 번 깊게 들이쉰 것처럼
가슴이 가벼워졌다.
글을 쓴다는 건
숨을 돌리는 일.
언어의 맑음을 회복하는 일.
그리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해온
가장 따뜻한 행위다.
━━━━━━━━━━━━━━━━━━
겨울이 깊어질수록
나는 노트 한 장의 온기를 더 사랑하게 된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겨울에만 제대로 피어나는
나만의 작은 불빛인지도 모른다.
━━━━━━━━━━━━━━━━━━
오늘의 나는
한 장의 종이 위에서
다시 겨울을 견딜 힘을 얻는다.
언어는 숨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숨을 천천히 들이킨다.
━━━━━━━━━━━━━━━━━━
✍️ 쉼표
"언어는 숨이다. 쓰지 않으면 흐려지고, 꾸준히 들이켜면 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