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전작 사피엔스보다도 조-금 걱정이 많고, 마치 기자나 피디같은 저널리스트의 느낌도 받는,
많은 것이 한꺼번에 바뀌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해 약간은 다급하게 쓴 책입니다.
(이 분은 76년생입니다. 정말 똑똑한데 아직 젊네요. 다음 프로그램에는 꼭 초청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 책 역시 만만하게 읽을 책은 아니고 조금씩 길게 읽어야만 합니다. 2018년에 제시한 IRRELEVANCE 즉, '무의미함, 나와 상관없음' 의 개념이 2025년에 더 와닿습니다.
2025년, 이미 모든 정보가 너무 어려워지고 대중이 알아듣기 힘들어집니다.
과거에는 평범한 사람들도 거칠지만 의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옳든 그르든, 일본이나 청나라의 침략에 대해서 조선 사람들은 밤에 모여서 심각하게 이야기했겠죠. 1980년대의 어른들도 앞으로의 정치와 먹고사는 일에 대해서 그랬을 겁니다. 요즘 저는 그런 풍경들을, 특히 우리 아버지 세대가 거쳐온 시간들을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테크놀로지가 본격적으로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인지 파악하기조차 힘들어집니다.
우리는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소버린 AI 니 양자컴퓨팅이니 뭐니 설명할 수 있을까요? 테크놀로지가 점점 국가간의 대항전이 되고 다수의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따라서 국가정책을 좌지우지 할 수밖에 없게 되면 그건 모두가 참여하고 싶은 토론이 되죠. 그런데 만약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의견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무의미함과 싸우는 것은 착취에 맞서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 유발 하라리,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2018)
이 문장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정보를 쥐고 많은 결정들이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며, '네가 모르는 게 있어' 라는 식으로 부족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네트워크가 없는 가장 약한 사람들은 정보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의견이 부딪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예 의견이 없게 됩니다.
여기까지 오면 사회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의미를 잃어버리는 상태 즉
“내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나는 사회적·경제적 관계에서 배제되었다”
라는 소외감, 무가치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평범한 회사원과 자영업자들 모두 AI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너무 많은 정보를 따라가느라 지쳐가고 있습니다.
“20세기에는 노동자들이 엘리트에게 착취당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필수적인 존재였다.
21세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착취조차 되지 않는다.엘리트는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인터뷰, Hürriyet Daily News (2018)
하라리는 WIRED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0세기 노동자는 힘들었지만, 적어도 ‘중요한 존재’였다. 공장이 돌아가려면, 국가가 유지되려면, 그들의 노동이 필수였다. 그래서 그들은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하고, 정치적 힘을 쥐었다.
21세기에는 다르다. 자동화와 인공지능, 생명공학의 혁명은 소수의 엘리트와 기술 기업을 더 강력하게 만들고, 다수의 인간을 점점 더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든다.
그 결과, 억압과 착취 대신 찾아온 감각은 바로 “무의미함”이다.
“21세기의 주요 투쟁은 ‘무의미함’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착취는 저항을 낳지만, 무의미함은 절망을 낳는다.”
착취는 싸울 수 있다.
불평등은 통계로 보여주고, 차별은 거리에서 외칠 수 있다.
하지만 무의미함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인가?”라는 내면의 공포로 다가온다.
이 공포가 위험한 이유는, 저항 대신 무력감을 낳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강연에서 반복해서 경고합니다.
“기술 발전은 새로운 ‘쓸모없는 계층(useless class)’을 만들 수 있다. 그들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사회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부로 밀려날 것이다.”
— 강연, Survive the 21st Century (2018)
.. 사람들이 옆으로 밀려나고 있다. 엘리트가 그들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다. 엘리트는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경제를 보라. 경제를 끌고 가는 것은 노동력의 10% 정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취당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무의미해지고 있다". 착취와 싸우는 것보다 무의미함과 싸우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심리적이다.
“나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모욕당했다…”
Many people are pushed aside. The elite don’t exploit them. The elite don’t need them. Look at the Israeli economy; what is pushing it forward is 10 percent of the work force. Most of the people are not being exploited; they are just irrelevant. It is much more difficult to fight against irrelevance than to fight against exploitation. The main problem is more psychological: “I am not important. I am humili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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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념에 주목하는 것은 제가 작업중인 다큐멘터리가 얕게나마 정치적 양극화의 풍경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정치가 개입하는 것을 하라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트럼프나 에르도안 같은 정치인들이 사람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중요하다. 당신들은 무의미하지 않다.’
경제적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이 말은 심리적으로 강력하다.”
— Hürriyet Daily News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은 단순한 정치 전략이 아니다.
‘무의미함’이라는 감각을 달래주는 심리적 진통제다.
그렇기에 경제적 현실과 충돌하더라도 여전히 매혹적이다.
유발 하라리는 TED 강연 *“Nationalism vs Globalism: the new political divide”*에서 세계적 양극화의 뿌리를 이렇게 짚었습니다:
“오늘날의 정치적 분열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민족주의와 글로벌리즘 사이의 긴장 상태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이념 대립이 아니라, 공동의 인간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다.”
TED+2YouTube+
저는 이 책을 조금 더 천천히 읽어보려고 합니다. 자료를 찾아가면서..
'내가 쓸모없다는 느낌'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앞으로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다큐멘터리나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이 이야기를 붙잡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