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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이 계륵 같은 존재여.

생리통

by 유영해

빌어먹을.


묵직한 통증이 아랫배를 스칩니다. 화장실을 다녀와도 계속되는 아픔에 계시가 내렸어요. "너는 이틀 내에 피를 볼 것이다." 하고요. 이미 익숙한, 백발백중의 예언입니다.


월경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여자애들보다 빨랐고요, 기본 지식은 전무했습니다. 학교 가기 전 아침에 시작한 게 그나마 운이 좋았어요. 볼일을 끝내고 팬티를 봤는데 커다란 갈색자국이 묻어있더라고요. 이게 뭔가 싶었어요. 엄마에게 알리자 '빨리 시작했네.'라며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안 좋은 일인가 싶어 심장이 덜컹했던 기억이 납니다.


익숙지 않은 생리대를 속옷에 붙이고 학교에 갔어요. 배가 얼마나 아팠는지는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그걸 알아차릴 여유가 없었거든요. 의자에서 일어서기만 해도 핏덩이가 울컥 빠져나왔어요. 소변이 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아니면 처음 맞닥뜨린 시련의 크기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고요.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억나지 않아요. 엉거주춤 일으켰던 엉덩이를 다시 내릴 때 느꼈던 당혹감만이 또렷히 남아있습니다.


주기는 정확히 30일이었어요. 달거리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위였죠. 생리 이틀 전부터 기분이 점점 지하로 내려가다가 피가 비침과 동시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이상하지요. 앞으로 꼬박 일주일 동안 구겨진 생리대를 주머니에서 꺼내게 될 텐데 월경과 동시에 기분이 좋아지다니요. 생리전증후군은 사람마다 다르다지만 참 독특했어요. 아무튼, 제 경우는 그랬습니다.

생리대를 했는데 티가 안나는 흰 바지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노골적인 이야기라 불편하셨을까요. 잠시 '라테'이야기를 꺼내자면 그때는 '생리'라는 단어 자체를 창피해했어요. 보통 '그날'이라는 애매한 단어로 소통했죠. 꽉 끼는 하얀 바지를 입은 예쁜 언니가 파란 하늘을 점프하며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를 외치는 광고와는 다르게 말이에요. 지금은 성기를 정확한 명칭으로 가르치는 게 건강하고 올바른 성교육의 핵심이라고 보잖아요. 고추가 아닌 음경과 음부로요. 그러니 '생리 정도야 뭐 어때.' 하는 여유가 저에게도 생긴 것 같습니다. 물론 어렸을 적 아들내미의 고추를 음경이라고 부를 때는 그 민망함과 어색함에 허벅지를 꼬집었지만요.


출산 후 생리주기는 점차 40일로 변했어요. 내보낼 난자 수가 줄어들었나 하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월경 후 하루, 이틀은 생리통이 있는데 고통이 좀 더 뾰족해진 것 같았어요. 둘째 생각도 없는데 이놈은 때마다 찾아와서 사람을 괴롭히냐, 필요도 없는 집을 한 달마다 지었다 부수었다하면 이게 부실공사가 아니고 뭐냐며 투덜댔어요. 그러다 2년마다 돌아오는 정기검진에서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자궁에 근종이 여러 개 있는데 하나는 4cm로 크기가 크다고요. 임신 생각이 없다면 이번 기회에 자궁적출수술을 하는 건 어떠냐고요.

인자하던 산부인과 선생님이 돌팔이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가만히 있는 내 자궁을 왜 들어낸단 말이에요. 대자연의 재앙이라며 불평을 쏟아붓던 자궁이 갑자기 소중해졌어요. 알고 보니 한 번 근종이 생기면 재발할 가능성이 높대요. 여러 번 수술을 하느니 필요 없으면 아예 없애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게 그 의사의 소견이었죠. 당시에는 몰랐는데 가까이에 수술을 한 친구가 있더라고요. 근종 크기가 무려 12cm였어요. 가족력까지 있어서 마지막 수술에서 적출술을 받았다네요. 세 번이나 배를 가른 고통을 위로하고 싶었어요. 괜찮다는 그녀의 미소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자궁은 왜 있나 싶은 곳이었어요. 이미 썼고 쓸모를 다했으니까요. 하지만 일련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죠. 적어도 자궁은 없으면 쓸쓸한 정도는 되는구나, 하고요. 쓸데는 없지만 남주기는 아까울 때 '계륵(鷄肋:닭의 갈비뼈, 살이 거의 붙어있지 않은 뼈 부분)'이란 말을 쓰잖아요. 나의 자궁은 참 계륵 같은 곳이구나 했습니다. 아니, 계륵보다는 좀 더 소중한 곳이지 싶어요. 나중에 근종 크기가 커져서 수술을 해야한다면 아쉬움에 슬픔 정도는 더해질 것 같거든요. 내 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부위가 없는 것처럼요.


엄마, 다이어트 댄스 왜 그만뒀어요?
네가 수영 그만둔 이유랑 같지.
아, 보수공사 때문에요?
그렇지.


편의점에서 사 온 진통제를 까서 입에 털어 넣으며 아이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이번 생리는 서막이 기네요. 인상을 찡그리며 조수석에 앉아 있는데 어디서 듣던 노래가 나왔어요.


어? 이 노래 다이어트 댄스 때 배웠는데.


희미해지는 통증 너머로 흥이 번집니다. 손을 위, 아래로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하자 운전하던 남편과 아들이 입을 맞춰 웃었어요.


엄마! 이제 안 아파요?
응, 안 아파!


아픔은 주기적으로 우리를 찾아오지요. 하지만 그 고통 너머에 신나는 춤사위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리(生理: 삶의 이치)를 가르쳐 준 자궁을 어찌 미워할 수 있겠어요. 때로는 불편하고 원망스럽지만, 내 몸의 한 조각으로 오래도록 함께해 온 존재니까요. 앞으로도 긴 세월 헤어지지 않기로 약속해 봅니다.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자동차가 리듬에 맞춰 속력을 높였습니다. 허우적거리는 나의 손발처럼 경쾌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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