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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만 구독 채널의 '쉽게 설명하기' 비즈니스

- 직업이 없어진 김에 탐색

by 김종우


몇 달 전 '한국은 끝났다'라는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해당 영상은 독일의 한 과학 유튜브 채널인 쿠르트게작트 (Kurzgesagt – In a Nutshell)에서 제작한 것으로, 한국의 초저출산이 가져올 결과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한 것.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PD수첩에 있을 때여서 관심 있게 보았고 저출산을 다룬 후배 pd도 이 영상을 인용하기도 했다.

언론들이 주목한 이유는 "한국은 끝났다"라는 섹시한 헤드라인 그리고 그 콘텐츠메이커의 엄청난 구독자 수(구독자수 = 권위가 된 현실) 때문이었는데, 이런 기사들이 쏟아졌다.

-한국은 끝났다 (South Korea is over). 전 세계 구독자 2380만 명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유튜브 채널에서 올린 영상의 제목이다. 태극기가 녹아서 흘러내리는 섬뜩한 그래픽을 섬네일로 걸고 한국의 초저출산이 경제·사회·문화·군사 모든 면에서 한국을 붕괴시킬 것이며 이미 그 어떤 것으로도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15분 안에 담았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종말 예언이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4284
202504031535089605_d.jpg 탁월한 헤드라인, 탁월한 대표이미지. 한마디로 탁월한 어그로. 여기서 그치면 평범하겠지만.


태극기가 녹아내리는 이미지, 'South Korea is Over'라는 걱정인지 고소해하는지 알 수 없는 헤드라인. 그리고 해외의 시각이라는 점. 나는 이 영상을 마음에 두고 있다가 피디들끼리 하는 모임에서 유튜브채널을 분석하면서 자세히 보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용이 깊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두 가지 근거로 '세게'이야기하는 채널은 많다. 셀럽을 모셔서 이런저런 인생이야기를 하는 콘텐츠도 넘친다. 그러나 15분 정도를 꽤 많은 자료를 들며 볼만하고 생각할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눈에 들어온 이유는 내가 직업으로 해온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다. 인터뷰와 현장이 부족하지만 빠른 호흡의 내레이션과, 만화 같기도 하고 인포그래픽 같기도 한 비주얼을 무기로 한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었다.


국내에도 이런 채널들이 많이 있지만, 보통은 '기이한 이야기' 쪽이다.

탄탄한 리서치, 15분이라는 롱폼, 그리고 비주얼..


이 채널을 좀 더 분석해 보기로 했다.

제목은 쿠르츠게작트..? (독일어 “Kurzgesagt” = “간단히 말해서”, 영어 부제 “In a Nutshell")

규모/ 인기/ 특징 등을 각종 AI를 동원해 분석해 보자.


“Kurzgesagt (In a Nutshell)” 채널에 대해서 최근 공개된 자료 중심으로
1) 규모 2) 인기 3) 특징을 정리해 볼게요.

1) 규모

구독자 수: 약 2,440만 명 이상

누적 조회수: 30억 회대 이상의 동영상 조회를 기록 중

동영상 개수: 영어 본채널 기준으로 약 290–300편 정도의 영상이 올라 있음

다언어 채널 운영: 영어 외에도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한국어, 일본어, 힌디어, 아랍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자체 제작 채널 존재

공식 웹사이트 방문자 수: 최근 한 달에 약 48만~50만 회 이용자 방문



2) 인기

대표적인 인기 영상: 코로나19를 설명한 영상(The Coronavirus Explained & What You Should Do)은 영어본만 8,700만 회 이상 조회됨

조회 성장세 및 시청자 유지력 높음 — 복잡한 주제를 시청자가 끝까지 보게 하는 ‘스토리 + 시각화’ 효과가 강함

참여율(Engagement rate): 영상별 평균 조회 대비 좋아요/댓글 등의 반응도 비교적 양호함 (예: HypeAuditor 자료에서 약 4.5%대 평가됨)

영향력 넓음: 과학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하나의 기준처럼 여겨지고, 다른 교육/애니메이션 채널에서도 많이 인용·참고됨


3) 특징

-끊임없는 리서치 + 사실 검증

각 영상은 책, 논문, 보고서 등 1차 자료를 참고하고 주제 전문가(expert)와의 검토 과정을 거침. 오픈한 출처(source sheet) 제공.

시각적으로 매력적이고 단순화된 디자인

벡터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flat-design + 컬러풀한 시각 스타일. 복잡한 아이디어를 눈으로 이해 가능하도록 간결하게 만듦.


-스토리텔링 중심의 구성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니라, 맥락 설정 → 문제 제기 → 해결 또는 사유 과정 → 의미 되새김 등의 이야기 흐름을 가짐. 시청자 감정/호기심 동요시키는 구조.


-주제 폭넓음

과학, 우주, 생물, 기술, 철학,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룸. 일반적이지 않은 주제도 탐구함.


-대중성과 전문성의 균형

어린이, 비전공자, 부모님 세대까지도 이해 가능하면서도, 오류나 과장 없이 과학적 정확성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있음.


-투명한 제작 과정

영상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단계 (리서치, 검증, 디자인 등) 공개하고, 출처(provide sources) 또는 검토(scientific review) 과정을 중요시함.



그렇다. 이미 꽤 큰 스튜디오고, 지상파 수준의 리서치와 팩트체크팀을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장 큰 특징은 톤(tone)으로,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처럼 쉽고, 독특한 칼라감이 있다.

이 채널의 주인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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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다트머(Philipp Detter)는 열다섯 살에 학교를 중퇴한다.

학업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배우는 것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적인 학교 교육이 “외워야 하는 의무”로만 다가왔고,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집중력 문제와 동기 부족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았다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황하는 중2 아니었을까? 결국 학교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느껴 중도에 그만두게 되고,

바로 그때 만난 “remarkable teacher” 특별한 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으며


그 선생님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배우는 것, 그것은 삶을 새롭게 보는 일”이라는 감각을 심어준 사람이며, 이 만남은 필립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잠깐! 이 이야기가 혹시 사업이 대박 난 이후 덧칠된 전설은 아닌가 해서 팩트체크해 보기로 한다.

영미권의 온갖 정보가 모이는 사이트 레딧(Reddit)에 그의 육성으로 보이는 글이 올라와 있다.


"Hi! I'm Philipp Dettmer, founder and head writer of Kurzgesagt, one of the largest science channels on YouTube with over sixteen million subscribers

It's 9:20 pm CET: Wow, thank you all for your questions and for joining the AMA today. It was more than I expected and I tried to answer as much as possible and now my brain is pudding. Signing off for today. If you want to ask more stuff, maybe ask others from the team, head over to r/kurzgesagt or checkout our (independent) discord community...."


번역해 보면 대충 이렇다.

안녕! 나는 필립 데트머야. Kurzgesagt의 창립자이자 수석 작가지. 유튜브에서 구독자 1,600만 명 이상을 보유한 가장 큰 과학 채널 중 하나야. 나는 학교 성적이 정말 형편없었고 15살에 고등학교를 자퇴했어. 학업에 전혀 흥미도 없었고, 배움이란 게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지. 그러다 중등학교 졸업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던 중 정말 인상 깊은 선생님을 만났어.
이름은 Frau Reddanz였는데, 그분 덕분에 세상을 이해하고 배우는 것에 대한 열정이 생겼지. 주로 열정적으로 나를 꾸짖으며(generally by screaming at me passionately) 가르치곤 했지만, 그것이 내게는 큰 울림을 주었어.
나는 처음에 역사를 공부했지만 대학 생활은 너무 지루했고, 결국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인포그래픽에 집중하게 되었어. 사람들이 복잡한 아이디어도 쉽게 이해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으니까. 학부 졸업 논문 주제로 유튜브 영상을 만든 것이 바로 Kurzgesagt의 출발점이 되었고, 그 프로젝트는 8년 동안 점점 커져서 유튜브에서 가장 큰 과학 채널 중 하나로 성장했어. 지금은 메인 채널 구독자가 1,600만 명을 넘고, 조회수는 15억 회 이상이며, 45명 규모의 팀이 풀타임으로 함께 움직이고 있지. 각 영상을 만드는 데는 정말 많은 시간이 들고 보통 한 편에 1,200시간 이상이 걸려. 지난 8년 동안 우리는 약 150편의 영상을 제작했어.


그러니까.. 중퇴 후에 우리나라로 따지면 뒤늦게 고등학교 졸업증이라도 따려고 검정고시 공부를 할 때 프라우 레던츠라는 열정적인 선생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다. 그 열정이 울림을 주고 대학에 갔으나 다시 지루함을 느끼고 -> "복잡한 아이디어도 쉽게 이해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인포그래픽 공부에 집중하게 된다.


참 세상에 이렇게 귀인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배움을 지루해해서 교실을 뛰쳐나간 젊은이가 귀인에게서 삶의 태도를 배우고 대학을 가고, 그토록 싫어하던 '배움'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 하다 보니까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인데.. 아니 이런 아름답고 수익성 높은 이야기가 가능하단 말인가?

참 부럽도다.. 어쨌든 스티브 잡스가 캘리그래피 공부를 만나서 향후 애플의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축적했듯, 이 필립의 사업 스토리에서는 인포그래픽 공부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I switched to communication design and focused on infographics. I wanted to make difficult ideas interesting and easy to understand.”

“그래서 나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고, 인포그래픽에 집중하게 되었어. 내가 원했던 건 어려운 아이디어를 사람들이 흥미롭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어.”


실제로 이 채널의 디자인은 정말 흥미롭다. 아이 같은가 하면 완전히 아이 같지는 않고, 천진난만하면서 탐구정신을 자극하는데 예술성도 뛰어나다고 할까?


다운로드 (1).jpeg 이런 이미지들


다운로드.jpeg


‘Kurzgesagt 스타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스타일은, 팀의 디자이너들이 오랜 기간 협업하며 발전시킨 결과라고 한다. 톤 앤 매너는 한 번에 다듬어지지 않는 레거시이며 가장 중요한 자산 중의 하나다.


그렇다면 주제를 정하는 기준은 어떨까? 그는 영상을 기획할 때 ‘이건 영상으로 만들어야겠다’라고 결정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


"흥미로운가? – 사람들이 정말 보고 싶어 할까?


설명 가능한가? – 우리만의 방식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가?


의미가 있는가? – 이 주제가 세상에 가치 있는 대화를 만들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갖고 출발한다고 한다. 그동안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직업인 입장에서는 부끄러웠다. 나는 이런 세 가지 질문 준비했었나, 생각하면서..


특히 '세상에 가치 있는 대화를 만드는' 부분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의미로도 그렇고, 사업적으로도 그렇다. 끝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하고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의견을 말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 그렇게 말할 거리를 던져주지 않는 IP는 생명력을 잃게 된다.


다운로드 (2).jpeg 펜타닐에 관한 영상의 섬네일이미지


부럽고, 또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이제 지상파에서 다큐멘터리 제작비를 없앴기 때문에 알아서 살길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라 더 그렇다. 아마도 많은 직장인들은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 새로운 뉴 노멀( new normal)의 시대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끼인 세대, 아직 위로는 586세대가 꽈악 자리 잡고 밑으로는 영 제너레이션이 올라오는. 슬픈 끼인 세대로서는 더더욱 탐색밖에 없다.


이 채널은 스폰서 계약을 할 때 반드시 “콘텐츠에 간섭할 수 없다”는 조항을 넣는다고 한다.


"제안이 와도 우리 원칙에 맞지 않으면 거절합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수많은 제안을 거절했어요. 우리는 영상의 독립성과 신뢰성이 최우선이에요."


이건 그동안 우리가 훈련받고 자존심으로 지켜왔던 태도라서 반가웠다. 게다가..

나름 해외 수상 경력을 쌓은 피디지만, 며칠 전 '기업의 홍보 다큐를 할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던 터라

답답하고, 부럽고,

세상은 결국 '스스로 구원하는 자의'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즉, 스스로 길을 찾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좋은 것을 세상에 던지고, 그것으로 돈도 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영광 따위는 아무 상관없이, 정말로 '돈 주는 사람이 해달라는 대로' 해줘야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채널은 얼마를 벌어들이고 있을까?

이걸 알아야 목표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시 조사해 본다.


먼저 전체 수익 규모는..

비상장기업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인 Growjo 추산에 따르면,
Kurzgesagt – In a Nutshell의 연간 매출은 약 **2,190만 달러(한화 약 300억 원 수준)**에 이른다.


다만 이 수치는 공식 회계자료가 아니라 외부 분석기관의 추정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다른 기사 등에서 언급한 액수로 추정해보면 이보다 작다. 따라서 이 부분은 다시 체크가 필요하지만, 어쨌든 세계시장에서 1위 채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탄탄한 중견기업 수준의 매출은 내는 것으로 보인다.


AMA(필립 데트머 공개 자료)에서 정확한 총매출액은 밝히지 않았지만, 수익 구조 비율은 상세히 공개했다.


output (3).png

Revenue Structure (Based on AMA)

Shop: 45%

YouTube Ads: 13%

Patreon: 7%

Commercial Sponsors: 11%

Institutional Grants: 13%

Others (Licensing etc.): 11%


유튜브 광고의 비율이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며, 굿즈등 샵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크다.

또 Institutional Grants 즉 기후변화, 백신 등 공익적 목적의 기관이나 재단에서 집행하는 일종의 공익광고적인 콘텐츠 시장의 비율도 상당하다.

순수한 후원도 7%대인데, 팬덤과 멤버심이 있으면 가능한 구조다.


결국, 잘 키운 채널 하나 방송사보다 낫습니다. 아니 방송사에서 겨우 지원사업으로 연명하는 건 지속불가능하기에, 이 채널이 주는 영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첫째, 비주얼 스토리텔링의 놀라운 가능성

둘째, 모든 것은 '재미있게 설명할'수 있으며 콘텐츠가 된다.

셋째,....


필립 데트머는 학교를 중퇴하고도 배움의 흥미로움을 놓지 않고, 자신의 흥미와 세상의 변화가 맞닿는 지점을 계속 찾은 결과 눈부신 성공을 거뒀다.

꾸짖는 좋은 선생님을 좋은 어른으로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갔고, 또 생각과 다르게 역사가 재미없을 때는 인포그래픽의 세계를 통해서 다시 접점을 찾았다.


배우는 걸 싫어했던 사람이 '모든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배우는' 일종의 교육 사업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짜릿한 반전이며 즐거운 스토리인가?


어쩌면 우리의 모든 가능성은 지루해하는 시간 속에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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