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기억

by 김종우

오늘 경향신문의 칼럼 코너 중에 정지아 작가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짧은 글에 마음을 내주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

<내가 서울에서 내 인생을 사는 동안 고향에 있는 부모님은 나날이 초라하고 쓸쓸하게 늙어가는 중이었다. 그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갑자기 훅. 딱 일년 전 이맘때 아버지에게 경증의 뇌졸증이 왔던 기억, 온 식구가 어쩔 줄 모르고 병원과 함께 했던 시간들과 그 이후 천만 다행으로 회복하고 계시지만 또 많이 늙어가는 부모님이 생각나 마음이 흐린 거리를 헤메는 것처럼 정처없어진다.


정지아 작가님과는 방송에서 만난 적이 있다.

김남길, 이상윤 배우가 바이크를 타고 한국의 아름다운 곳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뭐라도 남기리> 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지리산의 정지아 작가님을 섭외했고 흔쾌히 응해주셔서

정말 즐거운 만남을 가졌다. 꽤 많은 시청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들었다.


책과 에세이 등에서 들었던 말을 풀어서 직접 들으며, 또 지리산의 작가님을 만날때 꼭 들고 와야 한다는 조니워커 블루를 딱 한두 잔씩 곁들여서. 지리산과 책 이야기와 부모님 이야기, 우리는 그렇게까지 깊게 느끼지는 못했던 근현대사와 가족 이야기..정지아 작가님은 과연 글발도 예술이지만 말발도 또한 그에 못지 않아서 밤새도록이라도 듣고 싶어질 정도였다. 우리는 거기에 약간의 자료화면 등을 편집해서 또 재미있게 만들었고. 그러나 지금이라면 난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어떨 때는 찬바람이 느껴질 만큼 날카로운, 어떨 때는 시골 누님처럼 푸근한 작가님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더 털고 싶었으나 촬영 일정상 몇 시간 후 이동했다.

지리산 그곳에는 정지아 작가가 산다. 한 사람의 문화적인 힘이 얼마나 그 지역의 느낌을 바꿔 놓던가? 그리고 쓰는 사람의 힘을 생각했다. 결국 작가는 부모님의 지난한 인생과 자신이 받은 고통을 모두 합쳐서 거의 9회 역전 스리런홈런을 치듯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바꾸어놓았다. 사는 동안 내내 돈 많이 번 사람이 이기더라도, 결국 마지막에는 쓰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는 이상한 생각.


치타 였나? 그 댁 마당을 뛰어다니는, 사람 잘 따르는 커다란 말라뮤트 계열 강아지도 생각난다. 올해는 한 번쯤은 좋은 동료들과 함께 지리산에 가서 정작가님을 찾고 싶다. 1월말 출장을 다녀오면서 일단 조니워커 블루 큰병을 사기로 한다.

지리산에 대해서 숱하게 듣고도 그 방송을 할 때서야 처음 가 보았다. 가 보고서야 아 이래서 지리산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산이라기보다는 넓고 깊은 어떤 땅, 물이 풍부하고 숨을 곳이 많고 딱히 뭐 등산 한다기보다는 여러가지 코스를 걷고 가만히 쉴 수 있는, 그래서 온갖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서울에서 정신이 닳아 없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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