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글로 쓰면 현실이 된다'는 확고한 믿음
꿈 많아 기백 넘쳤던 공군장교 시절
1978년 12월, 내가 대학 졸업 후 공군간부후보생을 거쳐 장교로 있을 때다. 소위로 임관하여 얼마 안 돼 신임장교 연말 소양교육이 있었다. 당시 서울 대방동에 위치해 있었던 공군사관학교에서다.
그날 서울에는 몇 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하얀 눈이 탐스럽게 온 세상을 눈이 부시도록 덮어버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였다.
그날의 특강은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 빨간 마후라가 된 선배장교의 인생 스토리였다. 어릴 적 시골에서 가난을 이겨내고 사관학교에 입학하기까지의 애잔한 체험담을 듣는 자리였다.
선배의 강연 내용이 얼마나 절절했던지 교육장은 침묵만이 흘렀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뭉클한 감정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20대 청년 장교들의 가슴을 뜨겁게 흔들어 놓은 정신 감화교육이었다.
특강이 끝나자 각자 인생의 좌우명을 정하는 순서가 있었다.
“국가를 지키는 간성으로서 군 복무 기간은 물론 나중에 사회에 나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좌우명을 하나씩 오늘 여기에서 결정들 하시오!”
그날 교육을 맡은 통솔 상관이 우리 교육생들에게 내린 지시였다.
그때 아직 새파란 젊은 나이에 내게는 무슨 인생의 뚜렷한 목적이 있지를 않았다. 아마 다른 동기들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정신교육은 내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를 지탱해 준 감사한 인생의 좌우명
'성실 · 자신 · 인화'
골똘히 생각하여 바로 그때 정한 나의 인생 모토였다. 그리고 배속된 부대로 돌아와 생각을 해냈다. 좌우명을 브리핑 차트 작성을 전담하던 하사관에게 부탁해 우선 붓글씨로 깔끔하게 종이에 쓰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을 코팅을 해 언제나 수첩에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늘 몸에 지니고 다니니 수첩을 꺼낼 때마다 그 좌우명을 수시로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이렇게 해서 그 좌우명은 나의 삶에서 군대는 물론 사회생활의 지침이 되어버렸다.
“왜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가?”
이것은 미국 대통령을 지냈던 지미 카터가 초임 장교 시절에 정한 인생의 좌우명이다. 그는 본래 해군장교로서 해군사관학교 출신이었다. 그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부임하는 자리에서 사령관은 그의 신고를 받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카터 소위, 귀관은 사관학교 시절에 몇 등이나 했는가?”
갑작스런 물음에 당황하던 그는 대답했다.
“750명 중에 57등을 했습니다.”
이에 사령관은 “귀관은 어찌하여 최선을 다하지 못하였으며 어찌하여 57등밖에 못했는가?”라고 꾸짖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카터는 사령관의 말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
예술경영 지표
한참 세월이 흘렀다.
군 장교 시절에 정한 인생의 좌우명은 여전히 나의 삶속에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2003년부터 2015년까지 13년 동안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경영을 맡는 기회가 있었다.
이때도 역시 나는 성실 · 자신 · 인화를 예술경영과 접목시켜 복합문화예술기관의 운영철학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글로 써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그 좌우명은 바로 내 인생의 주춧돌이 되었다.
이렇게 목표를 기록으로 남겨 지속적으로 상기하게 되면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그 목표를 향해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것은 목표에 대한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습관화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과 성공학의 대가 지그 지글러는 ‘목표를 종이에 기록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의도나 계획도 토양 없는 곳에 뿌려진 씨앗’과 같은 것이라 했다.
그렇기에 일단 기록으로 저장된 목표는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더라도 그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기록이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해서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90% 정도 사람들은 목표 없이 인생을 살아간다고 한다.
어떤 목표든 종이에 기록으로 남기며 살아가는 사람은 단 3%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자신의 목표를 글로 적어 수시로 환기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는 성공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