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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나를 받아들이기까지

낯섦과 쌀국수의 위로가 나를 조금씩 이곳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by 쉼표



도시와 나 사이에 놓여 있던 첫 거리


도시는 처음에 나를 밀어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이 도시를 밀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어도 낯설고, 표정도 낯설고, 온도조차 낯선 곳.
심지어 시장 초입에서 스쳐온 생선의 비린 향기마저
내가 살아온 세계와는 너무 달랐다.


시장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의 손놀림은 번개처럼 빨랐고
나는 그 한가운데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조차 모르겠는 초보자가 되어 있었다.
웃고는 있었지만, 그건 어색함을 숨기려는 방패에 가까웠다.


첫 바가지, 그리고 ‘낯섦’이라는 언어


그 시절의 나는
베트남 돈의 감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2만 동이면 되는 사탕 봉지를
당당하게 20만, 아니 200만 동을 내고 사 오던 그날들.
집에 와서 계산서를 보며
“이게 맞아?” 하고 혼잣말을 반복하던 그 허탈함.


그 바가지가 억울했던 건
돈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나 자신 때문이었다.
그날의 나는
여기에서 살아가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그저 낯선 사람 한 명이었다.


뜻밖의 온기, 한 그릇의 쌀국수


하지만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도시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업무를 마친 오후,
회사 직원이 “덥죠?” 하며
따끈한 쌀국수 한 그릇을 내 앞에 밀어놓았다.
면이 붇기 전에 얼른 먹으라며 웃던 얼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그 그릇.


나는 그 한 숟가락에서
이 도시의 첫 번째 온기를 느꼈다.
낯섦으로만 이루어진 벽에
작은 균열이 생기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후식처럼 내민 두리안.
코끝을 찌르는 냄새에 움찔했지만
한 입 베어 물자

왜 사람들은 이 과일을 ‘왕’이라 부르는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처음엔 거부감이 들다가도
속살을 마주하면 뜻밖의 달콤함이 있다.


공포였던 오토바이 물결이 어느 순간 리듬이 되기까지

4차선 장악 퇴근시간 오토아비 행렬 Image 2025년 11월 22일 오후 03_38_36.png


퇴근길의 4차선 도로는
여전히 나를 압도했다.
가는 차는 없고
오는 방향 오토바이만
물결처럼 한꺼번에 밀려오던 그 풍경.


처음엔 그 소리가 무서웠다.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것만 같았고,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 소리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하루가
그 소리 위로 지나가고 있다는 걸
그제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느린 리듬을 가진 도시, 그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나


아침 카페 앞,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모습이
처음엔 낯설었다.


약속 시간은 늘 늦어지고,
“10분 뒤에 도착”은
기본적으로 한 시간 뒤였지만
그 누구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기다리면 되지’ 하고 넘기는 태도.


이 느긋함을 이해하는 데
나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어쩌면 그 시간을
도시가 나를 시험하듯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이 느린 리듬이
도시가 나를 품는 방식이라는 것을.


도시는 화려한 말로 환영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온기들을 곳곳에 숨겨두었고
나는 그 온기들 하나씩을 줍고 주우며
조금씩 이곳의 사람이 되어갔다.



결국엔, 도시와 나 사이에 놓였던 거리


낯섦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 속에 스며든 작은 위로들이
내 마음을 천천히 움직였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7개월.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시간.


하지만 분명한 건
그 7개월 동안
도시는 나를 어른처럼 대했고
나는 그 속에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 2막 작가의 말


도시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낯섦과 실수들, 그 속에 스며 있는 작은 온기들이
저를 이곳의 사람으로 조금씩 변화시키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글은 제가 다낭의 리듬에 적응해 가던
아주 초반의 기록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풍경,
또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세계일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받아들여진다’는 감각이 처음 찾아오던 순간들이었습니다.


다음 장에서 또 이야기 이어갈게요.
천천히 함께 걸어요.


—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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