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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 아버지의 기록』 시리즈 제2편 청운(靑雲)

나는 아버지의 언어에서 태어났다

by 쉼표

『청운, 아버지의 기록』 제2편

청운(靑雲) — 나는 아버지의 언어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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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버지의 호, 청운(靑雲).

나의 첫 닉네임, 푸름 구름.

그 둘이 같은 바람에서 왔다는 사실을,

나는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이름 속에 숨겨진 청춘의 결.

그것이 어떻게 내게로 흘러왔는지,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2편.청운-아버지의 이름 -푸름구름 Image 2025년 11월 20일 오후 12_33_00.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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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51세에 붓을 들고 '청운'이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그 이름이 무슨 뜻인지,

왜 하필 푸른 구름인지,

그땐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2년 뒤,

내가 스물넷이 되어 처음 블로그를 만들었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푸름 구름'이라는 이름을 골랐다.

2007년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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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호가 '청운(靑雲)'이라는 사실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이름이 내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는지,

그건 아주 최근에서야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나는 늘 '푸른 것들'을 사랑했다.

푸른 바람, 푸른 언덕, 푸른 노을, 푸른 구름.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그 색이 등장했고,

사진을 찍으면 하늘을 먼저 바라봤다.

청운(靑雲) ―

푸를 청, 구름 운.

아버지가 평생 품어둔 청춘의 이름.

푸름 구름 ―

아버지의 청운 아래에서 태어난

나의 작은 바람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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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단순한 닉네임이 아니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첫 번째 언어였고,

아버지가 남긴 청춘의 결을

무의식적으로 이어받은 흔적이었다.

나는 늘 아버지를 빼닮았다고 들었다.

글을 쓸 때의 손놀림.

사진을 찍을 때의 눈빛.

사물의 결을 느끼는 방식.

순간에 깃든 감정을 붙잡는 습관.

아버지는 예술을 향한 감각이 깊은 사람이었지만

예술가로서의 길을 온전히 허락받지 못하셨다.

그 대신 가족을 선택했고,

생계를 선택했고,

불러보지 못한 꿈을 마음속에만 남겨두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펼치지 못한 그 길을

알지 못한 채로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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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펼치지 못한 청춘을

두 글자에 담아 호로 남겼다.

청운 ―

자신의 젊음을 모아

하늘에 띄운 이름.

그리고 그 이름은

이름 이상의 것이 되어

나의 삶으로 조용히 흘러왔다.

나는 알지 못한 채로

그 바람을 이어받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버지가 쓰지 못한 이야기를

내 언어로 완성하려는 것처럼

늘 무언가를 쓰고, 그리며, 기록했다.

그때의 닉네임이 바로 '푸름 구름'이었다.

아버지의 청운 아래

푸른 바람으로 이어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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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이켜보면

그 이름을 고른 건 우연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남긴 바람의 결을

내 마음이 이미 알고 있었고

그 결을 따라가며

나는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갔다.

청운으로부터 푸름 구름으로,

그리고 지금의 쉼표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단순한 닉네임의 변화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언어의 계보였다.

아버지는

자신이 끝내 펼치지 못한 예술의 세계를

어쩌면 내가 이어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아니, 바람이라기보다

그저 닮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용히 기뻐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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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 속에 있는 바람, 구름, 노을, 언덕, 실바람…

그 모든 이미지가

아버지의 청운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의 언어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아버지의 청춘이 가리키던 하늘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아버지의 호를 떠올릴 때마다

어떤 아련함보다

어떤 슬픔보다

먼저 따뜻한 바람이 분다.

청운은 아버지의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청춘,

아버지의 숨결이었다.

그리고 푸름 구름은

그 마음을 이어받은 나만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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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그 바람결 따라 글을 쓰고,

청운이 머물렀던 하늘을 바라본다.

아버지의 청춘이 흘렀던 자리에서

내 언어가 다시 피어난다.

이렇게 세대는 이어지고,

바람은 전해지고,

이름은 다시 살아난다.

아버지의 청운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두 번째 장.

그런 의미에서 푸름 구름은

내가 선택한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가 남긴 바람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그 바람은

지금도 내 글 속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의 청운은 끝나지 않았다.

푸름 구름이 되어, 쉼표가 되어,

지금도 계속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이 바람은 언젠가

또 다른 이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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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제1편 다시 읽기

『청운, 아버지의 기록』 제1편

푸른 구름의 언덕

마음은 늘 그 곁에 머무릅니다

▶ 1편 바로가기: https://brunch.co.kr/@39d166365bd047c/258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5년의 기억,

그 언덕에서의 이야기로 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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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제 안에 흐르는 아버지의 언어를 발견했습니다.

청운이 푸름 구름이 되고, 쉼표가 되기까지.

그 무의식의 여정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1편에서 우리는 언덕을 걸었습니다.

2편에서는 이름 속에 담긴 청춘을 만났습니다.

3편에서는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그 바람,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청운의 이야기를 담으려 합니다.

아버지가 남긴 바람은

어떤 모습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청운, 아버지의 기록』 시리즈 제3편

바람결에 다시 만난 청운

오늘 저녁 8시, 청운 시리즈 완결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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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2편 끝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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