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새벽 4시, 베트남의 새벽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잠결에 들리는 빗소리는 조용히 내 방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뚜드득 뚜드득. 내 귓가에 속삭이듯, 말을 걸어오듯, 창밖의 소박한 그 소리에 눈을 떴다. 천장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을 탔다.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문득 생각해 보니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았다. 물건들. 기억들. 오래 쥐고 있었지만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것들. 무겁게 짓눌렀던 것들을 미련 없이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차근차근 마음이 바빠졌다.
비는 여전히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응원처럼. 괜찮다고. 이제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그래서 시작하려고 한다. 비우는 일을. 서랍 하나, 선반 하나, 기억 하나하나.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과 오래된 물건들을 구분해서 정리하면 된다. 좋은 기억들은 남겨두고, 그렇지 않고 의미 없이 습관처럼 베어있는 기억들을 가감 없이 버리기로 했다. 정리가 끝나면 새로운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창밖의 비가 조금 잦아들었다. 새벽마다 인사하는 짹짹이들의 아침 인사가 오늘따라 더 청량하게 들려온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머금었다. 뜨거운 커피가 뇌리를 스치며 가슴속 깊이 내려앉았다.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새벽 5시 30분.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뚜드득 뚜드득" 내렸던 비는 느긋하게 창문을 타고 흘러내렸다. 창문을 열었다. 베트남의 흙이 빗물을 머금으며 내뿜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열대의 땅만이 가진 냄새 — 짙고 깊고, 묵직하게 젖은 냄새. 페트리코르라고 부른다지만, 그 이름보다 훨씬 원초적인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오래된 땅의 기억 같기도 하고, 새벽이 새로 시작된다는 신호 같기도 했다. 그 냄새를 한 번 깊이 들이마셨다. 괜찮았다. 아니, 좋았다.
이 새벽이 내 삶의 시작을 위해 달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 베트남의 비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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