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망대와 DMZ박물관
교환유학생으로 일본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스쿨버스 옆자리에 앉은 중국인 친구가 갑자기 휴대폰 속 사진을 보여주는 거예요. 예전에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다면서요. 액정 속에는 바다처럼 보이는 거대한 물 웅덩이가 있었어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손가락만 해 보였다면 크기를 가늠하실까요. 장소가 낯이 익어 기억을 더듬는데 친구가 그러더군요. 여기가 백두산 천지라고요.
정말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화면을 쳐다봤어요. 사진 속 풍경은 인터넷 검색이나 책으로 본 천지와 똑 닮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글 속 가상현실처럼 진짜가 아닌 것 같았어요. 친구가 다녀온 곳을 저는 절대로 갈 수 없어서일지도 모릅니다.
기분이 상했습니다. '네가 감히 여길 왜?'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같은 민족인 나도 못 가는 북한땅을 타국인이 먼저 밟은 것에 대해 자존심마저 상했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물이 고이더군요. 설명에 신이 난 친구 옆에서 눈꺼풀을 세차게 깜빡였습니다. 마치 우리 땅을 뺏긴 사람처럼 억울하고 슬펐던 기억이 나네요.
이곳은 통일전망대, 백두산 천지는 아니지만 이름도 아름다운 금강산이 보입니다. 일만이천봉 중에 단 몇 개의 봉우리만이 산 너머로 솟아있어요. 거리가 멀어 희미한데도 웅장한 자태는 감춰지지 않습니다. 쇠창살을 두른 야생의 바다는 상처가 났을까요. 거친 바다가 혀를 내밀며 육지로 올라옵니다. 마른풀이 흔들리는 넓은 땅에는 육로와 철로가 이어져있어요. 지금은 쓰지 않는다는 게, 반대편에는 길이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살짝 먼지만 털면 당장이라도 기차가 달려갈 것 같아요. 그만큼 선명하고 뚜렷합니다.
전망대는 DMZ(Demilitarized Zone)의 D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비무장지대에는 희귀한 동식물이 많다고 해요. 생명의 천국 같은 곳임에도 한국전쟁 때 설치한 지뢰가 아직 남아있어요. 덩치가 큰 동물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가기도 하죠. 겉으로는 조화로워 보이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게 꼭 우리나라와 닮았어요.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 날아오는 오물풍선과 삐라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처럼요.
전망대에서 봤던 광경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손을 뻗어 아이에게 설명한 기억도요. 저 선로가 이어지면 우리는 러시아를 기차로 여행할 수 있다고 얘기해 줬거든요. 그리고 멀리 유럽까지 갈 수 있다고요. 박물관 창 밖 너머로 생각에 잠겨있는데 아이가 불쑥 물었어요.
엄마, 그런데 러시아 전쟁 중이지 않아요?
길이 이어져도 못 가지 않을까요?
네, 그랬습니다. 아픔은 뿌리를 뻗는 것처럼 어찌 이리 넓어져만 갈까요. 해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전쟁 중인 두 나라가 있었습니다. 휴전선 너머로 끊어진 자국생각에만 틀어박히고 말았네요. 부끄럽고 참담했습니다. 평화는 그저 한 줄로 이어진 철길로는 부족했던 겁니다. 더 길고, 더 단단한 염원과 노력이 모여야만 안녕은 유지되는 거였어요. 아이의 손을 잡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눈과 눈을 마주하고 생각을 주고받았어요. 신기하지요. 고민 속 질문과 대답에 마음이 이어진 것 같았습니다.
남과 북의 레일을 바로 연결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진다면 적어도 마음속에서나마 통일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바람을 뚫고 멀어지는 전망대를 바라보며 다가오는 봄을 생각했습니다. 하얗고 노란 데이지가 만개한 철길을요. 그 끝은 과연 어디로 이어져 있을까요. 언젠가 이곳에서 달리는 창 밖을 아이와 바라볼 날을 꿈꿉니다. 그날은 철로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온전히 이어져 있을 겁니다.