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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든솔 Jun 15. 2024

작은 습관

운동과 우주

 천문대에서는 매년 천체관측대회를 진행한다. 천체관측대회는 천문대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1년 중 가장 큰 행사다. 전국에 있는 천문대원들은 그동안 갈고닦은 관측 실력을 겨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연습한다. 수업하지 않는 날에도 천문대에 와서 밤하늘을 보며 천체들을 외우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성단을 찾으려 망원경으로 온 하늘을 뒤진다. 그렇게 대회 당일까지 열심히 준비한 아이들은 정신없는 2시간을 보내며 그동안의 노력을 꺼내본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기회가 모든 대원들에게 돌아가진 않는다. 관측대회 본선에 출전할 수 있는 인원은 단 한 팀. 두 명으로 이루어진 한 팀이 각 천문대를 대표해 출전한다.


 2023년 관측대회엔 우리 천문대 대표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 둘이 선발되었다. 3년 간 나와 함께한 아이들이었다. 처음 만났을 땐 그저 천문대에 함께 오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마냥 행복한 아이들이었지만 1년, 2년이 지나고 난 뒤에는 친구들과의 시간보단 천문학 이야기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고, 이내 천문대가 아닌 곳에서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커가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 역시도 확실히 내 뿌듯함에 큰 부분을 담당하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무조건 우승해야죠! 충분히 우승할 수 있어요 저희!"


 아이들은 대표로 선발되자마자 당찬 포부를 밝혔고 나는 미소 지었다. 이 아이들에게 꼭 우승을 선물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별을 찾는 데에 1초라도 시간을 줄일 수 있을지 고민했고, 고민한 방법을 아이들의 귀가 닳도록 설명했다. 수업 시간처럼 재밌게 우주를 가르치는 선생님보단 수리영역 2점짜리 문제를 푸는 시간을 1초라도 줄일 수 있는 요령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수업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내 지도를 잘 따랐고 점점 관측의 달인이 되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웬만한 천체들을 다 찾을 정도의 실력이 되자 난 더 욕심이 났다. 아이들이 더 많은 별들을 보며 별자리를 보는 눈을 기르길 바랐다. 그리고 결심했다. 아이들에게 쏟아질 듯 한 별들을 보여주기로.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한 시간 반을 달려 강원도 화천에 도착했다. 오는 길이 꽤나 지루했는지 피곤함을 숨기지 못한 아이들이었지만, 차 문을 열고 밤하늘을 보는 순간 그들의 얼굴은 180도 바뀌었다.


“와…”


 늘 그렇듯 강원도의 하늘은 검은 도화지 위에 물감을 잔뜩 묻힌 붓을 휘두른 것 같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밤하늘 곳곳에 묻어있었고, 흐릿하지만 푸른 은하수도 도화지를 잔잔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였지’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가 떠올랐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를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렇게나 멋진 하늘 아래 오늘만큼은 내가 우주를 보며 느끼는 황홀함을 아이들도 느끼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서둘러 망원경을 조립하자는 아이들이 내 마음에 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이들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밤하늘을 감상했다. 헤라클레스 거대 성단을 보며 또 다른 우주를 경험했고, 아령 성운을 보며 별의 최후를 함께했다. 그리고 안드로메다 은하를 보며 더 큰 우주를 상상했다. 목표로 삼은 대상들을 전부 찾은 지는 오래였지만 집에 갈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얘들아… 내일 일정에 지장 없어? 늦게 일어나도 돼? “라고 소심하게 물었지만, “괜찮아요. 좀 만 더 있다가 가요”라고 답했다. 답하는 순간까지도 렌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너무 행복했다. 아이들이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을 갖게 된 것 같아서가 아니라 드디어 밤하늘을, 우주를 온전히 사랑하게 된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슬퍼하고, 속상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만큼 자신 있었겠지만, 전국의 내로라하는 아이들 속에서 우뚝 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승 상품을 눈앞에서 놓쳐버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난 두려웠다. 놓쳐버린 우승 상품보단 다른 것도 함께 놓쳐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지난번 강원도의 하늘을 보며 느꼈던 그 감동,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종종 하늘을 올려다볼 습관까지 사라져 버릴까 봐.


 운동이란 걸 하며 1년 내내 선명함을 유지하는 복근과 터질듯한 팔뚝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운동이 습관인 사람이 되었고 덕분에 생활에 필요한 조금의 근력과 건강을 얻게 되었다. 보디빌더처럼 멋지고 큰 근육을 가지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좋다. 그저 운동이 습관이 된 것만으로도 난 만족한다. 아이들의 우주도 그러길 바란다. 그 이후로 1년이 지났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이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았을지도, 그저 선생님에게 먼저 연락하기 소심한 성격 탓인 걸진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들의 삶에 있어 밤하늘과 우주는 작은 습관이 되길 바란다. 마음에 거창하게 들어서지 않아도 좋으니 가끔 한 번씩 밤하늘을 보며 미소 지을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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