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은 빠를수록 좋다는 착각

불안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내린 선택들에 대하여

by 쉼표

우리는 늘 빠른 결정을 미덕처럼 배워왔다. 망설임은 미숙함으로, 신중함은 우유부단함으로 오해받는다.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묘한 압박이 숨어 있다. 빨리 선택해야 뒤처지지 않는다고, 머뭇거리면 기회를 놓친다고. 그 압박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우리를 서두르게 만든다.

나는 오랫동안 그 압박에 충실했다. 공항에서, 공장에서, 회의 테이블 앞에서 나는 늘 빠르게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항공편을 바꾸고, 일정을 조정하고, 누군가의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결론을 내렸다. 그 속도는 나를 능력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주변에서는 "결단력이 있다"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을 기꺼이 믿었다.

그러나 비행기 안,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 그 공간에서 나는 처음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내가 빠르게 선택한 많은 것들이 사실은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불안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애매한 상태를 견디기 싫어서, 결론이 없는 시간이 불편해서 내린 선택들이었다. 나는 결단력이 있었던 게 아니라, 불안을 빠르게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종종 확신이 있어서 결정하는 게 아니다. 애매함이 불편해서, 기다리는 것이 두려워서, 빨리 결론을 내리고 싶어서 선택한다. 빠른 결정은 그 순간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불확실한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행동감이 우리를 잠시 안심시킨다. 그러나 그 선택이 나와 맞는지, 내가 가려는 방향과 일치하는지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된다.

나는 공장에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그 사실을 몸으로 깨달은 적이 있다. 일정은 촉박했고, 모두가 빠른 결론을 원했다. 나 역시 그 흐름에 올라타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선택은 급한 불을 끄는 것인가, 아니면 진짜 방향으로 가는 것인가. 판단은 하루 미뤄졌고 몇 사람은 불안해했다. 그러나 그 하루가 결국 더 나은 방향을 보여주었다. 느린 결정이 더 단단한 결과를 만든 것이다.

결정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빠르게 달리는 사람보다, 정확히 가는 사람이 더 멀리 간다. 우리가 서두르는 이유는 대부분 두 가지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다는 두려움, 그리고 망설이면 능력이 없어 보일 것 같다는 불안. 그러나 인생은 회의 시간처럼 결론을 재촉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선택일수록 오히려 더 오래,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빠른 결정이 필요한 순간은 분명 있다. 위기 상황, 시간이 실제로 제한된 선택들. 그러나 우리가 서두르는 대부분의 결정은 사실 그렇게 급하지 않다. 우리 스스로가 급하다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불안이 시간을 압축시키고, 압축된 시간이 우리를 더 조급하게 만든다. 그 악순환 속에서 우리는 충분히 생각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나는 아직 결정 중이다. 이 문장은 미완성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가장 솔직한 상태다. 나는 지금 충분히 생각하고 있고, 나에게 맞는 방향을 찾는 중이다. 남들보다 조금 느릴 수 있다. 그러나 느린 대신 흔들림이 적고, 후회가 적으며, 내 선택이 어디서 왔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다.

어쩌면 진짜 용기는 빠른 선택이 아니라, 충분히 고민하는 시간을 견디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상태를 불안 없이 버티는 것, 결론이 없어도 무너지지 않는 것, 그리고 내 속도를 남의 기준으로 재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요즘 배우고 있는 결단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오늘도 아직 결정 중이다. 그리고 그 상태를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한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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