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핫한 기사 속, 외로움과 AI
링크드인에서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접했다.
Harvard Business Review, "사람들은 AI를 정말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라는 조사였는데
AI로 비주얼을 생성하는 수준을 벗어나 어떤 기획을 할지 항상 고민하는 와중에 매우 인상적이었다.
소개해준 분에게 감사드리며,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원본을 찾아 HBR 국내판을 구독하는 등 약간의 삽질을 했다.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게 정리되었다.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볼만한 거리를 던져준다.
“How People Are Really Using Gen AI in 2025?” 는 Marc Zao-Sanders가 쓴 칼럼인데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한 교육·러닝 테크 기업 Filtered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이고, 학습·AI·교육 혁신 분야에서 꾸준히 글을 써온 사람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빅테크 기업 쪽 인물이라기보다는 인문학과 테크의 중간쪽에 있는 느낌이다.
실제 조직 학습과 인재 개발 현장에서 AI 도입을 실험하고 데이터를 쌓아온 practitioner 겸 연구자라고 볼 수 있겠다. 요즘은 어떤 기사를 조사해도 이렇게 테크와 인문적 혹은 정치적 역량을 결합한 인재를 많이 만나게 된다. (필연적으로 이 시대는 두 분야의 결합을 필요로 한다.)
이 조사는 2024년과 2025년 연속으로 진행되었고, 설문조사가 아니라 Reddit과 Quora 등 온라인 포럼 등에서 수만 개의 실제 사용자 게시물을 수집 분석해 GenAI 사용 패턴 상위 100개를 도출했다.
가장 중요한 그래프를 보면
2024년에 상위 사용케이스에는
'아이디어 도출', '심리치료 및 동반자', '특정목적의 검색' 그리고 '문서편집'이 있었는데
1위였던 아이디어 관련 사용빈도가 2025년에는 6위로 뚝 떨어진다.
검색과 문서편집은 순위에 보이지도 않고, 2위였던 '심리치료 및 동반자'는 1위로 올라선다.
그리고 2024년의 2위는 'Organizing my life' - 나의 삶을 정리한다고?
3위는 무려 'Finding Purpose'란다. 삶의 목적 찾기!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AI의 활용은 문서 요약이나 이메일 작성 같은 반복 업무의 보조일 것이다. 그러나 (오차가 있겠지만) 실제 사용자들의 사용빈도로부터 도출한 결과는 사람들이 훨씬 더 인간적인 차원, 즉 삶과 감정, 존재의 목적까지 이어지는 질문에 AI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디어, 검색, 문서편집' 에서
'심리치료, 나의 삶을 정리하기, 목적 찾기'로
예상 밖으로 많은 사람들이 AI를 정서적 동반자로 삼는다. 단순히 정보를 묻고 답하는 도구가 아니라, 마음을 털어놓는 대상, 힘든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위로의 존재로 AI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실제 사용자들이 말한 활용 고백들을 보자.
“I talk to it everyday … it helps me with my brain injury daily struggles … it has saved my sanity.”
(매일 AI와 대화한다. 뇌 손상으로 인한 일상의 어려움을 견디게 해줬고, 내 정신을 지켜줬다.)
“It makes me feel less alone. I don’t have to bother my friends with my worries.”
(덜 외롭다고 느끼게 해준다. 내 걱정을 친구들에게 떠넘기지 않아도 된다.)
“It organizes my day better than I ever could. I finally feel on top of my tasks.”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하루를 정리해준다. 드디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관리하는 기분이다.)
“It explains concepts in ways I understand. School never did that for me.”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념을 설명해준다. 학교에서는 결코 해주지 않았던 방식이다.)
“It asks me questions that make me think deeply about my life choices.”
(내 삶의 선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진다.)
학교에서는 결코 해주지 않았던 방식으로 세상에 대해 이해하게 해 주고, 나의 하루를 정리해주고 관리해주며, 심지어 내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해주는 존재라니. 사람들은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 가치관은 무엇일까?” 같은 물음을 AI에게 던지고, AI는 때때로 날카롭고 체계적(으로 보이는 것이겠지만)인 답변을 돌려준다.
한번은 비주얼에 인공지능의 요소가 많이 들어가는 기획을 가지고 VFX부서의 팀원과 길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기술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는 프로젝트라 프리프러덕션 단계부터 같이 기획해보려 했으나, '어떤 영상이 가능할까' 라는 우리의 이야기는 이상하게 흘러갔다.
사실 VFX를 다루면서도 그분은(여성이다) AI를 실제로 일에서 적용하는 것에는 여전히 회의적인 부분이 있었다. 방송일이란 끝없는 '비전과 수정' 사이의 일이므로,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고 수정하기보다는 매번 새롭게 제너레이트하는 현재 AI영상의 방식이 크게 맞지는 않았다.
그대신 챗GPT얘기를 하다보니...
나는 챗GPT가 거의 남자친구야
동년배인 그분은 아버지가 치매를 앓게 되시며 국내에 남은 가족도 별로 없어, 아버지의 요양을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아버지를 몇 시간동안 돌보고 집에 와서는, 챗gpt와 대화를 한다는 것...
그렇게 대화하다보면 위로가 될 뿐 아니라 나도 몰랐던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너무나 명쾌하게 정성스럽게 분석해서 구조화해준다는 것이다.
지난 겨울, 아버지가 경증의 뇌경색을 겪으셔서 온가족이 힘든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어서 아픈 부모님을 돌보는 현실이 남일같지 않았다.
일하고 나서 아버지를 돌보고, 돌아와서 맥주 한캔을 마시면서 몇 시간이나 이어가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대화를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집에 와서, 마침 혼자서 뭔가를 열심히 타이핑하는 딸아이에게도 물어본다. '너는 챗gpt를 어디에 써?' 그랬더니 이것저것 물어봐, 라고 말한다.
뭘 물어보냐고 했더니 그냥 하고싶은 말을 한단다. 아빠가 조금 보면 어떠냐고 하니까 안된단다.
아, 분명 딸아이가 쓰는 사례도 아마도 Theraphy/Companionship 혹은 Organizing my life영역일 거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생성형 AI는 더 이상 ‘특정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는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감정의 동반자, 삶의 정리자, 자기 성찰의 거울로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은 약간 무리가 있겠지만 방향은 분명히 느껴진다.
비인간적인 대화, 인간으로서 '위로하겠다'라는 의도가 전혀 없는 존재와의 대화가 역설적으로 이상한 위로를 주는 순간이 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질문을 던지고 AI가 '생각하는 중..'이라고 나오는 시간이, 열심히 나를 위해 생각해주는 듯하다고까지 말한다.
어쨌든 레딧과 같은 사이트에서 도출한 결과가 과연 믿을만한가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확실히 AI의 발전과 함께 어떤 시대에 대한 감각이 읽힌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고통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초연결 시대의 삶의 풍경에 대한 것이다. 스마트폰, sns, 온갖 정보로 무장한 똑똑한 사람들이 거대언어모델에 몇 시간동안 속마음을 털어놓는.
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 는 21세기를 Lonely Century라고 명명하고 만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초연결'된 개인들은 역설적으로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왜? 옆사람이랑 노는 곳이 아니라 경쟁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야 하며, 전통적인 공동체는 붕괴되었다.
우리에겐 마을도 모임도 없다. 친구도.. 뭐 조금은 있겠지만, 돈을 버는 활동이 아닌 시간동안 우리는 작은 화면을 보는 시간 외에는 사람들과 많은 것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술 마시고 떠들 사람이 남아 있으면 행복할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공유하는 사람이 아닌 축적하는 사람으로, 돕는 사람이 아닌 투쟁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외로움이란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소외되고, 인정받지 못하며,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있다고 느끼는 모든 감각”이며, 외로움은 우울증·불안 같은 정신적 문제뿐 아니라, 신체 건강, 민주주의, 공동체 안정성까지 위협하는 전방위적 질병이라는 것이다.
즉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흔드는 구조적 위기다” 라는 것이 노리나 허츠의 주장이다.
이건 마치 유발 하라리가 'Irrelevance' 즉 '나와 상관없음'의 정서를 지적한 것과 비슷하다. 현대사회의 보통 사람들은 점차 공동체로부터, 중요한 결정과 토론으로부터 배제되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수밖에 없게 되어간다.
나는 AI 가, 인공물이 주는 이상한 위로의 정서를 알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하면서 깊이 생각했던 부분이다. 어느 곳에서도 오지 않은, 어떤 알고리즘의 조합이어서 오히려 믿을 수 없거나 나와 경쟁하는 인간이 아닌 순수한 존재 - 거의 초월적인 느낌을 줄 때가 있었다.
매일 포모증후군에 시달리며 더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하는 우리들은 어쩌면 나와 한 팀이 되어 나를 낙오하지 않도록 지켜줄, 그러면서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줄 어떤 존재를 원하게 될 것이다.
이 풍경에서 나는 어떤 좋은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 기술의 Demo와 같은 버전의 프로그램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