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먼저 느끼던 것들에 대하여
언제부터였을까.
말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게.
예쁘다는 말 대신 “괜찮네”라고 했고,
설렌다는 말 대신 “일단 해보자”라고 말했다.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말은 점점 감정을 따라가지 못했다. 마음은 여전히 먼저 움직이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표현은 늘 한 박자 늦었고, 나는 언제부터인지 느낌보다 판단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구름 같다, 물비린내 난다, 서늘하다, 몽글몽글하다 같은 말들이 자연스러웠다.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던 언어들이었다. 그 말들은 사전적 의미보다 몸이 먼저 알아듣는 감각에 가까웠고, 왜 그런지 묻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전달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 말이 괜히 가벼워 보이진 않을까, 생각하다 보니"
안전한 표현들만 남았다. 무난하고 부드럽고,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는 말들. 그 사이에서 구름 같다는 말은 희미해졌고, 몽글몽글하다는 감각은 차마 꺼내지 못한 채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쌓여 갔다. 어디쯤 흘려보냈을까, 그 말들을.
비 오는 일요일 아침, 창밖을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이런 말을 좋아하던 사람이었지. 말을 통해 설명하려 하기보다 말 안에 머무르려 했고, 단어를 던진 뒤 그 울림을 가만히 듣는 쪽에 가까웠던 사람.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지만, 그만큼 무뎌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오늘은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기로 했다. 다만 잃어버린 단어들을 하나씩 주워보려 한다. 젖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말, 오래 써서 닳아버린 표현, 괜히 부끄러워서 애써 지나쳐 왔던 언어들. 다시 입 안에서 천천히 굴려보고, 마음에 올려두며 지금 이 말이 어디쯤에서 울리는지 가만히 들어보는 하루.
말을 다시 찾는다는 건 새로운 걸 배우는 일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감각을 다시 허락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잃어버린 언어들 속으로 천천히 돌아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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