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과 만유인력의 법칙
난 오늘도 고민한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절대… 절대 다신 시도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해 놓고 지금 이 순간 그때의 다짐은 까맣게 잊고 두 자아가 충돌한다. 성공해도 큰 보상은 없다.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스스로에게 만족할 뿐. 다만, 실패했을 때의 후폭풍은 감히 상상하기도 싫다.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마음의 결정을 끝냈다.
‘그래 5kg만 더 올려보자. 아자아자!'
두리번거리며 2.5kg짜리 원판 두 개를 찾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원판이 안 보인다. 나와 같은 도전을 하는 사람이 많은 걸까? 오늘이 월요일이라 그런 건가? 생각하며 눈에 불을 켜고 헬스장을 한 바퀴 돈다. 마침내 찾아낸 자그마한 원판 두 개를 소중히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 녀석들이 나에게 행복을 선물하게 될까. 비장한 표정으로 바벨 양쪽에 원판을 끼운 뒤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로 플레이리스트를 바꿨다.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실패했을 땐 어떤 일이 일어나냐고? 금방 알게 될 거다. 자 이제 간다.
“흡!……..“
.
.
.
“도와드려요?”
‘(끄덕끄덕끄덕끄덕)‘
마침 옆에서 PT 수업 중이었던 트레이너가 무언의 외침을 듣고 나를 구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간절한 목소리로 SOS를 부르짖었을 거다. 그리고 더 이상 그 헬스장엔 발도 들이지 못했겠지. PT를 받고 있던 회원의 눈빛 속에는 비웃음도 함께 있는 듯 보였다. 순식간에 헬스장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나는 부리나케 짐을 챙겼다. 무리한 도전을 한 대가는 참을 수 없는 창피함이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다시 한번 생각한다. ‘절대… 절대 다신 시도하지 말아야지’라고. 하지만 나는 이 결심을 지우고 매주 더 무거운 것에 이끌림을 느끼며 도전한다.
“과학사에 대적할 자가 없는 거인" -스티븐 호킹
"이보다 더 신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 있으랴" -에드먼드 핼리
두 문구 모두 한 사람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는 바로 뉴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과학계 최고의 서적을 세상에 내놓은 주인공이다. 출판 당시에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이 책은 ‘과학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다. 모든 자연철학자들이 앞다투어 밝히려 노력했던 우주의 움직임을 깔끔하게 설명한 것도 모자라 수학을 도구로 이용해 문제들을 아주 멋지게 풀어나갔다. 일어난 일뿐만 아니라 일어날 일까지 예측할 수 있는 책, 자연철학자들에겐 일종의 예언서가 아니었을까. 내 수업 듣는 아이들에겐 종종 이런 자극적인 표현을 섞곤 한다. “뉴턴의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너희가 배우는 과학 중 절반은 없었을 걸? “이라고. 뒤따르는 아이들의 야유에서 뉴턴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총 세 권으로 이루어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줄여서 프린키피아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꼽으라면 단연 만유인력의 법칙이 아닐까 싶다. 만유인력의 법칙, '모든 것에는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라는 뜻이 담긴 우주의 법칙이다. 복잡한 우주를 다스리는 법칙치고는 너무나 간단하다. 하지만 간단한 문장과는 다르게 단숨에 와닿지는 않는다. 책상 위에 있는 연필에게도, 여러분이 쥐고 있는 스마트폰에도, 심지어 우리에게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물론 SNS 속 자극적인 콘텐츠의 유혹이나 이두근을 이용하여 힘차게 당기는 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을 끌어당기는 물리적인 힘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힘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어렵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은 우리의 감각까지 신경 써줄 만큼 친절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연필에게 끌려가지 않는 것일까? 그 힘이 너무 작아서? 혹은 내가 너무 무거워서? 아니다. 단지 나와 연필 사이를 방해하는 한 거대한 물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지구. 연필이 당기는 힘과 내가 연필을 당기는 힘을 모두 합쳐도 지구가 당기는 힘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서로 가까워질 수가 없는 것이다. 만유인력은 무거운 물체에게 더 큰 힘을 부여한다. 어린아이보단 나에게 나보단 코끼리에게 더 큰 만유인력이 존재한다.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주변의 물체를 더 잘 당긴다.
그렇게나 다짐해 놓고도 가벼운 바벨보단 무거운 바벨을 고집하는 나. 내일이 되면 또다시 헬스장을 어슬렁거리며 2.5kg짜리 원판 두 개를 찾아 돌아다니겠지. 잘못되면 크게 다치거나 큰 창피를 당할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듯 움직인다. 가벼운 바벨보단 무거운 바벨이 늘 나를 더 유혹하며 끌어당긴다. 내가 매주 더 무거운 무게에 끌리는 이유가 만유인력 때문일까. 만약 내가 내일도 벤치프레스 80kg에 실패한다면, 그 책임을 뉴턴에게도 조금은 돌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