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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Society : Then & Now

-[영어 담론]한 세대 전과 지금의 한국사회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육제도 필요 

                               

한 세대 전 한국사회는 어땠을까? 

30년 전과 지금. 아날로그에서 첨단 디지털 세상으로 정보기술(IT)이 엄청나게 발전해 이제는 인공지능(AI)이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면서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어왔던 1차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사회의 뒤편으로 물러나는 시기가 됐다. 그 자리를 2차 베이비부머 세대와 에코부머 세대 등 신흥 계층들이 주역으로 등장했다. 


그러면서 세상의 패러다임은 수직적 패턴에서 수평적 패러다임으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 첨단 기술국이 되고 3만 달러라는 1인당 국민소득의 달성을 이뤘지만 한국의 사회문화체계는 얼마나 진전되어 있을까? 


필자가 한 세대 전 당시의 한국사회를 영어라는 언어 매체를 통해 객관적으로 고찰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글로벌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도 전이다. 필자는 일찍이 영어를 독학으로 습득하며 《코리아타임스》를 비롯해 영자지에 칼럼을 집필했다. 


당시 필자는 30대의 신세대에 속해 있어 구세대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지니고 있었던 때다. 이제 필자도 정확히 한 세대가 지나 기성세대 축에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어로 칼럼을 쓰고 있다. 칼럼 주제의 큰 틀은 ‘한국사회의 선진화’다. 그때나 지금이나 논지는 일관적이다.

 

아쉽게도 필자가 글로벌 언어를 통해 객관적 자의식으로 썼던 30년 전의 칼럼 내용은 현재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한 세대 전과 지금, 우리의 ‘사회문화체계’는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까? 


신학자이자 정치개혁가인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는 “정치인(politician)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만 정치지도자(statesman)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 한 세대를 내다보는 정치지도자가 절실한 시점이다.

 

1989년 6월 2일 자 《코리아타임스》에 게재되었던 필자의 칼럼을 영한 대역으로 그대로 실어보기로 한다. 그때와 물리적인 사회 여건은 변했을지 몰라도 사회문화적인 환경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렇다면 미래 한 세대 후의 한국사회는 어떨까?     


30년 전의 시대상황을 한역(韓譯)의 지면 상 원 칼럼의 원본을 요약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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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ew Education System for A New Age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육제도가 필요하다


When I see things come to a head in every sphere of our society, I more often than not wonder why we assert ourselves too much unilaterally, while disregarding others' opinions. It seems that there is no compromise, meeting half-way, or negotiation at all.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것을 보면 종종 왜 우리는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내세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타협과 협상이라는 것은 도대체 없는 것 같다.


Only two extreme values run parallel, endlessly conflicting with each other. In this regard, we are inclined to take the heady internal situation for granted as a natural occurrence in the transition toward a full democracy.

오직 양극만이 좌충우돌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형국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 사회의 격해진 상황을 보고 민주화로 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있을 수 있는 일쯤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For that, I guess that maybe we are lacking the ability to enjoy the luxury of the fringe benefits of a truly liberal democratic nation. I an afraid that Koreans perhaps are hardly the type of people that are cut out for respecting others' way of life and thinking.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부가가치를 누릴만한 능력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을 존중할 줄 모르는 부류의 사람인가 싶다. 


It naturally occurs to me that a middle-of-the road stance never works in Korean society. When we are persecuted, we easily become subjected to forced conformity, but once we are free of ant shackles, we appear to let ourselves excessively loose and go to extremes. At a glance, there is not a modicum of moderation whatsoever in us.

당연히 한국사회에서는 중용이란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는 속박을 당하면 쉽게 수그러들어 획일적이 되고, 그러다 통제에서 벗어나면 마냥 해이해져서 극단으로 흐른다. 도대체 우리에게는 절제하는 것은 조금치도 없는 것 같다. 


With the current sociopolitical melee in mind, I am sure that the primary solution to the prevailing, chronically uncompromising bi-polar mentality that the Korean people harbor is the introduction of a more streamlined education system in the long-term perspective. I think the future of this nation, if we desirably continue to steer our way into a blooming democracy, will rest upon the quality and substance of our education.

작금의 사회 정치적 분규를 들여다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양극적인 정신자세를 극복할 수 있는 주요한 방법은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합리적인 교육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의 진로를 참된 민주주의 국가로 잡아가려고 한다면 국가의 장래는 교육의 질과 내용에 달려 있다.

  

Now is the superb time to initiate an epochal educational policy in anticipation of  a democratically advanced nation of the future, and the policy should be adequately designed to train our young generation into a new breed of enlightened citizens. Our children should be educated from their childhood to debate things reasonably and conscientiously. 

지금이야말로 미래의 선진 국가를 위해 획기적인 교육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정책은 젊은 세대들을 새로운 부류의 좀 더 깨우쳐진 시민으로 훈련시키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합리적이고 양심적으로 의견을 나누며 토론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They must be trained to be able to confute others' opinions in a civilized manner with their confutation  duly based on reason, not on bluff. Also, they are to be infused with a strong sense of egalitarianism and community spirit. They have to be molded into a public order-minded set in the society that requires fairness and rationality to assert their demands. In a nutshell, they must be instructed to toe the line within the framework of the majority will.

그들은 억지가 아닌 논리로써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세련되게 반박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고, 평등주의 정신과 공동체 의식을 확실하게 주입시켜야 한다. 그들을 자신들의 요구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합리성과 공평성을 필요로 하는 공동체적 자세를 갖춘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해야 한다. 한마디로 그들을 다수 의지의 사회체제 속에서 질서를 준수하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However, it is a great regret that the educational system in Korea has been somewhat low-keyed and simply reduced to cramming nominal knowledge into permissive young minds. Moreover, our kids have been harassed by the social setting that was brought about by the ill legacy of the past, under the influence of the affluent westernized society. They have been more accustomed to beating others in this highly competitive society rather than willingly adapting to others in harmony.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교육제도는 침체되어 왔으며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들에게 피상적인 지식이나 주입시키는 도구로 전락했다. 여기에 물질 풍요의 서구화된 사회의 영향을 받은 우리의 자녀들은 과거의 잘못된 유산에서 비롯된 사회풍조로 가치관의 혼돈을 가져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남을 딛고 일어서는데 익숙해 있다. 


I feel our wayward, wilfull behavioral pattern is to be ascribed to the less advanced, less sophisticated schooling from the very start. So, I wonder whether what is called the ‘establishment generation’ can discard its diehard combative attitudes right away that have been formed under peculiar Korean social and educational circumstances, however hard we may try.

우리의 외곬적인 행동양식은 초기단계부터의 발전성이 미흡하고 정교하지 못한 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기성세대’들이 특정한 한국의 사회 교육적 환경에서 습득된 뿌리 깊은 투쟁적 태도를 바로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인가에는 의구심이 든다.


In this regard, I am indeed afraid that the present sociopolitical scene featuring the ubiquitous polarized wrangling and violent confrontation will affect the young generation in its formative stage. And I feel the ongoing process of liberalization amid antagonism and disharmony has some serious effects on our growing children who are entirely exposed to all of the social turbulance without having a clear perception to the difference between right and wrong.

지금 널리 만연되어 있는 양극 논리와 격렬한 대립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 정치 풍토가 한창 성장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영향을 줄까 우려된다. 또한 반목과 불협화음 속에 진행되고 있는 자유화 운동이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분별력이 없이 사회의 모든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부작용이 있을까도 생각해 본다. 


Now, when a changing society is a start reality, I believe that we have to make our children accommodated to a newly emerging world gradually through a more challenging educational program. For that, school curricula need to be revised drastically to enable our younger generation to naturally adapt to the shifting times.

지금 사회가 변모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보다 참신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서서히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 젊은 세대들이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과정을 과감히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I understand that social developments are closely related to the national traits of the people as well, and it takes a really long span for the traits to shape up into a nation. Here, education plays an important role in forging a nationhood, and the nationhood can be kneaded with strenuous efforts by way of consistent education from early on.

사회의 발전은 국민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새로운 국민성이 갖추어지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교육은 국민의 심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노력할 때 국민의 심성은 다듬어질 수 있다.  



In conclusion, every time I look at social disturbance rampaging across the country under the pretext of democratization, obviously devoid of any reasonable concession and compromise by conflicting parties, I feel more keenly that a new education system should be established to groom our forthcoming generation into a rational, sensible one for the times ahead.

결론적으로, 합리적인 양보와 타협도 없이 민주화란 미명 아래 전국을 휩쓰는 사회적 소요를 보면서 앞으로 우리의 신세대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국민이 되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제도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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