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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든솔 May 04. 2024

내가? 하체운동을?

우주에서 하체운동은 필수

 2000년대 중반, 누난 너무 예쁘다며 여학생들의 심장을 폭격하는 그룹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나도 누나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용기를 얻은 남학생들은 가장 먼저 그들의 패션을 따라 했다. 덕분에 전국의 모든 남학생들의 옷장에는 스키니 바지가 하나씩 들어섰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교복에서 사복으로 갈아입는 건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어차피 스키니 바지로 갈아입을 테니까. 유행은 우리 동네에도 빠르게 스며들었다.


 “옷 갈아입고 다섯 시까지 놀이터 앞에서 만나자”


 다시 모인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꽉 끼는 바지를 입고 만났다. 스키니 바지와와 펑퍼짐한 후드티.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나는 예전부터 늘 입던 옷차림으로 약속장소에 나갔다. 유행을 좇지 않고 나만의 패션을 찾아다니는 학생이었냐고? 전혀 아니다. 그저 스키니 바지를 입지 못했을 뿐이다. 난 지독한 ‘하체 발달형’ 인간이었으니까. 그때부터 두꺼운 다리는 내 콤플렉스가 되었고, 스키니 바지의 유행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난 두꺼운 다리가 너무나도 밉다.


 ”하체운동 언제 했어?”

 “한… 2년 전?”

 ”왜? 무릎이 안 좋아? “

 “아.. 그냥 다리가 더 두꺼워지는 게 싫어서”

 “…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리 안 두꺼워진다. 그냥 힘들어서 안 하는 거잖아 “

 “그것도 그래”


 두꺼운 다리에 대한 콤플렉스는 내 헬스 라이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리가 조금이라도 두꺼워지는 게 싫어 웨이트 트레이닝의 꽃, 하체 운동을 멀리 하게 된 것. 헬스장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어언 4년째에 접어들지만 하체 운동을 제대로 한 적은 열 번이 채 되지 않는다. 스스로 온갖 핑계를 대며 다리를 1mm라도 두꺼워지게 할 모든 요소로부터 방어했다. 가끔 누군가와 운동을 같이 하게 될 일이 생기면 하체 운동을 하자고 말할까 두려워 먼저 선수를 치곤 한다. "남자는 등이지!", "팔이 두꺼워야 옷 핏이 살아!"라고. 그렇게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하체 운동을 향해 쌓아 둔 담의 높이는 점점 높아졌다. 스키니 바지의 유행이 15년이나 지난 지금, 통이 넓은 바지가 유행하는 시기인데도 여전히 난 학창 시절의 콤플렉스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체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생물학적인 이유로도, 개인적인 이유로도 튼튼한 하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은 이족보행 동물이기 때문에 평생을 두 다리만으로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야만 한다. 노후 계획이 '중력이 작은 달에서 폼나는 인생을 살아가기' 따위가 아니라면 지구의 중력을 버틸 튼튼한 하체는 필수다. 게다가 나는 격한 운동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욱 강력한 하체를 장착하고 있어야만 더 행복한 사람이다. 


Expedition 34 크루 Chris Hadfield ⓒNASA


 현재 국제우주정거장 ISS에는 일곱 명 남짓한 인원의 우주비행사가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오늘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국제우주정거장의 환경과 지구의 환경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하루에 16번씩 태양이 뜨고 지며,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24시간 내내 고막을 간질이고, 중력도 없다. 중력이 없는 환경에 놓인다는 것은 우리 몸에게 아주 큰 충격이 아닐까. 인류가 처음 나타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의 끌어당김은 모든 인류에게 유전자 단위까지 기록되어 있는 익숙함일 것이다. 무중력을 만난다면, 중력상대하고 있던 다리는 곳을 잃은 것처럼 헤매기 시작한다. '어? 난 늘 바빴는데, 왜 나에게 일을 안 주지?' 하며 당황한다. 그리고 결국 빠르게 적응하며 이렇게 결심한다. '이제 내가 필요 없는 건가?'라고. 이내 무중력에 적응한 다리는 점점 크기를 줄여가고, 시간이 흐르게 되면 다시는 지구의 중력을 상대할 수 없을 정도까지 약해져 버린다. 


 그런 이유로 우주인들과 헬스인들에게는 아주 재미난 공통점이 있다. 지독하게도 ‘근손실’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헬스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고, 억지로 닭가슴살을 씹으며 근육을 1g이라도 붙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얻어낸 근육이 사라진다면 마치 결승전에서 패배한 국가대표선수처럼 절망한다. 이렇게 생활의 모든 패턴이 '근성장'에 맞추어져 있는 헬스인들이지만, 우주인들의 간절함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우주인들은 '근손실'이 곧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늘 중력을 상대하던 하체 근육은 무중력에 빠르게 적응하며 그 크기를 줄여간다. 빠르게 줄어가는 다리 근육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들의 다리는 더 이상 지구의 중력을 상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주비행사들은 다리 근육을 지키기 위해 90분씩, 혹은 그 이상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한다.


Expedition 39 크루 Steve Swanson ⓒNASA


 지난달에도 말했다. 선생님은 우주에 꼭 가보는 게 꿈이라고. 하지만 난 아직 우주에 갈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하체운동을 지독하게 싫어하기 때문이다. 15년 전의 고민덩어리가 아직도 나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언젠가 나도 하체운동을 하고 싶은 날이 올까. 하체운동이 필수인 공간이라니. 아직 나는 우주비행사가 되긴 글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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