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의 새벽 공기와 끝없는 길 위에서 6년이 시작되었다
인천공항 밤 8시.
밝은 형광등 아래에서 나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몇 번이나 뒤집혀 있었다.
4시간 뒤면,
나는 완전히 모르는 나라의 새벽 한복판에 떨어질 예정이었다.
비행기는 조용히 어둠을 가르고 출발했다.
창밖은 텅 비어 있었고,
나는 속으로만 되뇌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밤 12시.
다낭 국제공항.
문이 열리자마자 얼굴을 덮친 건
한국의 밤과는 전혀 다른 무겁고 습한 공기였다.
낯선 냄새가 섞인 이곳의 새벽 공기가
내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더 빠르게 깨닫게 했다.
회사에서 보내준 전용 택시에 몸을 실은 순간,
그게 마지막 안심이었다는 걸
나는 곧 알게 되었다.
택시는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빛이 사라지고,
사람이 사라지고,
도로가 사라졌다.
정비되지 않은 도로는
시골 비포장길처럼 울퉁불퉁했고,
새벽 1시가 넘은 어둠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창밖을 보면
그저 까만색뿐이었고,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어디쯤 와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말 그대로
침묵 속에서 심장만 두들겼다.
‘나 지금… 어디로 끌려가는 거야?’
부끄럽지만, 진짜 그런 생각이 스쳤다.
혼자였고,
언어도 안 통하고,
길은 끝이 없고,
택시는 계속 어둠만 통과했다.
그 2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새벽이었다.
새벽 2시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절반쯤 녹아 있었다.
문을 닫는 것조차
구원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날 밤은 못 잤다.
눈을 감아도 낯설고,
눈을 떠도 낯설었다.
그리고 아침.
출근.
다낭의 첫 공기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찜질방에 서 있는 기분.”
평생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내가
출근길에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을 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첫날부터 정신없이 인수인계를 받고
직원들과 인사하고
업무 자료 정리하고
직원들 상태 파악하고
부서별 관리자 대응하고
시간은 쏟아지고
나는 그저 버티고 있었다.
퇴근길이 되었을 때
하루 처음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실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뒤로 4개월 동안
나는 여전히 이곳의 언어와 문화에 발붙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언어는 손에서 빠져나가고,
대화는 길게 돌아오고,
귀는 싸우는 소리처럼만 들리고,
표정은 읽히지 않고,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오해하고
혼자 상처받고
혼자 무너졌다.
‘나를 속이는 걸까?’
‘화난 걸까?’
‘왜 이렇게 길어?’
‘대체 뭐라는 거지…’
그 혼란과 오해의 숲을
나는 조용히, 혼자 견뎠다.
그렇게 7개월이 지난 어느 날,
정말 이유도 없이,
아주 갑자기,
사람들의 말투와 표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언어의 리듬,
습관의 결,
문화의 방식.
그제야 나는
이 땅이 나에게 먼저 다가오고 있었다는 걸
조금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 2년 반.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곳의 사람이 되어갔다.
동료들과 웃으며 농담도 하고,
시장 아주머니들과 인사도 하고.
그러다 들었던 말.
“이제 베트남 사람 다 된 것 같아요.”
그 말이 농담이었을까, 진담이었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말은
내가 버텼다는 증거였으니까.
하루하루가 후들후들했고,
넘어지고,
지치고,
울고,
또 울고,
그렇게 익숙해지는 시간을
나는 살아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도착한 사람’ 그 자체였다.
그 새벽의 공기,
끝이 보이지 않던 그 길,
심장 속에서 뛰던 그 공포.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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