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든솔 May 12. 2024

매일 하는 운동, 매일 보는 우주

사진 한 장과 플레이아데스 성단

 해외에서 장기 유학 중인 친구를 보기 위해 일곱 명이 모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려 외식조차 조심스러웠던 시기였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베스트 프렌드를 위해 딱 하루만 눈을 감았다. 매일을 함께했던 내 친구들과는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각자의 사정으로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져 자주 만나지 못했다. 활발했던 단톡방도 누군가의 생일이나 경조사가 아니면 고요했고, 술에 취해 안부를 묻는 전화가 아니면 목소리조차 듣기 힘들었다. 물론 가장 멀리 살고 있는 내가 모임에 소홀했던 이유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근사한 모임은 아니었지만 좁은 방에 모여 밤새 추억을 팔았다. 못 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가는 것보단 예전의 추억들을 꺼내오는 게 더 즐거웠다. 이웃집에서 항의 전화를 받았지만 우리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기까진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친구는 평생 간다는 누군가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평소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을 홀짝대며 정겨운 시간이 이어졌고 여느 때처럼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그 해 받은 가장 큰 충격이 친구가 찍어준 사진 한 장으로부터 왔다.


 사진 속에는 의자에 앉아 뒤를 돌아보고 있는 내가 있었지만 평소 내가 알고 지내던 내 모습이 아니었다. 턱에는 늘어지기 직전의 살들이 붙어있었으며, 양 볼은 사랑니를 모조리 뺀 직후의 모습처럼 부어있었다. 물론 전 날에 사랑니를 발치하진 않았다. 큰 충격에 휩싸인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사진을 내 휴대폰의 배경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때의 충격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고 다시는 이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놀랍게도 이후의 전개에 반전은 없었다. 당장 아령을 한 세트 구매하여 매일 땀을 뺐다. 유튜브에 '30분 운동 영상'을 무작정 검색해 재생한 뒤 닥치는 대로 따라 했으며 온몸이 땀에 젖을 때까지 움직였다. 덕분에 내 유튜브 상단 10개에는 운동 관련 영상들이 자리했고, 그 영상들에 한껏 자극을 받아 다시 땀을 흘렸으며 그렇게 지금까지 4년이 흘렀다. 지금은 헬스장을 1년 치 끊어두고 일주일엔 4번 이상 웨이트 트레이닝을 즐기는 헬스인이 되었다. 자랑할 만큼의 멋진 몸을 가지진 않았지만 이제 운동은 나에게 평생 끊지 못할 동반자가 된 셈이다.


 천문학은 어린 시절부터 늘 잔잔하게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초등학교 때 간 천문학 캠프에서도 그랬고,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에서도 그랬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겐 먼발치에 있는 신비한 학문이었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얕은 관심' 정도의 영역에 있는 녀석이었고 신경 쓰이게 하는 정도의 존재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어느 가을, 천문학은 이번에도 내 마음의 문을 소심하게 두드렸다.


"든솔아. 나랑 같이 학교에 있는 망원경 관리도 좀 하고, 시간 내서 학생들 관측도 시켜주자"

"네? 제가요?"

"그래. 네가 우리 반 반장이잖아. 부탁 좀 할게"


 반장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담임 선생님이 별을 좋아하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내 학교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칠 줄이야. 다가올 수험 생활을 핑계로 벗어나보고도 싶었지만, 반장으로서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할 순 없었다. 그리고 천문학은 늘 내 주변을 맴돌았기에 단번에 뿌리칠 수 없었다.


"네 한 번 해볼게요. 뭐부터 하면 돼요?"

"오늘은 선생님이 먼저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여줄게. 그래야 너도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해의 기운이 사라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선생님은 망원경을 한 대 꺼내어 내게 달을 보여주셨다. '망원경의 성능이 이렇게나 좋았나?' 생각이 들었다. 늘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힐끗 본 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얼룩덜룩한 표면이 새로웠고 울퉁불퉁한 모양이 신기해 한참을 바라봤다.


“자 다음은 이게 좋겠다”

"이건 뭐예요?"


플레이아데스 성단 ⓒ수지어린이천문대장, 신용운

 늘 소심하게 노크하던 천문학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예고도 없이 내 마음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것이다. 그때 본 이름 모를 천체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밝게 빛나는 아홉 개의 푸른 별.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어 오랜 시간을 감상했다. 이 멋진 장면 눈에 가득 담고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갈피를 잡지 못했던 내 꿈도 그때 정해졌다. 부술 듯이 문을 열고 들어온 천문학에 나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천체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이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밤하늘에 떠있는 그저 수많은 성단 중 하나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지구와 꽤나 가깝다는 것. 그래서 운이 좋다면 도심에서도 충분이 관측 가능한 천체다. 가을의 끝자락부터 시작해 봄냄새가 느껴지는 시점까지 우리 머리 위를 빛내는 아홉 개의 별, 덕분에 난 지금도 매일 별을 보고 우주를 이야기하며 산다.


  우연히 만난 사진 한 장과 성단 하나가 지금의 내 삶을 만들어준 작은 불씨다. 불씨가 나란 나무에 붙어 타기 시작했고, 아직까진 잘 타오르는 중이다. 언제까지 지금의 삶을 사랑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전까진 내가 누군가에게 우연이고 싶어 이야기한다.


"운동 같이 안 할래?"

"이번에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볼 거야. 진짜 예쁘니까 오래 봐도 돼!"


운동과 우주, 우리 삶에 꼭 필요하진 않지만 적어도 우리의 삶을 조금은 더 비춰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통장을 탈탈 털어도, 우아한 실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