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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든솔 Jul 27. 2024

플레이스테이션 천문학

취미로 우주 보기, 본격적으로 우주 보기

카카오야. 휴대폰 연결해 줘


 오늘도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적막한 집에서 홀로 말을 건넸다. 그리고 오늘의 내 기분을 덧칠해 줄 음악을 재생하며 텅 빈 밤을 채운다. 늦은 시간임에도 집은 음악으로 가득 찼다.

 음악 감상은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다. 음악은 언제나 내 삶과 함께 한다. 밥을 먹을 때도, 운전을 할 때도, 심지어 샤워를 할 때도 음악은 항상 주위에 있다. 내 가장 오래된 음악 감상의 기억을 거슬러 보자면, 20년 전쯤이었던 같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까, 아버지는 선물이라며 플레이스테이션2를 사 왔다. 그저 사랑스러운 아들에게 선물을 챙겨주고픈 아버지의 마음이었을지,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말라며 어깨를 펴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었을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을 나이였다. 그저 싱글벙글 웃으며 선물을 받아 들고 일상에 또 다른 재미를 더했다. 하지만 내 플레이스테이션은 게임보단 다른 곳에 쓰일 때가 훨씬 더 많았다. 아버지는 밤에 술을 한 잔씩 기울일 때마다 음악을 들었다. CD재생 기능이 포함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아들의 게임을 위해 사온 플레이스테이션은 본래의 목적보단 집에 쌓여있는 아빠의 수많은 CD들을 재생하는 데에 더 알차게 쓰였다. 



"아빠 저 게임 좀 하면 안 돼요?"

"조금만 기다려봐. 이거 한 곡만 듣고. 너도 어렸을 때 이 노래 엄청 좋아했었잖아"

"기억 안 나요"

"그래? 그럼 이것도 한 번 들어보자. 이건 네가 진짜 좋아했던 노랜데..."



 대부분의 경우 내가 먼저 잠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들! 아빠 다 들었어. 이제 게임해!"라고 이야기했을 때는 이미 한껏 무거워진 눈꺼풀이 내 시야를 가린 뒤였다. 하지만 종종 내 취향의 음악들도 흘러나왔고, 게임하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로 감상한 적도 있었다. 그게 가장 오래된 내 음악감상의 기억이다.

 음악을 듣는 것이 내 삶에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이유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조기교육 때문이 아니었을까. 플레이스테이션을 통해 음악을 감상했던 기억이 게임을 했던 기억보다 더 강렬하게 남아있다. 



 천문대에서 우주를 배우는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생들이다. 천문대에서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 동안 우주의 신비로움을 보고 배운다. 어떻게 보면 천문학 조기교육인 셈이다. 초등학생이라는 이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수많은 학원에 다닌다. 수학학원과 영어학원은 기본이고 역사와 논술 학원까지, 아주 쉴 틈이 없다. 그런 아이들이 밤에는 천문대에 와서 천문학을 배운다. 하지만 그 방식은 다른 학원들과는 사뭇 다르다. 아이들은 천문학을 웃으며 배운다. 아인슈타인은 강사들을 통해 건망증뿐인 엉망진창의 천재로 변모하기도 하며,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시도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고집불통의 할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즐겁게 천문학을 배운다. 


 그런 아이들에게 가끔 놀랄만한 피드백을 받는다. "선생님 저는 천문학자가 꿈이에요"라는 말이다. 수학학원을 다녔던 나와 내 친구들이 수학자가 되고 싶다는 경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지만, 천문대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상하리만큼 많이 천문학자를 꿈꾼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이대로라면 국내에 있는 7개 천문학과의 커트라인이 웬만한 의대보다 높아질까 걱정이 될 수준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노벨 물리학상을 두고 수많은 한국인들이 경쟁할까 설레기까지 한다. 


 하지만 실제 천문학은 아이들이 배운 것과는 많이 다르다. 천문학자의 꿈을 이어간다면, 그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학 시절 천문학을 전공하며 배운 천문학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망원경을 차려두고 아름다운 천체들을 바라보며 사색할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천문학자 이야기를 듣는 것보단 그들이 풀어낸 수식들을 분석하는 일이 훨씬 많았다. 관측은 내가 아닌 자동화된 망원경이 했고, 분석도 내가 아닌 잘 짜여진 프로그램이 해주었다. 어떤 수업에서는 별을 이루는 구성 원소들을 구하는 작업을 했는데, 별 관측은커녕 알 수 없는 그래프만 그려진 난잡한 데이터들을 몇 주에 걸쳐 분석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천문학과를 선택한 많은 학생들은 실망하며 학과를 떠난다. 별과 우주의 아름다움을 가슴 깊이 느끼는 친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현실이 속상할 따름이라며.


대학 시절의 과제. 프로그램을 이용해 별 내부의 원소를 확인하는 중이다.


 플레이스테이션 음악으로 시작한 취미를 수년째 이어간 어느 날, 나도 잠깐이나마 음악가의 꿈을 꾼 적이 있다. 악기연주자가 될까, 작곡가가 될까 고민하며 취미로 다니던 음악학원 선생님께 혹독한 지도를 부탁했다. "잘 따라올 수 있겠어?"라는 무시무시한 말과 함께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화성학과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연습량이 숙제로 주어졌다. 이후의 기억이 희미한 걸 보면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취미로만 남겨두기로 했던 것 같다.


 천문학자 되겠다고 내게 다짐한 아이들의 꿈이 지금도 우주을 향하고 있을까.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저 어릴 적 내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들었던 음악처럼, 나라는 플레이스테이션을 통해 재생된 우주 이야기로 기억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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