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은 없어. 하지만 질문과 함께 걸을 수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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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作, 쉼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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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대화 - 3막: 길 위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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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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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시작한 사람은 곧 깨닫는다.
걸음보다 더 어려운 것은 방향이라는 것을.
하지만 쉼표는 아직 모른다.
방향을 묻는 것 자체가 이미 길을 벗어나는 일임을.
로드는 알고 있다.
질문은 답을 찾기 위한 게 아니라, 질문과 함께 걷기 위한 것임을.
2막.
길 위에 선 두 사람의 가장 솔직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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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같은 공간. 하지만 선이 조금 더 길어져 있다.
쉼표와 로드, 나란히 걷고 있다.
발자국 소리. 규칙적이다가, 불규칙해진다.
[쉼표, 갑자기 멈춘다.]
쉼표: (발을 멈춘다) 로드.
로드: (계속 걷다가 멈춘다. 돌아본다)
쉼표:...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로드: (침묵)
쉼표: 우리가 만든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로드: 왜?
쉼표:... 왜? 당연하잖아. 목적지를 모르고 걷는 건…
로드: (말을 자른다) 목적지가 있으면?
쉼표: 그럼 안심하고 걸을 수 있지.
로드: 정말?
쉼표:... 뭐?
로드: 목적지를 알면, 정말 안심하고 걸을 수 있어?
[침묵. 쉼표, 대답하지 못한다.]
로드: 난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해.
쉼표: 무슨 말이야?
로드: 목적지를 아는 순간, 우리는 걸음을 잊어버려. 그냥… 도착만 생각하게 돼.
쉼표: (반박하려다 멈춘다)
로드: 넌 지금 걷고 싶은 거야, 아니면 도착하고 싶은 거야?
쉼표: 그건… (멈춘다) 둘 다 아닐까?
로드: 둘은 다른 거야.
[쉼표, 땅을 내려다본다. 자신이 만든 발자국들.]
쉼표: 로드, 난 솔직히… 두려워.
로드: 뭐가?
쉼표: 이 길이 잘못된 길이면 어떡해. 아무 데도 이어지지 않으면 어떡해.
로드: (작게 웃는다)
쉼표: 뭐가 웃겨?
로드: 너 저 번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
쉼표:... 뭐?
로드: "틀린 길은 없어. 네 길이 있을 뿐."
쉼표: (멈춘다) 그건… 네가 한 말이잖아.
로드: 아니. 넌 그 말을 받아들였어. 그리고 걷기 시작했어.
쉼표: 하지만 지금은 확신이 안 서.
로드: 당연하지.
쉼표:... 당연해?
로드: 확신은 걷기 전에 생기는 게 아니야. 걷는 중에도 아니고.
쉼표: 그럼 언제?
로드: 걷고 나서도 안 생겨.
쉼표: (짜증이 난다) 그럼 대체 언제 생기는데?
로드: 안 생겨.
[긴 침묵]
쉼표:... 뭐라고?
로드: 확신은 애초에 없는 거야. 우리한텐.
쉼표: 그럼 우린 뭘 가지고 걷는 건데?
로드: (간단하게) 걸음.
쉼표: 그게 답이야?
로드: 아니. 그게 방법이야.
[쉼표, 주저앉는다. 땅에.]
쉼표: (힘없이) 로드, 난… 난 너무 많이 물어. 너무 많이 생각해.
로드: (쉼표 옆에 앉는다)
쉼표: 그냥 걸으면 되는 건데, 자꾸 "왜?"를 물어.
로드: "왜?"는 나쁜 질문이 아니야.
쉼표: 하지만 답이 없잖아.
로드: 답이 없는 질문도 의미가 있어.
쉼표: 무슨 의미?
로드: 그 질문이 너를 멈추게 했잖아.
쉼표:... 그게 좋은 거야?
로드: (고개를 끄덕인다) 멈춤도 걸음의 일부야.
[쉼표, 로드를 본다.]
쉼표: 로드, 넌… 넌 질문 안 해?
로드: 매일 해.
쉼표: 어떤 질문?
로드: 너랑 똑같은 질문. "이 길이 맞나?" "어디로 가는 거지?" "왜 걷는 거지?"
쉼표: 그런데도 걸어?
로드: 응. 질문을 안고 걸어.
쉼표:... 어떻게?
로드: (잠시 생각한다) 질문에 답하려고 하지 않아. 질문을 친구 삼아.
쉼표: 친구?
로드: 응. 질문은 적이 아니야. 동행자야.
[쉼표, 천천히 일어선다. 로드도 일어선다.]
쉼표: 로드, 나… 오늘 하나 깨달았어.
로드: 뭔데?
쉼표: 난 답을 원하는 게 아니었어. 확신을 원했던 거야.
로드: (고개를 끄덕인다)
쉼표: 하지만 확신은 없어. 맞지?
로드: 맞아.
쉼표: 그럼 우린 뭘 가지고 가는 건데?
로드: (미소 짓는다) 서로.
[쉼표, 로드를 본다. 처음으로 웃는다.]
쉼표:... 서로.
로드: 그리고 질문. 그리고 걸음. 그리고 오늘.
쉼표: 내일은?
로드: 내일의 걸음은 내일 생각해.
쉼표: (웃는다) 그게 답이야?
로드: 아니. 그게 오늘이야.
[쉼표, 다시 걷기 시작한다. 로드, 따라 걷는다.]
쉼표: 로드.
로드: 응?
쉼표: 고마워. 질문을 들어줘서.
로드: 난 답은 안 줬는데.
쉼표: 그게 더 좋았어.
[두 사람, 나란히 걷는다. 발자국 소리가 다시 규칙적이 된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하지만 발자국 소리는 계속된다.]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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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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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주 멈춥니다.
"이 글이 맞나?" "어디로 가는 거지?" "왜 쓰는 거지?"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질문은 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질문을 적으로 만들지 말자고.
질문을 동행자로 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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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6년을 살면서 수없이 물었습니다.
"왜 여기 있는 거지?"
답은 아직도 모릅니다.
하지만 질문과 함께 걸으면서 알게 된 건,
질문이 있다는 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것.
쉼표는 오늘도 묻습니다.
로드는 오늘도 함께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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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에서 쉼표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2막에서 쉼표는 질문하며 걸었습니다.
3막에서는 누구를 만날까요?
길 위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다음 회차, 3막에서 계속됩니다.
-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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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막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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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길 잃은 사람들
쉼표와 로드는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납니다.
그는 길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어디로 가야 하죠?"
쉼표는 뭐라고 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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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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