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서울의 밤> 로테르담영화제 진출기

by 김종우

로테르담영화제(International Film Festival Rotterdam)는 칸, 베를린, 베니스에 이어 세계 10위권의 영향력있는 영화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그 리스트 안에 들어가는 영화제로, 예술영화와 독립영화의 소개와 지원도 아끼지 않는 지적이고 단단한 영화제다.

1997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 초청되어 개막작으로 상영되었고

<똥파리>나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짐승들>같은 영화도 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로테르담영화제에 초청된 한국영화들에 대해선 여기에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


이 항구도시 로테르담영화제에 동료들과 함께 만든 영화로 초청받았다.

성과가 불분명해 어렵게 모인 영화 팀을 해체해야 했던 절체절명의 순간,

우리의 영화 '서울의 밤' (영문제목은 The Seoul Gaurdians)이 2026 로테르담국제영화제의 하버 섹션( Harbour Section)에 정식 초청되며 월드 프리미어 스크리닝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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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서울의 밤 (The Seoul Guardians)> 은 어떤 영화일까?

논픽션PD들이 제작한 만큼 다큐멘터리다.

<서울의 밤>은 한국을 뒤흔들었던 2024년 12월 계엄령이 발표된 그날 밤의 긴박한 시간을,

하나의 기억과 함께 표현한 밀도 높은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사의 1년 전...

나는 2024년 12월, 계엄령이 발표되었을때 실시간으로 회사 사무실에서 뉴스를 보았고,

거의 15분이 지나지 않아 동료 조윤미, 조연출 전민제와 함께 6mm 카메라 2대, 노트북 등을 챙겨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PD 수첩의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집 방송이 될 것을 예상했지만, 위험할 수도 있는 너무 급한 취재이기도 했다.

그날 밤새 국회 안에서 촬영과 동시에 함께 바리케이드를 치는 진기한 경험을 했는데....

방송보다 중요한 건 현실이니까 그냥 국민으로서도 정말 큰 일을 함께 겪은 것이고, 그걸 좀더 가까이서 본 경험이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이날의 경험은 개인으로도 조금 냉소적인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번아웃인지 뭘 찍고 만드는 일에 시큰둥해지고 사람들의 위선이 눈에 먼저 들어오곤 했는데, 다시 일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돌아가보기로 했다.

그날 국회에서 보았던 보통 사람들의 얼굴 때문이었다.

가진 것도 권력도 없고, 따라서 광장에 나오는 행동에 이익을 계산할 것도 없는 보통 사람들.

어차피 국회의원도 못 될 늙수구레한 보좌관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지휘할 때, 여고생과 아저씨와 할머니가 한 자리에서 지금 국회에 밀고 들어가야 하는지를 토론할 때, '여기 막아주세요!'라는 말에 함께 달려가 스크럼을 짜고 총 든 군인들을 맞이할 때,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무표정한 얼굴들이 아니었다.

그 얼굴들을 보고 마음 둘 곳을 찾았다.


8F034645-2384-490D-A5E3-AFB118D0920C_4_5005_c.jpeg 2024. 12. 3 밤 국회에서 생존신고로 사무실에 보냈던 사진


그렇게 그날 함께 찍었던 촬영분, 그리고 피디수첩 팀들이 찍은 그 이후의 촬영분들을 가지고 좋은 방송을 했지만 몇 달이 되어갈 즈음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동료 김신완 피디의 제안으로부터 시작해 외인부대와 같은 영화 팀을 결성!

부산영화제를 목표로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F80B9E7E-55CB-4DD5-8219-E46DF9F0721E_1_105_c.jpeg 집에 못 가는 사람들 25.7.19

그리고 수없이 많은 밤샘과 새로운 만남들, 몇 번의 좌절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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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부산영화제 초청이 좌절되고 나서 상실감 극복을 위한 팀 산행. 북한산


결국 '무슨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기까지 몇 개월이 더 걸렸다.


처음에 스트레이트하고 날것(raw film)의 느낌에 집중했지만, 그 긴장감은 살리면서 한강 작가가 말한 '과거가 현재를 구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했다.

그냥 얻어걸렸으니까, 찍혔으니까 하는 이야기여선 안 되는 것이다.

좌절에 부딪치면 처음에는 분노하고 우리 기획을 못 알아보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쉽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모두 온당하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바로 네가, 이 이야기를 던지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이유인가?

이런 단순하고 묵직한 질문에, 상을 받고 싶다거나 증명하고 싶다는 욕망 말고 조용하고 깨끗한 뭔가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작업을 하면서 지금까지 해온 방송과 달리 가장 크게 느낀 것은..기획안이나 로그라인, 좋은 계획만큼이나

연출의도 <Director's Note>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Director's note는 그렇게 짧지 않고 어떤 다큐멘터리에서는 3-400자를 넘어가기도 한다.


방송의 논픽션 보도와 다큐멘터리는 자신을 숨기고 객관적으로 보이는 원칙에 충실하다.

그것대로 장점이 있겠지만 소위 '똑같아지려는 욕망'에 숨는 것으로 보일 때도 있다.

어떤 해외 다큐멘터리들의 디렉터스 노트들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운명적으로 얽힌 시간들, 그래서 완전히 찍는 대상의 이야기도 아니고 완전히 감독 자신의 이야기도 아닌, 그 두 가지가 화학적으로 얽힌 에세이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정도는 되어야 어떤 이야기를 던지는 거구나, 라고 반성을 많이 했다.


감사하게도

영화 <서울의 밤>이 로테르담영화제에 초청되었다.

61F420BB-02E6-4E30-8047-573FB6F1363F_4_5005_c.jpeg 밤에 도착한 로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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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방송을 하고 있는 피디들이 모여서 짬 나는 시간에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별다른 홍보 전략도 인력도 없다. 그래서 이렇게 디렉터가 직접 온라인에 올려서라도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 국내 개봉까지 이어가기 위해선..


이 영화를 만들면서 느끼게 된 것들을 포함해서 나의 훌륭한 동료들의 이야기, 그리고 너무나 관용적인 분위기의 로테르담 영화제, 앞으로의 여정 등을 연재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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