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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n 13. 2024

연수를 떠나야 사는 사람들

맥시멀리스트의 우주 보기

"대장님 저는 도대체 언제 연수를 갈 수 있을까요?"


  재작년 이맘때, 비행기를 취소하자 봄이 슬픈 눈망울로 물었다. 천문대 연수차 예약한 하와이행 항공권이었다. 천문대 직원들은 1년에 한 번씩 별 관측을 위해 해외로 연수를 떠나는데,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곧장 4월에 예정되어 있던 호주 은하수 연수를 취소했다. 보름이면 끝나겠지 싶었던 코로나가 몇 달이나 갈 줄은 꿈에도 몰랐을 때였다. 하지만 절멸할 줄만 알았던 코로나는 1년 뒤까지도 여전히 건장한 영향력을 과시하며 하와이 은하수 연수를 계획한 내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별로 가득 찬 마우나케아(하와이의 화산섬)의 은하수를 고대했던 나와 직원들은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이 시국을 전력으로 탓했다. 말이 연수지, 한 달에 하루씩 일을 더 하며 꼬박꼬박 연수 자금을 조성했다. 주 4일 일하는 북유럽 선진국을 선망하면서도 주 6일 일하며 쌓아놓은 희망의 여행이었다. 한 달의 한 번씩 주말이 하루로 줄어드는 개떡 같은 상황을 감내하면서도 별 보기를 택한 것이다. 우리는 별 보기의 꿈이 코로나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맨몸으로 받아내며 울었다.


 천문대 강사들은 1년에 한 번 해외로 연수를 떠난다. 목적은 별 보기다. 강원도만 가도 쏟아지는 별을 굳이 큰돈을 들이며 해외로 가나 싶을 수도 있지만, 습도가 높고 빛공해가 심한 우리나라에서는 별 보기에 한계가 있다.

 게다가 범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천문학 현상은 위치가 중요하다. 오로라를 보려면 남극이나 북극 근처로 가야 한다. 은하수는 습도가 적고 산이 높을수록 잘 보인다. 남쪽 지구에서만 보이는 천체(마젤란은하 등)를 보려면 허리가 끊어질 만큼 비행기를 오래 타고 남반구로 가야 한다.

 더구나 강사의 강의는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천문학은 더 그러하다. 오로라를 본 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강의는 다르다. 저 먼 100km 상공에서 춤추는 오로라를 실제로 바라본 강사와 그렇지 않은 강사의 전달력은 오로라가 펼쳐지는 높이만큼이나 다르다. 이곳이 사막의 한가운데인지 우주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쏟아지는 은하수의 별빛을 맞아본 사람의 이야기에는 별빛이 영롱하게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로 강사는 체험하는 사람이야 한다. 적어도 천문학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슬픈 눈망울로 '언제 연수를 갈 수 있냐'는 봄의 물음이 마음이 아팠다. 더 좋은 강의를 하겠다는 욕심과 마음으로 쌓은 노력과 시간들이 팬데믹에 무너진 날들이 슬펐다. 무기력하지만 어쩔 도리도 없다. 현실이었고, 비행기는 탈 수 없었다. 나는 확신은 없지만 확정적으로 말했다.


"내년엔 꼭 가야지"


그리고 그다음 해 2023년 4월. 우리는 하와이의 화산섬 마우나케아에 이르렀다.


 함께 떠나는 그 누구도 고산지대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들이 본인들의 적응력은 둘째치고 4000미터 높이의 위험성을 아예 모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낯빛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미리 고산병 약을 받아둔 사람도 전혀 없었다. 내가 받아온 약을 비타민처럼 받아 들고 '건강을 위해 이걸 먹어야 한다고?'라는 표정을 지었다.

 구름보다 높이 올라간 지 2시간쯤 지났을까, 소연은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든솔은 머리를 감싸며 두통을 호소했다. 점프를 두 번만 높게 해도 숨이 턱끝까지 찬다며 신기하게 웃는 이를 보고 있자면 건강이 나빠진 건지 정신이 악화된 건지 도통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구토와 헛소리가 낭자한 곳에서 5시간 넘게 있을 수 있던 이유는 오로지, 어느 봄날 마주한 흩날리는 벚꽃잎같은 별빛때문었을 것이다.


 천문학의 성지인 하와이 마우나케아의 고지에서, 우리는 마침내 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오랜 기다림과 희생이 어우러진 순간, 시련과 실망이 빚어낸 무게를 내려놓고 멍하니 밤하늘만 바라보았다. 고산병의 어지러움조차도 그 강렬한 천체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 되었다. 봄의 슬픈 물음은 이제 빛나는 기대로 바뀌었다. "내년엔 어디로 연수를 갈까요?"

 그 물음의 끝에서 나는 이렇게 깨달았다. 천문대 강사들은 끊임없이 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여정 속에서 우리는 우주의 찬란함을 경험하고,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확장한다. 연수라는 이름 아래 별빛 같은 꿈들을 좇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마우나케아에서의 경험은 각자의 삶 속에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어 우리를 밝혀줄 것이다. 우리가 본 별들처럼, 우주의 한 켠에서, 우리의 삶도 계속 반짝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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