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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삼겹줄 (333)』

"세 가닥의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by 쉼표


[가을의 끝, 인천공항]


다영은 배낭을 메고 출국장으로 걸어갔다.

윤서가 휠체어에 앉아 손을 흔들었다.

"다영, 잘 다녀와!"

"응. 6개월 금방이야."

"전화 자주 해."

"매일 할게."

다영은 윤서를 안았다. 30년을 함께 산 사람. 6개월 떨어지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윤서, 사랑해."

"나도 사랑해."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다영은 뒤돌아봤다.

윤서가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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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는 순간,

다영은 눈을 감았다.

기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한국어, 영어, 베트남어.

창밖으로 서울의 불빛이 천천히 멀어졌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도시.

은서를 키웠던 도시.

윤서와 함께 웃고 울던 도시.

이제 6개월 동안 떠난다.

다영은 생각했다.

은서.

멀리 떨어져 사는 딸. 스물아홉 살.

독립한 지 여러 해, 이제는 혼자서도 잘 살아간다.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를 이겨낸 딸.

[→ 7장 "시선의 폭력"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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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서가 초등학교 때였다.

"너희 엄마 왜 두 명이야?"

"한 사람은 아빠 아니야?"

"근데 왜 둘 다 치마 입어?"

아이들의 질문.

선생님의 난처한 표정.

학부모들의 수군거림.

은서는 대답하지 못했다. 집에 와서 울었다.

"엄마, 왜 우리 집은 다른 집이랑 달라?"

그때 다영이 말했다.

"은서야, 다른 게 틀린 게 아니야. 우리는 그냥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거야."

"... 엄마."

"은서야, 세상이 뭐라고 해도, 우리는 가족이야. 그걸 잊지 마."

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은서는 강해졌다.

세상의 시선을 견뎌냈다.

그렇게 수십 년.

그리고 지금, 은서는 맑고 밝은 삶을 살고 있다.

다영은 눈물을 닦았다.

은서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은서야… 고마워. 네가 있어서, 엄마 여기까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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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 공항]

비행기가 착륙했다.

10장 삼겹줄333-다낭국제공항 쉼표 Image 2025년 11월 12일 오전 12_34_05.png

다낭 공항에 내리다 — 30년 동안 참았던 숨을 다영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숨을 내쉰다.

도착은 출발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여행이 아니라, 다시 숨을 배우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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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영은 배낭을 메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공기. 야자수. 오토바이 소리.

"여기가 내가 6개월 동안 살 곳."

다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숨 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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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숙소]

다영은 윤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도착했어."

"다영! 괜찮아?"

"응. 여기 따뜻해. 그리고... 숨 쉴 수 있어."

"다행이다. 베트남어는 괜찮아?"

"응, 한국에서 미리 배워뒀잖아. 기본 회화는 할 수 있어."

"그래도 조심해."

"알았어. 윤서, 나 여기서 열심히 일하고, 글 쓸게."

"응. 브런치 계속 쓰고."

"당연하지. 나 쉼표잖아."

전화를 끊고, 다영은 노트를 펼쳤다.

앞으로의 계획:

1. 한글학교에서 열심히 일하기

2. 브런치 계속 연재하기

3. 베트남어 더 배우기

4. 새로운 친구 사귀기

5. 빚 갚기

6. 6개월 후, 한국 돌아가기

7. 은서와 윤서와 함께 행복하기

다영은 마지막 줄을 읽고 웃었다.

은서와 윤서와 함께 행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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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리의 카페]

10장-삼겹줄333-연소이 앤딩장면 Image 2025년 11월 12일 오전 01_58_04.png 삼겹줄 (333) — 세 가닥의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333 맥주. 세 개의 과일. 다영, 윤서, 은서. 멀리 떨어져도 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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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영은 학교 근처 카페에서 한 베트남 여성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저 리(Ly)예요. 한국어 배우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다영이에요."

리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여성이었다.

"다영, 커피 마셔요. 그리고 이것도."

리가 맥주 한 캔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333. 베트남 맥주예요."

다영은 캔을 들어 라벨을 봤다.

333

세 개의 3.

다영은 멈췄다.

"333..."

"왜요?"

"아니, 그냥... 우리 가족 같아서요."

"가족이요?"

"네. 저희 셋이에요. 저, 윤서, 은서. 세 사람."

다영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멈췄다.

목이 메었다.

그리고 천천히 노트를 펼쳐 적었다.

333 = 삼겹줄

다영 = 1

윤서 = 1

은서 = 1

세 가닥의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하나가 흔들려도, 나머지 둘이 잡아준다.

그게 가족이다.

리가 물었다.

"다영, 괜찮아요?"

다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 괜찮아요. 그럼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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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그해 겨울이 오기 전, 베트남]

다영은 매일 밤 윤서와 전화 통화를 한다.

"오늘 뭐 했어?"

"학생들 가르쳤어. 재밌어."

"다영, 보고 싶어."

"나도. 6개월 금방 지나갈 거야."

은서에게도 문자를 보낸다.

"은서야, 엄마 잘 지내고 있어. 너도 건강해."

"엄마, 나도 잘 지내. 브런치 읽었어. 재밌어."

그리고 다영은 계속 글을 쓴다.

브런치에. 티스토리에.

쉼표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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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영의 마지막 글]

나는 베트남에 왔다.

숨 쉬러 왔다.

30년 동안 숨을 참았던 사람이,

드디어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윤서가 있고, 은서가 있다.

우리는 삼겹줄이다. 333.

세 가닥의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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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우리를 이상하게 봤다.

[→ 7장 "시선의 폭력" 다시 읽기]

은서가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

학교에서, 동네에서, 사람들의 눈빛에서.

하지만 우리는 견뎌냈다.

사랑으로.

지금 은서는 스물아홉 살.

맑고 밝은 삶을 살고 있다.

윤서의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그건 그저 윤서의 일부일 뿐이다.

나는 이제 작가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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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6개월,

나는 여기서 일하고, 글 쓰고, 숨 쉴 것이다.

그리고 6개월 후,

한국에 돌아가서,

윤서와 은서를 안을 것이다.

우리는 삼겹줄이다.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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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그렇다.

당신이 지금 숨이 막힌다면,

잠깐 멈추세요.

쉼표를 찍으세요.

그리고 다시 숨 쉬세요.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됩니다.

베트남 가기: 9번 망설임. 10번째, 결심.

사랑 지키기: 수천 번 시선의 폭력. 수천 번째, 견뎌냄.

인생도 그런 거다.

아홉 번 넘어져도,

열 번째는 일어난다.

333.

당신의 삼겹줄은 무엇인가요?

당신을 지탱하는 세 가닥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붙잡으세요.

절대 놓지 마세요.

세 가닥의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 쉼표 드림


P.S.

어떤 이야기는 경험에서 시작해

상상으로 날개를 단다.

다영이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숨을 쉬며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렇습니다.


[10장, 완]

["쉼표 앞의 남자" 1부 끝]

[2부는... 언젠가, 또 다른 이야기로]


"쉼표 앞의 남자"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어제 올린 이 글도 함께 읽어주세요.

� 시간 이후의 우리

https://brunch.co.kr/@39d166365bd047c/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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