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질서가 정리되는 순간
연휴가 끝나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관리자들과 저녁을 먹고, 늘 걷던 그 길을 걸었다.
이상했다.
매일 지나다니던 거리인데
오늘은 전혀 다른 풍경처럼 보였다.
예전엔 칙칙하고 어둡고,
어딘가 낡고 지친 느낌이었다.
그 길은 늘 무거웠다.
내 어깨 위에 얹혀 있던 책임처럼.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화려했지만 경망스럽지 않았고,
밝았지만 가볍지 않았다.
빛이 많았는데 요란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분주했지만 소란스럽지 않았다.
같은 길이 다르게 보였다.
처음엔 외부가 변한 줄 알았다.
도시가 바뀌었나, 조명이 바뀌었나,
사람들이 달라졌나.
하지만 아니다.
바뀐 건 나였다.
나는 이미 선을 그어두었다.
결정은 끝났고 실행만 남았다.
중간지대에서 맴돌던 마음이
오늘은 한쪽으로 정렬되어 있었다.
사람은 마음이 정리되면
풍경이 또렷해진다.
불안이 사라지면
빛이 더 많이 들어온다.
답답함이 걷히면
소음도 덜 시끄럽게 들린다.
오늘 현장 분위기도 그랬다.
같은 사람들, 같은 구조, 같은 문제들.
그런데 공기가 달랐다.
아니,
내가 달랐다.
나는 원래 예민한 사람이다.
분위기의 결을 읽고,
사람의 표정을 읽고,
공간의 온도를 감지한다.
그래서 오늘 느낀 이 감정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다.
이건 내부 질서가 정리되고 있다는 신호다.
운이 좋아졌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태도가 바뀌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건 믿는다.
같은 길이 다르게 보였다는 건
내가 다른 상태로 그 길을 걷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엔 버티는 사람이었다면
오늘은 정리하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버티는 걸음은 무겁고,
정리하는 걸음은 단단하다.
오늘은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긍정적인 에너지가
내 주변을 감싸고도는 느낌.
나는 들뜨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안다.
지금은
흐릿하지 않다.
같은 길이 다르게 보였다.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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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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