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신에게 가장 먼저 거짓말을 할까
돌이켜보면 그 말은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누군가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 말이 어찌나 자연스럽게 나왔던지, 나 스스로도 믿었다. 정말로 괜찮은 줄 알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도, 나는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새벽에 혼자 앉아 있을 때, 뭔가 묵직한 것이 가슴 어딘가에 얹혀 있는 느낌이 들어도 — 나는 그것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 "별거 아니야."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나보다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고, 혹은 스스로를 다그치고, 그 감각을 얼른 덮어버렸다.
그게 단단한 사람의 모습인 줄 알았다. 그게 성숙한 사람의 태도인 줄 알았다.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괜찮다'는 말이 언제부터 내 입에 붙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였을 것이다. 어른들은 우는 아이보다 참는 아이를 더 기특하게 봤다.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묵묵히 해내는 사람을 더 높이 쳤다. 우리는 그 시선 속에서 자랐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약함이고, 감정을 누르는 것이 강함이라는 공식을 —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그 공식은 더 단단하게 굳어졌다.
책임질 일이 생기면 감정보다 역할이 먼저였다. 누군가의 부모로, 누군가의 직원으로, 누군가의 동료로 살아가다 보면 내 감정을 꺼낼 자리가 점점 좁아졌다. 힘들다고 말하면 민폐가 되는 것 같았다. 흔들린다고 말하면 무능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괜찮아요." "별거 아니에요." "저는 다 됩니다."
그 말들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겉으로는.
문제는 마음이 말을 안 들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몸은 알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무거울 때, 이유 없이 짜증이 올라올 때, 누군가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예상보다 크게 상처를 받을 때 — 그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그건 오랫동안 쌓여온 것들이 더 이상 자리를 못 찾겠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말했다. "요즘 좀 피곤한가 봐." "잠을 못 자서 그래." "날씨 탓인가."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면 나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됐다.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들여다봤을 때 거기서 무언가가 나올까봐 겁났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괜찮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무언가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괜찮다고 했다. 그 말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벽이라고 믿으면서.
그런데 벽은 결국 안을 더 좁게 만든다.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 안의 공간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걸. 한때는 작은 기쁨에도 쉽게 환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감각이 무뎌졌다. 좋은 일이 생겨도 온전히 기뻐지지 않고, 즐거운 자리에 있어도 마음이 완전히 거기 있지 않았다.
감정을 억누르는 훈련을 너무 오래 했더니, 좋은 감정도 함께 억눌리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지 않다는 말을 막다 보면, 괜찮다는 말도 진짜가 아니게 된다. 감정은 원하는 것만 고를 수 없다. 슬픔의 문을 닫으면 기쁨의 문도 함께 좁아진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감각이 닳아가고 있었다.
그걸 오래 모르고 살았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그 말이 흔들렸다.
종이 앞에서는 이상하게 거짓말이 잘 안 됐다. 누군가에게 말할 때는 표정도 있고 분위기도 있고 상대방의 반응도 있어서 어떻게든 "괜찮아"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혼자 새벽에 앉아서 아무도 없는 화면을 바라보며 글을 쓸 때는 — 그게 잘 안 됐다.
처음에는 그날 있었던 일을 적었다. 그런데 쓰다 보면 그 일 뒤에 감춰진 마음이 슬며시 딸려 나왔다. 담담하게 쓰려 했는데, 문장 어딘가에서 감정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걸 지우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귀찮아서였는데, 나중에는 그게 더 진짜 같아서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인 글들을 어느 날 다시 읽었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나. 단단한 척했지만 사실은 많이 지쳐 있던 나. 무심한 것 같았지만 마음속에서 조용히 오래 아파하던 나.
한 번도 제대로 꺼낸 적 없는 말들이 문장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조금 울고 싶었다.
나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했을까.
한참 생각해봤다. 그리고 하나의 답에 다다랐다. 나는 나 자신을 가장 나중에 돌봐도 되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이 먼저, 일이 먼저, 관계가 먼저, 책임이 먼저 — 그 모든 것이 끝난 뒤에 남은 게 있으면 그때 나를 돌봐도 된다고. 그런데 끝이 없었다. 늘 무언가가 먼저였고, 나는 늘 맨 마지막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는 "괜찮아?"라고 물을 여유조차 없었다. 묻지 않는 게 편했다. 묻지 않으면 답을 몰라도 됐으니까. 답을 모르면 해결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무심한 사람이 되어갔다.
다른 사람에게는 "많이 힘들었겠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조금 쉬어도 된다"고 말하면서 — 정작 나 자신에게는 한 번도 그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는 아주 오래된 빚을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진 빚. 한 번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은 말들의 빚. 괜찮냐고 물어봐 주지 않은 시간들의 빚. 감정을 억누르라고만 했지,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한 번도 물어봐 주지 않은 것들의 빚.
그 빚을 한꺼번에 갚을 수는 없다. 오래 쌓인 것은 오래 걸려야 풀린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부터는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괜찮지 않을 때,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지금 나는 매일 새벽에 글을 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 공간에서, 나는 나를 향해 물어본다. "오늘 어땠어?" "뭐가 힘들었어?" "지금 뭐가 필요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글로 써 내려간다. 빠르지 않게,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어떤 날은 별것 아닌 말들이 나온다. 어떤 날은 쓰다 보면 뜻밖의 감정이 따라 나와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게 된다. 어떤 날은 써놓은 걸 읽다가 "아, 나 많이 지쳐 있었구나" 하는 걸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된다.
그게 글을 쓰는 이유가 됐다. 멋진 문장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괜찮아?"라고 물어주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오랫동안 괜찮다고 말해온 사람이라면 — 딱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진심으로 괜찮냐고 물어본 게 언제였나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면, 아마 꽤 오래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은 스스로에게 많이 미안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괜찮지 않아도 된다. 오늘 하루,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솔직하게 써보는 건 어떨까. "나 오늘 좀 힘들었다." "사실 별로 안 괜찮았다." 그 한 줄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나를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것이면, 충분하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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